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취미의 시작
2020년. 우리는 그 이름도 아름다운 '코로나 19'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사람들과 모여서 하던 모든 활동은 중지되었고, 학교, 직장, 종교활동 등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법을 배워야 했다.
취미에 관한 관점과 접근 방식도 바뀌게 되었다. 점점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취미에 관심을 쏟게 되었다. 그것은 아무도 안 만나고도 배울 수 있어야 하고 혼자서도 지속할 수 있는 취미여야 했다. 그런 취미 중에 '피아노'라는 것이 있다. 네모나고 길쭉한 것이 자태가 아름답다. 혼자서 연주하지만 오케스트라처럼 모든 파트(멜로디, 화음, 베이스, 리듬..)를 한 번에 연주할 수 있으며, 열 손가락을 다 움직이니 만약 칠 수 있게 된다면 뇌의 어떤 부분이 꼭 발달할 것만 같다. 적어도 늙어서 치매는 안 걸리겠다는 생각이 든다. 피아노의 모습도 다양하다. 어떤 것은 마치 잘 짜인 가구 같고, 어떤 것은 화면과 버튼이 있어 마치 새로운 모습의 컴퓨터와도 같다. 어떤 피아노의 소리는 부담스럽게 크고(아름답고 안 아름답고의 얘기가 아니다.) 어떤 피아노의 소리는 볼륨을 조절할 수 있다. 어떤 피아노는 헤드폰을 연결해서 나만 들으며 연습할 수 있다. 유튜브로 검색해 보니 피아노 혼자 배우기..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다. 몇몇 유튜버만 잘 따라다녀도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생각한 김에 피아노를 주문하자! 그런데 어떤 피아노를 사야 하지? 아무래도 취미로 시작하는 피아노로는 자리를 많이 차지하지 않는 디지털피아노가 좋겠지?
그렇다. 이렇게 2020년부터 현재 2021년 3월, 터치와 소리가 업라이트 피아노 못지않게 좋다고 소문난 몇몇 디지털 피아노가 재입고되기가 무섭게 품절되고 있는 현상이 일어났다. 구입 가능이라고 해도 적어도 3개월~6개월을 기다려야 받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중고가가 올랐다. 그리고 나는 피아노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언급한 기간 동안 나도 웹캠 수업이 급격하게 늘었고, 갑작스러운 레슨 문의가 빗발쳤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고, 코로나 19가 싫은 건지 고마운 건지 헷갈렸다. 물론 처음 몇 개월은 나도 힘들었다. 그때는 피아노고 뭐고 온 세계가 패닉 상태였으니.. 있던 레슨도 끊겼었다. 수입이 끊기다 보니 정신상태도 점점 불안해지고 갑자기 많아진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난감했다. 나는 미치지 않기 위해 어딘가 집중할 곳이 필요했다. 그렇게 나는 그동안 궁금했지만 할 엄두를 내지 못했던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채널 개설과 동시에 악보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블로그를 운영하기 시작했으며 인스타와 틱톡 계정도 만들었다. 그렇다. 나도 새로운 취미를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결국은 이렇게 글도 쓰게 되었다. '아. 정말 코로나 19에게 감사해야 하는 것인가?'라고 생각하게 되며 마음속이 다시 복잡해진다. 그동안 생각만 하고 동경만 하던 걸 다 실천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레슨생도 다시 확보되고 새로운 취미가 많이 생긴 나는 코로나 19가 오기 전보다 훨씬 더 바쁜 삶을 살게 되었다.
나는 한때 피아노가 두려웠던 적이 있다. 어떻게 연습해야 할지 갑자기 너무 막막했다. 내가 바라보는 곳(원하는 실력)은 너무 높은 곳인데 내가 서있는 곳(나의 현재 실력)은 형편없이 낮은 곳처럼 느껴졌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자꾸 친구들과 내 실력을 비교하게 되었다. 자신감이 빠르게 뚝뚝 떨어졌다. 피아노 뚜껑을 열지 않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다. 졸업하고 나는 5년 동안 피아노를 다시 치지 않았다.
두려운 피아노를 마음 한편에 두고 삶을 살다 보니 또 다른 어려운 일들이 닥쳤다. 인간관계는 틀어지고,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몰랐다. 내가 뭘 원하는지 뭘 원하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혼란스러운 이 시기에 날 구해준 것은 다름 아닌 피아노였다. 세상이 힘들게 느껴졌던 나는 나도 모르게 피아노 뚜껑을 열고 쇼팽을 연습하기 시작하였다. 그리웠던 어린 시절 친구를 다시 만난 기분이 들었다. 위로가 되었다. 그렇게 2년을 연습해 쇼팽의 [혁명] 한 곡을 완주할 수 있었다. (나.. 그렇지만 재즈 피아노 전공자다..) 그러나 이 경험은 피아노에게 가졌던 두려움을 없애준 마법 같은 경험이었다.
피아노를 연습하면서 나는 인생을 깨달았다. 너무 거창한 말 같은가? 그렇지 않다. 피아노안에 인생이 다 들었다. 고스톱에 인생이 다 들었듯이.. 고스톱은 12가지 다른 그림의 4계절이 상징인 카드로 구성되어 있고, 피아노는 12개의 건반의 연속이다, 인생의 1년은 12달 단위로 굴러간다.. 공통점이 벌써 좀 보이지 않는가? 그래도 내 말을 믿기 어려운가? 그럼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잘 들어주기를 바란다. 나는 정말 피아노로 세상을(인간을)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고, 인생의 비밀을 알게 되었고, 행복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자신감이 떨어졌던 예전의 경험과는 정반대로 나는 피아노로 자신감이 회복되는 것을 경험했다. 이 모든 것은 아주 작은 연습 습관부터 시작됐다. 하루 15분. 나는 매일매일 하루 15분 연습을 지켰다. 그 결과 나의 삶은 마법처럼 변했다.
