런던 일상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영어 제목은 ‘Extraordinary Attorney Woo’이다. ‘Extraordinary’의 사전적 의미는 ‘Very unusual or Remarkable’로 ‘아주 일반적이지 않은 또는 눈에 띌 만큼 탁월한’의 의미로 쓰인다.
오늘 BBC PROMS 2022가 열리고 있는 로열 알버트 홀에 다녀왔다. BBC PROMS는 런던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클래식 뮤직 페스티벌로 7월 중순부터 9월 중순까지 8주 동안 70개가 넘는 음악회가 열린다. 공연마다 일련번호 숫자가 붙는데 예를 들어 첫날 첫 번째 공연은 ‘BBC PROMS 1’이다. 어제 공연은 ‘BBC PROMS 19’였다. 오늘 공연은 ‘BBC PROMS 20’이어야 하는데 내가 오늘 본 공연은 ‘19A’이다. 알파벳이 붙어 있는 공연은 오늘 공연뿐이다. 뭔가 이상(Strange)하다. 연주 오케스트라의 이름도 ‘UFO’이다.
UFO는 2주 전까지만 해도 존재하지 않던 오케스트라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활동하는 우크라이나 출신 지휘자 케리 린 윌슨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고 무엇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생각이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와 폴란드 국립 오페라의 도움으로 ‘우크라이나 프리덤 오케스트라 (Ukraine Freedom Orchestra)로 탄생했다. UFO는 우크라이나 평화를 기원하고 전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연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세계 유명 클래식 공연장에서 공연 일정을 잡아 주었다. BBC PROMS도 소식을 듣고 긴급하게 무대를 마련해 주기로 했다. 그래서 'BBC PROMS 19A' 된 것이다.
UFO 결성 소식을 듣고 유럽 무대에서 활동하는 우크라이나 출신 음악가, 전쟁으로 난민이 된 연주자들이 참여하기로 했다. 우크라이나에 남아 무기를 들었던 남성 연주자들도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18세 이상 60세 미만의 우크라이나 남성은 나라를 떠날 수 없지만 우크라이나 정부는 그들에게 무기를 내려놓고 악기를 들도록 허가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 블라디미르 젤렌스키는 ‘음악은 침략자를 대항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영토를 빼앗기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전쟁으로 사람들의 마음이 황폐해지는 것이다. 러시아 침략에 맞선 음악적 저항이 사람들의 마음을 지켜줄 수 있다고 믿는다’고 메시지를 전했다.
공연이 확정되었지만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단원들이 모이기 위해서는 항공편, 숙소, 체류경비 그리고 함께 모여 연습할 공간 등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아메리카 에어라인, 블룸버그 자선 사업단, 포드 파운데이션 등 많은 기업과 기관들이 돕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74명의 단원이 폴란드 바르샤바에 모일 수 있었고 그때부터 집중적으로 리허설이 시작되었다. 지난 목요일 바르샤바 첫 공연이 시작되었고 오늘 런던 공연을 포함해 앞으로 한 달 동안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아일랜드 등 유럽 여러 나라와 미국 뉴욕과 워싱턴 DC 투어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오늘 공연의 첫곡은 우크라이나 출신 현대 작곡가 발렌틴 실베스트로의 심포니 7번으로 시작되었다. 이곡은 발렌틴이 갑작스러운 와이프의 죽음을 맞이하고 슬픔을 달래기 위해 만든 곡이다. 그는 전쟁이 시작되고 난민이 되어 현재 독일에 체류하고 있다. 두 번째 곡은 프레데릭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2번으로 쇼팽이 자신의 조국 폴란드를 떠나 파리로 정착하기 직전 작곡한 곡이다. 쇼팽은 폴란드가 러시아 전쟁에 패배한 이후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파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어쩐지 지금 우크라이나 난민의 현실과 오버랩이 되었다. 이어 베토벤과 브람스 곡으로 공연을 마쳤다.
공연이 시작되었을 때 걱정하는 마음이 앞섰다. 전쟁으로 인해 각자 처한 상황, 짧은 준비 기간, 정신적 부담감, 육체적 피로감 등, 그들이 5000명이 넘는 관객들 앞에서 무사히 연주를 마칠 수 있을까? 음악을 감상했다기보다 공연 내내 마음을 졸이며 그들을 응원했다. 단원 중에 전쟁 이후 5개월 만에 처음 다시 만나게 된 커플도 있었다. 그들의 마음이 되어 보았다. 슬픔과 분노, 위안과 희망을 느꼈다.
공연이 끝나고 모든 관객은 기립 박수를 쳤다. 지휘자 윌슨은 연주자 한 명 한 명을 일으켜 세워 관중의 박수를 받게 했다. 이곳까지 와 준 그들 모두에게 감사했다. 몇 번의 커튼콜을 받고 윌슨은 마이크를 잡았다. 모두에게 감사를 표하고 ‘우크라이나에 영광을!’이라고 외쳤다. 그리고 앙코르곡으로 우크라이나 국가를 연주했다.
무대에 선 ‘우크라이나 프리덤 오케스트라’를 보면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생각났다. 우영우는 장애를 가졌지만 실력 있는 변호사이다. 우리는 그녀를 ‘이상한(탁월한:Extraordinary)’한 변호사’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녀가 단지 천재적인 능력이 있어서 탁월하다고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험난한 현실 속에서 어려움도 겪고 편견 앞에서 무너지기도 하지만 다시 일어서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려는 자세 그리고 누군가를 진심으로 도우려는 그녀의 마음이 탁월한 것이다. 그리고 그녀를 더욱 탁월하게 만드는 것은 그런 우영우의 가치를 알아봐 주고 진정으로 이해하고 도우려는 가족, 친구, 동료이다.
오늘 공연은 나에게 탁월하게 다가왔다. 실력으로만 최고인 오케스트라의 연주였다면 나는 탁월하다고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 무너지지 않고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들이기에 탁월한 것이다.
전쟁이라는 야만의 세계를 넘어 평화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더욱 탁월해질 수 있도록 그들을 일으켜 세워주고 함께 걸어가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공연장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