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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유JiYou Apr 17. 2021

피아노를 배우러 오는 사람들

나는 피아니스트는 아니고, 피아노 선생님이다.

 피아노 레슨을 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나는 피아노를 전공하는 학생은 가르치지 않는다. 취미로 배우는 학생,  비전공자 학생들만 가르친다. 입시생들을 가르칠 실력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지금도 내가 어떻게 피아노로 대학엘 들어갔는지  이해가  된다. 운이 좋았던  같다. 그래도 나의 성격상 입시생들을 받아야 한다면 어찌어찌 열심히 공부해가며 가르치기는 하겠지만, 거기에 기운을 빼앗기고 싶지 않다. 그리고 나는 입시제도에 그다지 긍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어쩌다 보니 대학도 나오고 유학까지 했지만, 음악을 하기 위해 학교가 절대적인 필요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친구들이나 공연이나 음반, 책에서 스스로 찾아 배운 것이  많다. 그리고 음악을 전공할 사람들은 우선 모두 스스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왕 선생님을  거면 정말 위대한 멘토를 만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내가 음악가에게 멘토가   있을까? 상상만 해도 벌써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나는  일부러라도 단순해질 필요가 있는 사람이다. 그리하여 나는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피아노를 배워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이 좋다. 독학을 하다가 도저히 모르겠는 부분이 생겨서 찾아온 사람은  환영한다. 피아노 교재를 참고하며 레슨을 하지만 내가  곡을 가르치기도 한다. 레슨을 하고 있어도  안에 창작 욕구는  있다.  때는  창작욕구와 나의 능력의 대립에 고통스러웠던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일주일에 두세 번씩 하며 보냈던 시간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레슨을 주업으로 하고 있고 유일하게 나의 퍼포먼스를   있는 곳은 나의 유튜브 채널이다. 그곳에 주기적으로 피아노 연주 영상들을 올린다. 그리고 그것은  성향에  맞는다. 혼자 연습하고   때까지 비디오 찍고,  찍고 나서 악보랑 같은 화면에 넣는 작업하고, 혼자 꽁냥꽁냥 보내는 시간이 언제 지나갔나 싶을 만큼 빠르게 지나간다. 누가 말을 시키지 않으면 쉬지도 않고 밥도  먹고  일들을   있다.



내 유튜브 채널에 가장 최근에 올린 영상



이런 나에게 오는 학생들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어쩌다 보니 내 학생들 중 음악에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도 꽤 있다. 전공생은 가르치지 않는다고 했었지만 그건 피아노 전공생을 말하는 거고, 내 학생들 중엔, 이미 프로페셔널 음악인이나 그의 자녀들도 있다. 가수도 있고, 컴퓨터 음악을 전공하는 사람도 있고, 기타리스트가 자기 아들을 맡긴다거나 학생 아버지가 알고 보니 콘트라베이시스트였던 적도 있다. 프랑스 라디오 France culture 음향 엔지니어로 근무하다 은퇴한 사람도 있었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작곡가도 있었다. 작곡가라고 누구나 피아노를 잘 치는 것은 아니다. 무언가를 완벽히 해야지만 무슨 일을 벌일 수 있는 건 아니다.

 
 음악에 관련 없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주로 이런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프로그래머, 엔지니어, 의사, 기자, 어바니스트 (Urbanist 설명을 세 번이나 들었는데 무슨 일을 하는 직업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감이 잡힐 듯 말 듯해서 한국어로 번역하기가 힘들다. ), 은행 관련, 주식 관련, 요리사, 요가 강사, 재단사, 배관공, 변호사, 과학자, 건축가, 연극배우, 영화감독, 여행 가이드, 소설가, 주부, 학생 등등..  이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직업군을 원 없이 만나 볼 수 있다. 주로 프랑스 사람이다. 현재 한국과 프랑스 혼혈아, 이탈리아 사람, 알제리 사람, 영국 사람 각각 1명씩 빼면 다 프랑스 사람이다. 내가 받고 있는 정원은 최대 30명까지. 그 이상도 해 보았지만 내가 지치지 않고 할 수 있는 인원수는 일주일에 25명에서 30명 남짓이다. 학원이 아닌 개인 레슨 치고는 꽤 많은 숫자에 해당한다. 이 인원에는 웹캠 수업도 포함되어 있다. 지금은 아니지만 작년까지 스위스와 벨기에에도 학생이 있었다. 멀리 살아서 레슨을 받으러 올 수 없어서 웹캠 수업을 받는 거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점.. 그들은 왜 가까이에서 선생님을  찾지 않고 멀리 프랑스에 사는 한국인에게 본인들의 모국어인 프랑스어로 레슨을 받은 걸까?... 알 수 없다. 물론 나에게 나쁠 건 없다. 오히려 기분이 묘하게 좋았다.

 지금은 코로나 바이러스 덕분에 예전에 비해 웹캠 수업을 더욱 활발하게 하고 있다. 금요일 저녁과 토요일 오전엔 주로 웹캠 수업 약속만 잡는다. 나는 활동적인 사람이기도 하지만 하루나 이틀 정도 집 안에만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웹캠 수업을 하면, 일은 했는데 집안에 계속 틀어박혀 있을 수 있어서 좋다.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모든 학생들을 레슨 해야 한다면 난감할 거 같다..