다시는 피아노를 칠 수 없을 것 같았다. 손가락이 굳어서 이제 피아노는 안녕이구나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서글프고 아쉬운 생각이 들었지만 마음이 홀가분하기도 했다. 처음 시작하는 것처럼 다시 시작하면 되지 뭐. 완전 초보라고 생각하고 다시 해보자. 너 피아노 좀 친다, 라는 말을 어릴 때 너무 일찍 들었다. 나는 피아노를 너무 빨리 배웠다. 천재 아니냐는 소리를 너무 쉽게 들었다. 그런 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나에게 부담을 주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지금보다 더 잘해야겠다는 건 알겠는데 그동안은 어떻게 잘하게 된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잘하게 되었었다. 그러니까 원래 가지고 태어났던 것보다 더 잘하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렇다. 나는 올바르게 연습하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까운 재능을 가지고 피아노를 그만두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세상엔 재능 있는 사람들이 넘쳤고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들은 더 넘쳤다. 나 하나쯤 그만둔다고 섭섭해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초심으로 다시 피아노를 치기 위해서 유튜브를 찾아보며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왜 선생님을 구하지 않았느냐고? 거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일단 나는 혼자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좋은 선생님을 만나본 경험이 없어서 두려웠다. 마침 돈도 없었다.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는 레슨비로 지출할 만큼 나의 생활비는 넉넉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무엇보다 나는 스스로 일어서고 싶었다. 배우더라도 지금은 뭔가 혼자 깨우쳐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어렸을 때 피아노를 시작해서 나이 들어서까지 피아노를 멈추지 않고 치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내가 첫 번째로 탐구한 인물은 피아니스트 예프게니 키신(Evgeny Kissin)이었다. 유튜브에서 검색하면 그가 어렸을 때 연주한 영상들을 쉽게 찾아볼 수가 있다. 그는 말 그대로 신동이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그 실력은 변함이 없었다. 무엇이 다른 거지? 그와 나는 무엇이 달랐기에 지속할 수 있었을까? 어려움이 한 번도 없었을까? 악보를 마주하면서 막막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을까? 나는 어른이 된 키신은 둘째 치고, 아주 어렸을 때의 키신에게 지금의 나를 대입해 보며 끊임없이 질문했다. 나와 다른 점이 뭐였을까? 외부에서 그 답을 찾아보기도 했다. 좋은 부모님? 좋은 선생님? 좋은 학교? 그냥 그게 전부라면 세상에 모든 좋은 부모님과 선생님을 만난 사람들은 다들 그처럼 됐어야 하는 거 아닌가. 외부에서는 그 해답을 찾을 수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특별히 피아노를 잘 쳤던 이유가 뭐지? 도대체 나랑 다른 점이 뭐야?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 차이점을 알아버렸다. 아주 간단한 두 가지의 차이점이 그를 '피아니스트'로 나를 '피아노 그만둔 이'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문제를 대면하는 태도'가 달랐다는 것과 '음악에 헌신'하는 마음이 달랐다는 것이다. 이것은 세상 모든 이치에도 맞아떨어졌다. 성공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다르게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하는 것을 멈추지 않은 사람이고, 자기가 가고자 하는 길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사람이었다.
그것을 깨달은 그때부터 나는 피아노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태도 자체가 달라졌다. 나의 변화를 위해 닥치는 대로 철학, 인문, 자기 개발서 등 좋은 책들을 가리지 않고 찾아 읽으며 공부하기 시작했고 무슨 일이 있어도 매일 15분씩 피아노를 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피아노 실력은 몰라보게 달라졌고 나는 그동안 알 수 없었던 나를 알게 되었다. 나는 마음먹으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한 명의 위대한 인간이었다. 인간은 올바른 방법만 알면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세상 모든 이치가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을 재며 초초해하기보다 언제라도 때가 되면 될 것이다라는 믿음으로 여유를 갖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이 글을 나처럼 무언가를 혼자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글은 내가 경험한 자기 발견의 과정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나는 나의 경험을 나누기 위해 피아노 선생님이 되었다. 앞으로 [피아노 독학 지침서]에서 내가 쓸 모든 글에는 피아노 연습에 대한 꿀팁만 서술되는 게 아닐 것이다. 인생이 뭔지 몰라서 내가 누구인지 몰라서 막막했던 한 사람의 생생한 자아성찰의 과정이 담길 것이다. 잘할 수 있었던 피아노라는 악기를 한 번 포기하고 나서 어떻게 다시 되찾게 되었는지에 관한 진솔한 자기 고백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 경험으로 배운 것이 너무 값져서 많은 사람과 나누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일종의 소명을 갖고 이 글을 쓴다. 그리고 인생을 알고 싶으면 어느 날 문득 피아노를 한 번 쳐보기를 권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쓴다.
이미 피아노 치기를 시작했는가? 피아노를 잘 치고 싶은가? 제대로 연습하기만 하면 된다. 아니면 이 글을 읽고 지금 당장 피아노를 시작하고 싶은가? 그럼 시작하라. 그러면 내가 당신과 피아노를 오랜 시간 함께 할 친구로 만들어주겠다.
그럼 지금부터 시작하려 한다. 피아노 독학 지침서. 피아노를 혼자 잘 연습하고 연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한 여러분께 그 방법을 낱낱이 알려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