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엔지니어 바스티앙
바스티앙이라는 친구는 내 유튜브 채널에서 처음으로 영상의 소재가 되어 준 고마운 학생이다. 그는 건축 엔지니어이다. 건축가도 아니고 엔지니어도 아닌 건축 엔지니어이다.. 내가 무식한 건지, 너무 세상을 모르는 건지 알쏭달쏭한 직업이 참 많다. 그리고 다행이다. 다양한 직업이 있다는 게 말이다. 이렇게 세상 어딘가엔 내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직업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니 괜히 위로가 된다. 사람들이 다 의사, 변호사, 주식 설계사가 되어 돈을 벌어야 하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키가 껑충하게 큰 이 건축 엔지니어 청년은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며 나를 찾아왔다. 그의 할머니가 피아노를 잘 치셨단다. 그런 할머니에게 언젠가 엘리제를 위하여를 직접 연주해드리고 싶다던 그의 마음이 너무 이뻤다. 이제 겨우 25살 청년이다. 그 또래에 할머니를 위해 피아노를 배울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많지는 않을 것이다. 작년 9월부터 배우기 시작했으니 4월 중순인 지금 7개월째가 되어 간다. 중간에 또 자가격리가 되어 웹캠으로 수업을 이어갔다. 엘리제를 위하여는 이제, 당연히 너무 잘 친다. 내가 당연하다고 말한 이유는 간단하다. 포기하지 않으면 인간은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걸 피아노를 치며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포기한 적이 없고, 나도 그를 포기한 적이 없다. 그러니 못 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처음 피아노를 배우려는 목적을 단 1개월 만에 이루었다. 할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좋아하셨단다. 그러나 그는 그 이후에도 피아노를 계속 배운다. 이제는 그 자신을 위해서 배운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 자신을 위한 일이었을 거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기가 직접 피아노를 배워 연주해주고 싶다던 그의 소망은 아름다웠다.
현재 진행형인 그의 피아노 배우기는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거르지도 않는다. 거금을 들여 기존에 가지고 있던 연습용 건반을 대신할 고급 퀄리티의 디지털 피아노를 샀다.. 그는 초반에 작곡에도 관심을 보였다. 도레미를 간신히 배운 첫 레슨으로부터 3주 동안 그는 일주일에 한 곡씩, 8마디에서 10마디 정도씩 되는 짧은 곡을 써서 가지고 왔다. 가지고 있던 수첩에 악보를 직접 그려서 말이다. 물론 음표의 길이는 말도 안 되게, 그래서 참으로 신선하게 창작하여 그려왔지만, 어떤 의도로 쓴 것인지는 알 수 있을 만큼 아주 깔끔하게 그려 왔다. 그리고 그 곡들을 직접 연주해 줬다.
그가 나에게 헌정해준 그 3곡은 그렇게 나의 일기장에 잘 보관되어 있다.
나는 가끔 이렇게 학생들이 곡을 써줄 때마다 황홀한 감동을 느낀다. 곡을 써 온 학생은 바스티앙뿐만이 아니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곡을 써 온 학생들 중 프로페셔널 뮤지션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점이다. 다들 이제 겨우 막 피아노를 시작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피아노 배우기를 계속해 나가면서 작곡에 대한 열의는 잠시 멈춘다. 바스티앙도 세 곡 이후, 다시 나에게 새로운 곡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안타까웠지만 닦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나는 그저 기다린다.
그렇게 한 가지 내가 깨달은 건, 사람들은 누구나 창작의 욕구가 있으며, 그것을 실천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욕구는 자신이 그저 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마음껏 발휘되고, 자신의 능력이 상승될수록 조금씩 사그라든다. 창작욕구는 테크닉과 비례하지 않는다. 창작은 머릿속이 가볍고 순수할 때 그 구상이 더욱 자유롭게 펼쳐진다. 많이 배울수록 창작을 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알면 알 수록 상상되는 음들의 퀄리티가 높아지고 머릿속이 복잡해져서 점점 너무 큰 그림을 그리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후 정말 창작을 하고 싶으면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물고 늘어지는 끈기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천재는 뭔가 창작 능력이 특출 난 사람이 아닌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그 창작 욕구를 머릿속에 그려지는 만큼 실현시키려는 의지가 남다른 사람인 것 같다.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킨 사람들은 그만큼 자기 인생을 아낌없이 창작에 헌신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 고된 고생길을 감내한 결과로 위대한 작품을 남긴 것이다. 후세에 그것들을 즐길 수 있는 우리는 위대한 예술가들의 희생으로 인해 남겨진 작품들로 여유롭게 문화적 풍요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어느 날 오후, 나는 조용히 혼자 작업실에서 영상편집을 하고 있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나의 작업실 밖에서는, 안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였을까? 갑자기 문틈 사이로 하얀 쪽지가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