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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유JiYou Apr 07. 2021

혼자서 어떻게 연습을 할 것인가

매일 한 두 마디씩 연습했을 뿐인데

 나에게 오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피아노를 처음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다. 혼자 쳐본 적이 있어도 시켜보면 막 버벅대고 난리 난다. 악보를 보는 법을 아느냐고? 그럴 리가 있나. 도레미를 모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런 건 피아노를 시작하는데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좋다. 어중간하게  배운 적이 있는 사람들은 생각이 너무 많을 수 있다. 가끔 그 생각이 재능을 방해한다. 그래서 간혹 재능이 피아노 치기 자체를 방해하는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처음 오면 당연히 ‘도레미’를 가르친다. 피아노에서 ‘도’를 찾게 하고 악보에서도 ‘도’를 찾게 한다. 그 과정은 지루하기는커녕 숭고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도와 레와 미를 가르쳐줄 수 있는 그 순간이란.. 건반 하나하나가 이름을 갖고 있는 것이고 그것들을 이 사람에게 소개해주는 기분이다. 이 아이의 이름은 ‘도’라고 해요. 위로 6 형제가 더 있는데 피아노 건반은 얘네들이 손에 손을 잡고 계속 돌고 도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흔히 이야기하듯 하얀 도화지에 연한 크레파스로 정성스레 밑그림을 그리는 기분이 든다.


 레슨을 할 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이렇다. 이 사람이 집에 가면 혼자서 어떻게 연습을 하게 할 것인가? 나는 레슨을 할 때마다 혼자 연습하는 법을 가르쳐주려고 가장 많이 노력한다. 사람마다 맞는 연습방법도 다 다르기 때문에 개개인의 특성을 잘 파악해야 한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내가 요구하는 것이 있다면, 집에서 혼자 연습할 때는 안 되는 부분만 연습해오라고 부탁한다. 물론 도레미를 이제 갓 배운 사람들에게는 그냥 모든 게 잘 안 되는 시기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하루 15분씩만 연습하라고 한다. 정말 그렇다. 하루 한 시간 이상씩 연습하면 피아니스트 된다. 우리 취미반은 하루 딱 15분만 치면 된다. 우리는 다른 직업도 있고, 또는 학교 숙제도 있고, 뭐 그렇게 다른 바쁜 일이 아주 많이 있기 때문이다. 15분이라도 안 빼먹고 매일 할 수 있는지 딱 1달만 해보기 바란다.


 어느 정도 진도가 나가면 8마디 짧은 연습곡을 치다가도 그중 막히는 곳이 꼭 나오기 마련이다. 주로 3, 4 마디와 마지막 7, 8 마디가 그렇다. 어떻게 그렇게 딱 족집게처럼 집어 말할 수 있냐고 물을 것이다. 그냥 찍은 것은 아니다. 음악을 많이 듣고 가만히 분석을 하다 보면 많은 곡들이 일종의 비슷한 형식으로 진행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글을 쓸 때도 기획과 형식이 필요하듯 음악이 만들어질 때도 비슷하다. 설명을 좀 더 하자면 총 8마디의 짧은 곡일 경우 처음부터 어려운 프레이즈가 나오는 것은 드물다. 3, 4 마디는 첫 1, 2마디에 나오는 간단한 선율을 확장시키거나 다음에 나올 모티브(동기)와 이어 주기 위해 음의 변화가 일어나는 곳이다. 새로운 곡을 처음 연습할 때 이 ‘변화’에 당연히 한 번에 적응하지 못할 것이니 이 부분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5, 6번째 마디는 첫 1, 2 마디에 나오는 선율을 살짝 변형시키거나 완전히 똑같은 선율이 모방되어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7, 8번째에서는 위의 3, 4번째 마디의 변화된 선율을 모방, 변형하며 끝이 난다. 물론 이런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곡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곡이 이렇다.