나는 웹캠 수업을 주로 스카이프로 한다. 요즘엔 줌을 쓰기도 한다.

 
 평일 중 삼일은 파리에 있는 작업실로 간다. 이제 출장 레슨은 하지 않는다. 나에게 레슨을 받으려면 내 작업실이나 내 집으로 찾아와야 한다. 처음엔 물론 내가 학생들 집으로 갔다. 인기 강사가 되면서 레슨비도 올리고 시간 조절도 하고 내 작업실을 학원처럼 꾸며 사람들이 나에게로 모이게 만든 것은 참 기특한 일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이제는 무리해서 일정을 잡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새로운 일들을 할 시간이 넉넉한 편이다. 나는 유튜브와 블로그 관리도 해야 하고, 악보를 만들어서 파는 소소한 부업도 앞으로 계속할 것이므로 이 모든 작업들을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다. 거기다 이제는 일기가 아닌 공개 발행 글도 주기적으로 써야 한다. 나는 선천적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는 것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다. 다행이다.

 작업실은 내가 유학하던 시절 살던 파리 중심가의 작은 아파트. 교통이 편해 사람들이 드나들기에 좋은 장소이다. 둘이 살기엔 좁은 공간이지만 레슨을 하기엔 너무나 좋은 조건의 집이다. 이웃들도 친절하고, 무엇보다 서로 오래 봐서 잘 안다. 건물 방음이 잘 된다기보다는 이해심이 많은 이웃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아무에게나 찾아오는 행운이 아니다. 파리에서는 음악연습을 집에서 못하는 친구들이 참 많다. 이웃들이 불편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운이 좋다. 내 이웃들은 피아노 소리가 듣기 좋다며 방해는 전혀 안된단다. 한 시간에 얼마..? 라며 슬며시 관심을 비추기도 한다. 집으로 쓰던 이 아파트를 작업실로 꾸미기 위해 페인트칠을 다시 했다. 가구도 바꾸고 무엇보다 유학시절엔 디지털 피아노로 연습을 했는데 이제는 진짜 피아노가 생겼다.

피아노가 배달되었던 날, 기뻐하는 나의 모습



 코로나가 한창 물이 올랐던 작년 3월 17일, 프랑스 정부는 전 국민을 약 3개월간 의무적으로 자가격리를 하게 했다. 처음부터 3개월을 하겠다고 한 것은 아니고 처음엔 3주 , 그 3주가 지나면 다시 또 3주, 또 2주 이렇게 야금야금 기간을 늘려갔다. 생각해 보니 얄밉다. 처음부터 3개월이라는 걸 알았더라면 덜 불안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별다른 방도가 떠오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정부로서는 그 방법이 최선이었을 거다. 처음부터 '3개월 동안 집에서 나오지 마시오'했다면 폭동이 일어났을지도 모를 일이기도 하다. 그러다 7월부터는 자가격리가 풀리고 비교적 자유가 허용되었다. ‘저녁 8시 전, 전 국민 귀가’라는 조치도 함께 내려졌지만 대낮에 왜 나가야 하는지를 증명서로 작성해서 늘 지니고 다녀야 하고, 1시간 안에 귀가해야 한다는 조건이 사라진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였다.


 이 무렵 피아노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갑자기 부쩍 늘어났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 자가 격리하면서 집에서 할 취미 생활에 피아노 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예전보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사람들이 전부터 배우고 싶던 것들을 하나씩 시작하게 되는 시기였을 것이다. 한동안 잠잠하던 개인 레슨 광고 사이트로부터 갑자기 문의가 빗발쳤다. 그러나 그 사람들을 다 받아줄 수가 없었다. 나는 급기야 광고를 잠시 비공개로 돌려놓아야 했다. 너무 많은 알람이 와서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을 거절해야 하는 것에 괜히 죄책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대답을 하지 않고 있으면 그냥 다른 선생님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내가 대답해 줄 때까지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얼른 답을 해줘야만 한다. 그러나 당시 나의 상황은 코로나 초반에 잃어버렸던 내 학생들이 이미 거의 다 돌아온 상태였고, 웹캠으로 레슨을 시작하고 싶다는 새로운 학생들이 있어, 4월 말부터 이미 온라인 상으로 다시 수업을 시작한 상태였다. 자가격리 때는 웹캠 수업으로 대체했지만 격리가 풀린 7월부터는 다시 작업실로 모여 레슨을 했다. 그래도 나는 이때 새로운 학생 딱 3명만 더 받았다. 바스티앙도 그중 한 명이었다. 시간대가 맞았고, 어린아이들 보다는 나중에 혹시 다시 자가격리가 되면 웹캠으로도 이어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많은 어른 학생들을 골랐다. 가르치다 중간에 본인의 의지가 아닌 다른 이유로 레슨이 멈추는 경험은 한 번으로 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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