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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유JiYou May 10. 2021

아, 나는 왜 코로나에 걸렸을까?

코로나 감염 증상 보고서

1년을 조심했다. 나는 안 걸릴 줄 알았다. 왜냐. 나는 아주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유별나다 싶을 정도로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마스크도 가장 먼저 쓰고, 손도 결벽증 걸린 사람처럼 씻고, 사람들도 최대한 안 만나고.. 집 밖으로 잘 나가지도 않았다. 그런데 오히려 너무 조심해서 면역력이 떨어졌었나? 싶기도 하다. 나는 지난 삼주 동안 남편을 제외하고 아무도 직접 만나지 않았다. 아, 한 명 만났다. 2주 전 토요일 남편이 아팠을 때 병원까지 차로 운전을 해주었던 이웃집 친구 마리. 나는 동행 내내 마스크를 썼고, 마리는 썼다 벗었다 했다. 그녀는 올해 65세이기 때문에 백신도 맞았다. 그리고 시기적으로 봤을 때 마리를 만났을 때 걸린 게 아니다. 그로부터 사흘 후인 저번 주 수요일, 나는 남편과 산책 겸 파리 3구에 있는 생마르땅 운하로 나들이를 나갔다. 단 둘이, 사람들이 많을 시간을 피해서 오전에. 그리고 점심시간 즈음 레스토랑에서 간단한 음식들을 포장 주문해 물가에 앉아 먹었다. 그리고 메트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게 다였다. 그런데 다음 날인 목요일에 이유 없이 좀 춥다고 느꼈다. 금요일 저녁부터는 열이 나고 허벅지 근육이 조금 아프기 시작했다. 이상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의심 조차 하지 않았다. 그냥 가벼운 몸살이겠지 싶었다. 남편은 아무런 증상이 없었다. 목요일과 금요일엔 합주를 하러 다녀오기도 했다. 최대 다섯 명 정도의 인원들과 음악 연습을 하고 돌아온 남편은 여전히 아무런 증상이 없었다. 집안에서 가만히 컴퓨터 앞에 앉아 비대면 레슨을 하던 나만 점점 증상이 심해졌다. 얼굴에 열꽃이 필 정도로 열이 오르고 어지러웠다. 돌리프란이라는 해열진통제를 먹고 남은 레슨을 취소한 후 침대로 들어가야 했다. 다음 날은 토요일이자 5월 1일로 프랑스 국경일이었다. 근로자의 날. 이날은 정말 모든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는 날로 유명하다. 심지어 슈퍼나 약국도 문을 닫는다. 안 그래도 요즘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았는데 이날은 이웃집들마저 아무도 없이 텅 빈 것 같았다. 아랍 사람이 운영하는 빵집만 열려있었다. 라마단 기간이었다. 이 빵집마저 문을 닫으면 라마단 종교의식으로 해가 지기 전까지 아무것도 먹을 수 없는 사람들은 저녁에 먹을 빵을 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빵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테스트를 해보고 싶었다.. 약국의 셔터는 내려가 있고, 코로나 테스트를 할 수 있는 실험실(Laboratoire)에는 '오늘 코로나 검사 없음'이라고 쓰여 있었다... 토요일이자 국경일엔 아프면 안 된다.

파리 3구 생마르땅 운하.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일요일은 일요일이니 테스트를 못하고, 월요일과 화요일은 비대면 수업을 하며 종일을 보냈다. 나는 자영업자라 돈을 벌어야 했다. 일을 안 하면 돈이 없다. 그러나 화요일 저녁 나는 맛과 냄새를 더 이상 느끼지 못했으며 이건 정말 그냥 감기랑은 다르다고 신랑에게 호소하며 내일은 꼭 테스트를 해야겠다고 선언했다. 그냥 가벼운 감기이길 바랐던 우리는 걱정되는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날 밤 나는 나의 몸이 엄청난 바이러스와 맞서 싸우는 것을 느꼈다. 내 몸에 뭔가 악질이 들어온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다음 날인 이번 주 수요일, 나는 여러 곳에서 허탕을 친 후.. (이 시국에 검사 한번 하기가 이렇게 쉽지가 않을까.. 화가 나려고 했다.) 다행히 집 근처 약국에서 안티제닉이라는 테스트를 할 수 있었다. 코를 통해서 하는 테스트인데 꼭 임신테스트기처럼 생긴 곳 위에 내 코에 들어갔다 나온 스틱을 묻히면 빠르게 양성반응을 확인할 수 있었다. 테스트 전 나의 증상을 듣던 약사는 거의 코로나가 맞다고 확신했고, 테스트기는 15분을 기다릴 필요도 없이 빠르게 결과를 보여줬다. 임신 테스트기처럼 두 줄이 딱 그어진 것이다. 남편은 이상하고도 다행스럽게도 음성이었다. 왜 나만 걸렸을까? 도대체 어떤 경로로, 어떻게? 왜? 왜? 왜?


