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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유JiYou Nov 09. 2021

창문

주제 정하고 글쓰기

어렸을 때 할아버지 댁의 마당을 향한 창문이 문득 떠오른다. 그 창문턱에 올라가서 창살을 붙잡고 찍은 사진이 있었다. 나는 개구지게 웃고 있었다. 아마 그 창살은 내가 창문턱에 자주 올라가니 떨어지지 말라고 나중에 달은 것일 것이다. 단독 주택의 1층 창문이라 창살이 있어야 할 만큼 높은 위치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이가 올라갔다 떨어지면 크게 다칠 수가 있으니 아마 할아버지가 설치하신 게 아닌가 싶다.


창문에 올라가 무엇을 보았을까 상상해본다. 내 기억이지만 너무 어렸을 때라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집의 구조와 풍경은 기억난다. 그 창문에서는 마당이 보였을 것이다. 왼쪽으로 이웃집 벽과 마주하는 쪽에 작은 화단이 있었다. 가장 선명히 기억나는 꽃은 사루비아. 봄이 되면 꽃을 따서 꿀을 빨아먹던 기억이 난다. 개미가 보이면, 그 꽃잎은 분명 단거였다. 분홍 꽃잎의 무궁화도 있었다. 대문 옆의 한 구석에 피어있었는데, 꽃이 피면 참 예뻤다. 그 밖에도 펜지나 국화 같은 꽃도 기억나고 이름을 모르는 풀과 꽃들이 가득한 화단이었다. 할아버지는 화초에 물을 주고 기르는 것을 즐겨하셨다. 나는 그것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 기억은 파란 여름에 눈부신 햇살, 분수처럼 터지는 물줄기로 마무리된다.


창문에서 보이지는 않는 왼쪽 편엔 수돗가가 있었다. 거기에서 내 몸을 다 담그고도 남는 큰 대야에 (내 기억으론 할머니는 그 대야를 ‘다라이’라고 하셨다. 빨간 다라이..) 물을 받아 목욕을 하곤 했다. 할머니가 초록색 때 타올로 등이랑 팔이랑 밀어주시는 걸 좋아했다. 엄마가 밀어주면 너무 아픈데 할머니가 밀어주면 간질간질한 것이 기분이 좋아졌다. 수돗가 담장 습기가 있는 벽엔 나팔꽃이 피어있었다. 푸른빛이 도는 보라색 나팔꽃. 밤이 되면 또로로 말리던 꽃잎을 신기하게 보던 내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다.



창 밖을 보며 개구지게 웃던 나의 사진은 어디로 갔을지..

문득 갈색으로 빛바래는 그 사진은 나의 기억 속에 존재한다. 그 사진을 찍어주었던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하얀 원피스를 입고 창살을 양손으로 붙들고 몸을 앞뒤로 흔들고 있었을 나를 웃게 만들어주던 그 사람은 누구일까? 아마도.. 할아버지였을 것이다. 나를 참 많이도 예뻐해 주셨던 분. 그러니 나를 그렇게 예쁘게 웃게 해 주신 분도 할아버지였을 것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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