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의 자세
나는 프랑스에 산다. 이곳에서 음악 교육으로 개인 사업자를 냈다. 그리고 나는 비전공자들에게만 레슨을 한다. 한국에서는 입시생에게도 레슨을 한 경험이 있다. 내가 좋은 선생님을 못 만나봐서인지, 입시를 위한 피아노 치기가 뭔지를 잘 파악하지 못해서 인지(정작 본인은 입시를 치르고 대학에 들어가고 나름 유학까지 한 사람), 그냥 입시를 위한 피아노가 싫었던 건지.. 깊게 생각해 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아, 이 길은 내 길이 아니구나. 반면 어린 학생들을 가르칠 때나 처음 피아노를 치려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가르칠 때 나는 내가 큰 보람을 느낀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깊이 생각해 볼 필요도 없었다. 초등학교 때 장래희망을 써내라고 할 때마다 나는 ‘피아노 선생님’이나 ‘가수’를 써낸 것이다. 노래는 어렸을 때 열심히 부르러 다녔다. 나는 내가 정말 가수가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점점 나이를 먹으며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하는 것보다 나의 삶을 바꿔준 피아노를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내 적성에 더 맞다고 생각되었다. 피아니스트의 꿈을 안고 있는 많은 입시생들에게 너희들 중 아주 극소수만이 피아니스트가 될 거야. 하지만 잘해보자.라고 말해주는 것보다 취미생들이나 피아노를 이제 막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음악의 기초부터 찬찬히 가르치며 피아노를 평생 친구처럼 느낄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이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음악성의 유무와 피아노 치기의 관계
피아노를 치고 싶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악보는 못 보지만 손 모양을 외우거나 귀로 듣고 피아노를 쳐 봤던 사람. 그리고 어렸을 때 배우다가 그만둔 사람이다. 그리고 이 사람들을 통틀어 더 단순하게 두 부류로 나누면 음악성이 이미 겉으로 드러나게 있는 사람, 음악성이 아직 발달되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 그리고 그 음악성은 첫 수업에서 피아노를 칠 때의 손 모양에서 어느 정도 보인다. 악보를 못 읽어서 그냥 듣거나 유튜브 영상을 보고 외워서 칠 수 있는 사람들의 손 모양은 대부분 부자연스럽다. 당연한 말이다. 어렸을 때 배워 보았던 사람들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조금 나을 뿐 보통 경직되어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한두 곡 정도는 외워서 초반 부분만이라도 칠 수 있는 사람들 중에서 신기하게 손 모양이 자연스럽게 잘 잡힌 사람들도 있었다. 피아노를 어디 가서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연주할 때는 뭔가 어색하긴 해도 소리가 달랐다. 알고 보면 그들은 대부분 귀가 예민한 사람들이었다. 자기가 들었던 곡을 최대한 비슷하게 따라치려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손 모양이 잡혔을 것이다. 배우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생각될 것이다. 그런데 정말 음색을 위한 연구를 하며 피아노를 치면 손 모양이 달라지고 손 모양을 바꾸면 음색이 달라진다. 무엇을 먼저 깨닫든 결국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자기도 모르게 된 것이지 알고 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바로 거기에서 음악성이 있느냐 없느냐가 나누어지는 것이다. 본능적으로 느끼느냐 그렇지 않으냐. 그러니까 타고난 음악성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설명할 길은 없는데 알겠는 것. 작곡가를 만나본 적도 없고 악보도 못 보지만 따라 쳤을 때 어디에서 어떤 소리가 나야 하는지 그냥 알겠는 것. 말하자면 귀가 예민한 사람. 그냥 그뿐이다. 그리고 나는 종종 그런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정말 빠르고 정확하게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듣는다. 척하면 척하고 알아들으니 초반에는 아주 수월하게 가르칠 수 있다. 반면, 모르는 건 그냥 모르는, 조금 덜 예민한 사람들도 당연히 있다. 그러면 그때부터는 내가 고민할 일이 조금 더 많아진다. 척하면 응? 하고 질문을 하니 최소한 세 번 이상 같은 말을 반복해 줘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한 나의 일이다. 음악성을 타고나지 않았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저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뿐이다. 음악성의 유무는 피아노를 배우는데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음악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피아노가 마냥 쉬운 것은 아니다. 피아노를 치는 것은 일종의 기술이기 때문이다. 기술은 연마하는 것이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어느 정도 타고날 수는 있겠지만 그저 타고난 것에만 의존하면 어느 때이건 한계의 순간이 꼭 온다. 그리고 음악성은 후천적으로 발달되는 사례가 아주 많다. 궁금해하고 자꾸만 생각하면 누구나 소리에 예민해진다. 소리에 예민해지기 시작하면서 음악성이 조금씩 발달한다. 결정적으로 인간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음악성을 다들 가지고 태어난다. 당신이 모르고 있을 뿐. 음악성이 키워지는 환경에서 자라나 자기도 모르는 새에 발달되거나 신경 쓰지 않고 있다가 쓸모가 없어져 퇴보될 뿐이다. 원래 가지고 있는 그 가능성을 끌어내 주는 것이 교육자의 역할일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연습하면 좋을지 알려주는 것도 피아노 선생님인 내가 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독학을 결심한 여러분이 가져야 할 기본 마음가짐은 이렇다.
시간이 걸려도 하면 된다.
처음 보는 건 모르는 게 당연하다.
이해할 때까지 질문하고 마침내 머리로 이해하고 나면
손가락 끝으로 실현하기 위해 연습을 꾸준히 한다.
연습을 다르게 말하면 반복이다.
이것은 자신이 가장 잘하는 부분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가장 못하는 부분을 잘 되도록 반복해서 연마하는 것이 바로 연습이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잘 되는 부분, 예를 들면 첫 소절만을 몇 번 연습하다 끝내기가 일쑤다. 안 되는 부분은 그냥 얼버무리거나 생략하거나 흐지부지 넘어간다. 음악성보다는 이 연습의 자세에서 피아노 치기를 계속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으로 차근차근 올바른 연습 방법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