처음엔 참 많이 억울했다. 이것이 지난 일 년 동안 그렇게 조심한 결과인 걸까? 사람들이 나더러 왜 비대면 수업을 고집하느냐고, 일대일 레슨인데 그렇게까지 조심할 필요가 있느냐고 할 때마다 설득하느라 고생했었다. 그런데 이게 그 결과다. 난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에 걸렸다. 도대체 어떻게 걸렸느냔 말이다...

억울함 뒤에 바로 찾아온 감정은 죄책감이었다. 내가 뭘 잘못했기에 걸린 거지.. 그동안 잘 버티다 뭘 잘못해서 아니, 평소와 다르게 이날 내가 뭘 덜 조심한 걸까? 하는 원인이 불분명한 죄책감.. 하지만 테스트를 받았을 때 들은 말은 나를 조금 안심시켜 주었다. "바이러스는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어요.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그냥 운이 없었을 뿐입니다." 약사의 이 짧은 위로는 나의 죄책감을 덜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걸린 건지 더 이상 찾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 주어 마음의 짐을 덜어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해주어서 너무나도 고마웠다.


정신을 좀 차리고 생각해보니, 내가 오히려 너무 조심해서 면역력이 떨어졌을 수가 있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밖에 잘 안 나가니 운동량도 부족했었을 것이다. 내가 유일하게 산책을 나간 문제의 그날, 나는 조금 추웠고 남편은 춥지 않다고 했다. 평소와 똑같았지만 이날 따라 공기 중에 있던 바이러스가 한기를 잠시 느낀 내 몸에 안착했을 거다. 그리고 다음날 감기 기운과 함께 나는 생리를 시작했다. 이거다. 나는 생리주기를 시작하는 첫날에 열도 잠깐 나고 면역력이 떨어져서 감기 기운이 드는 경험을 자주 한다. 바이러스가 이런 내 몸의 상태를 아주 잘 파악하고는 '이때다!' 하며 퍼져버린 것 같다. 여전히 어이없지만, 아무도 만난 적이 없는 나는 면역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공기 중에 떠돌던 바이러스에게 감염이 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정말이지 무시무시한 전염병이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이미 들어왔다. 이미 내 몸에 퍼졌고, 나는 정복을 당했다. 그리고 이젠 이겨내야 할 차례다. 새로운 경험으로 승화시키고 싶어 힘을 내서 글로 적어본다. 정말 신기한 체험이긴 하니까 말이다.



내가 경험한 증상은 이렇다. 바로 다음날은 긴가민가한 수준이었으니 저번 주 수요일 산책 이틀 후인 금요일 밤과 토요일 사이부터 본격적인 증상이 나타난 첫 날로 따져보겠다.


첫날..(금요일 밤부터 토) 열이 조금씩 나기 시작하면서 목이 따끔따끔하는 가벼운 감기 증상이 일어났다. 기침도 나기 시작하고 목이 잠겼다. 가래를 삼키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무조건 뱉어냈다. 내가 감기 초기 때마다 하는 일이고, 가래를 삼키지 않는 것만으로도 초기에 감기를 물리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ravintsara라는 천연 오일을 두세 방울 먹고(용각산 맛이 난다. 감기 예방의 효과가 있다.), 소금물로 수시로 가글을 했다. 평소엔 이렇게 감기를 초반에 물리친다. 웬만하면 내가 감기에 걸리지 않는 이유다. 그런데 이번엔 물리쳐지지가 않는 느낌이었다.


둘째 날..(일) 열이 심해지고 독특한 어지럼증이 나타났다. 이 어지러움은 빈혈 때와는 다른 어지러움으로, 한 번에 훅 왔다가 훅 사라지고, 또 몇 번 훅훅 어지럽다가 또 갑자기 사라지고를 반복했다. 