 

내가 쓴 피아노 기초 교재 14번 곡이다



자, 그럼 이럴 때 어떻게 연습하느냐. 잘 안 되는 3, 4번째 마디를 집중 공략하는 것이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그 부분만 될 때까지 하는 것이다. 좀 더 머리를 쓰는 것에 개의치 않는다면 그냥 반복하지 말고 잠깐 멈춰서 왜 안되는지 생각해 보라고 권한다. 오른손이 어려울 수도 있고, 왼손이 문제일 수도 있다. 아니면 한 손씩 하면 잘 되는데 두 손을 같이 치려면 잘 안될 수도 있다. 그러면 단계를 나누어서 연습해야 한다. 처음엔 박자를 완전히 무시하고 그냥 양손이 동시에 만나야 하는 음들만 신경 쓰며 쳐보자.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한 후에 박자에 맞게 한 번 쳐보자. 안되면 다시 박자는 신경 쓰지 말고 해 보자. 또 그다음엔 박자만 신경 써서 해 보자. 한 번에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맞추어 치는 것은 어렵지만, 나름 몇 단계를 나누어 연습해 보면 의외로 금방 잘 치게 된다. 박자도 맞게 치면서 왼손과 오른손의 음들도 정확하게 치는 것이 처음엔 힘들 수 있지만 이 두 단계를 따로 띄어 놓고 연습하면 연습의 효율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순차적으로 가다가 음들이 예기치 않게 도약을 해서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면 예기치 않은 음들을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염두에 두면서 치는 것을 반복하면 된다. 음들이 충분히 노랫가락처럼 기억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러면 치면서 계이름을 따라 부르거나 그냥 허밍으로 따라 불러보며 노랫가락을 익히면 된다. 때로는 계이름이 생소해서 일 수도 있다. 그러면 어떤 음들이 나오나 찬찬히 살펴보며 음악과 아무 상관없이 그 음들을 누르고 소리를 들어보는 것도 연습의 한 방법이다. 이 외에도 사람마다 상황마다 부딪치는 어려움은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해결 방법은 간단하다. 왜 이 부분이 어려울까 묻고, 각자의 해답을 찾아보는 것. 문제는 하나이지만 해결 방법은 여러 가지가 될 수 있다.   


위의 곡은 수많은 경우 중 하나의 예시일 뿐이다. 또 내가 언급한 것과 반대로 3,4번째 마디는 잘 되는데 오히려 첫 부분인 1, 2마디가 안 되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면 각자 제일 안 되는 부분에 가장 비중을 두고 연습을 하라는 것이 이 글의 핵심이다. 나의 학생들 대부분은 이런 방식으로 아주 빠르게 피아노 치기를 즐기게 된다. 연주를 잘하는 것만이 목표가 아니라 연습을 잘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이런 방식으로 피아노를 꾸준히 쳐 버릇하면 누구나 피아노를 가까이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과정이다. 참 재미있는 것은 인생의 모든 것들이 그렇듯이 과정을 즐기면 결과는 좋을 수밖에 없다. 나는 나의 학생들이 굉장히 자랑스럽다.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피아노를 즐기고 각자의 속도로 피아노가 늘어 간다. 작년 이맘때 나는 그들과 작은 콘서트를 열 생각이었다. 연주 실력이나 레벨과는 상관이 없는 우리끼리의 작은 축제를 기획했었다. 코로나 19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콘서트는 기약 없이 미뤄졌지만, 그 대신 올해 2021년 6월, 내가 피아노 레슨을 위해 운영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 [튜토피아노리얼]에 그들만의 작은 공연을 올릴 예정이다. 한 사람씩 원하는 곡을 준비하고 5월까지 비디오를 찍고, 내가 하나의 공연처럼 편집해 올릴 것이다. 나는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각자 다른 직업을 가지고 각각 다른 삶을 살던 사람들이 피아노라는 악기를 각자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고 연주한다. 나는 기쁘다. 나의 모든 학생들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피아노를 즐기고 있다는 것을 아주 잘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 나는 가르치는 입장이지만 오히려 레슨마다 그들에게 배워가는 것이 많다.


우린 모두 피아니스트는 아니지만 피아노를 잘 치는, 잘 즐기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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