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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유JiYou Nov 04. 2021

기차

주제 정하고 글쓰기

아주 긴 기차를 탔다. 너무 길어서 하마터면 기차를 놓칠 뻔하였다. 나는 기차의 머릿 쪽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내가 타야 할 칸은 기차의 꼬리 쪽이었다. 정거장에 기차가 머물 시간은 단 5분. 나는 잘 뛰지 않는다. 선택의 여지가 있을 때는..


짐을 들고뛰면서 생각했다. 짐을 많이 안 싼 게 참 다행이다. 나는 왜 타야 할 칸이 있는 곳을 완벽히 반대로 생각했을까. 이 기차는 나를 기다려줄까. 그런데 나, 생각보다 달리기가 빠른데?


오른발을 문 안에 채 디디기도 전에 알람 소리가 울렸다. 곧 문이 닫힐 거라는 신호다. 내 등 뒤로 문이 닫히며 물리적인 그 움직임에 공기가 만들어내는 바람이 느껴졌다. 비로소.. 한숨.. 그리고 심장이 무척 빠르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마스크 안에서 내가 만들어내는 공기가 더웠다.


내 좌석에 누군가가 앉아있다. 내가 기차를 기다리며 상상하던 그대로다. 그러면 나는 미리 준비한 대로 정중하게 양해를 구한다. 내 잘못이 아니지만 일단 그렇게 한다. 상대방이 내 자리를 내놓지 않고 고집을 부릴 수도 있다는 상상도 미리 해둔 나는 순순히 자리를 비켜주는 그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나는 자리를 잡고 앉아 가방을 두 발 사이에 끼워 넣듯이 정리한 후 주섬주섬 코트를 벗어 무릎 위에 가지런히 정리해 포갠다. 지금 당장은 더울지 몰라도 기차가 달리면 곧 추워질 수도 있기 때문에 목도리는 벗지 않는다. 만약 춥지 않으면 목도리도 벗으면 된다. 그러다 추우면 목도리를 다시 두르고 코트는 담요처럼 덮으면 된다.


난 아주 긴 기차를 탔다. 긴 시간을 함께 달릴 것이다. 기차가 나를 목적지에 데려다주면 나는 여행의 기억을 닫고 다음 일정을 향해 움직일 것이다. 그리고 다시 여행이 그리울 때 즈음, 기차가 얼마나 길었었는지 잊은 채 멍하니 기차를 기다릴 것이다. 내 좌석에 앉아있을 누군가에게 정중하게 자리를 내어 줄 것을 요구하는 상상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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