셋째 날..(월) 열과 어지럼증을 동반한 근육통에 시달렸다.. 나는 허벅지부터 시작이 되었는데, 그 뒤로는 어디다라고 딱 꼬집을 수 없을 만큼 온몸 구석구석의 근육과 살갗이 아팠다. 처음 경험한 통증이었다. 온몸이 얻어맞은 듯한 근육통을 동반한 몸살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걸으면 다리에 힘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또 기침과 가래가 많이 나오고 점점 코로 올라가 콧물도 나오기 시작했다. 분비물이 독해서 코와 입술이 다 터버려 따가웠다. 독감과 비슷한 증상이었다.


넷째 날..(화) 위의 독감과 비슷한 증상이 최고조에 달하여 몸이 대항해 싸우는 것이 확실히 느껴져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을 만큼 피곤했다. 결정적으로 냄새와 맛을 잃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잃는다. 이게 고기인지, 야채인지는 알겠는데 맛은 다 똑같았다. 여기에서 아.. 나는 그냥 보통 감기가 아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섯째 날..(수) 테스트에서 양성 반응이 나왔다. 약사가 나는 젊고 여자이기 때문에(?) 잘 이겨낼 거라고 말해준다. 그런데 별다른 처방약이 없다..!! 그냥 집에 가라고 해서 돌리프란과 비타민을 사들고 집에 왔다.. 아, 마스크 30장을 선물로 줬다..


여섯째 날..(목) 근육통은 사라지고, 열도 내렸다. 기침과 가래는 여전하다. 국민 건강 의료 보험 기관에서 전화와 문자를 보내 나의 상태와 안부를 묻는다. 그리고 잘 격리하고 있는지 물어본다. 나는 여전히 아무도 안 만나고 있고, 남편도 모든 일정을 취소했다. 우리는 둘이 같은 공간에서 격리한다. 남편은 다행히도 아직 증상이 없지만 심리적으로 걱정이 되기 시작한 듯 보인다. 당연한 이야기. 그런데 이렇게 한 공간에 있는데 남편은 안 걸린다..? 이상하고도 이상한 바이러스.. 아니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조심을 해야 하는 거야? 종잡을 수 없어 더욱 무섭다.


일곱 번째 날..(금) 맛과 냄새는 여전히 느껴지지 않는다. 먹는 게 점점 더 재미가 없다. 남편은 어제 잠깐 심리적인 불안을 느낀 후 목이 따가운 것 같다가 곧 다시 평소처럼 아무런 증상이 없다. 하지만 남편도 예방을 위해 매끼 돌리프란을 먹는다.


여덟 번째 날..(토) 전날과 같은 증상. 남편은 별 증상 없지만 역시 나와 함께 돌리프란을 먹고 있다. 그리고 모든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나에게 맛있는 요리를 해주려고 노력하지만 나는 여전히 아무 맛도 못 느낀다. 모든 게 그냥 물과 같은 맛. 배가 부르다는 것을 빠르게 느끼고 고프다는 것도 빠르게 느낀다. 즉, 매끼를 충분히 먹지 못한다는 것. 맛이 안 느껴지니 배가 어느 정도 차면 그만 먹고 싶어 진다.


그리고 오늘 아홉 번째 날..(일) 내일 다시 테스트를 해봐야 알겠지만 남편은 확실히 무증상이다. 나는 아직도 기침을 하고 약간의 가래가 끓는다. 근육통과 열은 이제 모두 사라졌다. 그나마 다행이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글을 쓰는데도 어지럽지 않다. 특유의 어지럼증도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피곤하고, 숨을 깊이 들이쉬고 싶을 때마다 마음대로 되지 않고 기침이 나온다. 글을 쓸 때도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고 두서없이 나온다. 쓰는 와중 몇 번씩 욕실에 가서 입을 헹구고 손을 씻는다. 그리고 글을 쓰는 것을 잠시 멈추고 남편이 차려준 점심을 먹는다. 계란찜이다. 아주 잠깐이지만 냄새가 느껴졌다. 야호! 아주 약간이지만 맛이 느껴진다. 이렇게 서서히 나아지고 있긴 하다.




수요일에 테스트를 받았을 때 어떤 종류이냐에 따라 증상의 기간이 달라진다고 했다. 기본형이면 사흘, 영국형이면 열흘, 요즘은 남아공형도 있나 보다.. 이건 17일... 나는 내일 열흘째라 다시 테스트를 하러 가야 한다. 나는 언제쯤 싹 나을 수 있을까? 





입맛을 되찾으면 양념통닭을 해달라고 해야지.. 가만있어보자. 치킨무를 지금쯤 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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