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살이 이야기
남편은 삼 형제의 장남이었다. 밑으로 나이 터울이 고만고만한 남동생이 두 명, 나에겐 두 명의 도련님이 있는 거였다. 대가족의 꿈이 있는 아버님은 아들들의 결혼이 늦지 않길 바라는 눈치였다. 큰 포부를 품고 이사 온 집이 하루빨리 네 식구로 북적이는 날을 기다렸으리라. 나 같은 경우야 때마침 사돈을 알고 있는 경우이니 빨리 밀어붙일 수 있었다지만, 이런 경우는 흔치 않으니 쉬울 리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아버님은 또 우리처럼 아는 사돈을 원하셨을까. 어느 날 갑자기 아버님 지인의 딸과 큰 도련님의 만남이 있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놀란 마음이 진정되기도 전에 둘의 결혼 얘기가 오갔다. 아버님과 같은 모임을 하는, 친정 아빠도 알고 있는 분의 딸이었다. 여러모로 나와 비슷한 경우의 아가씨였다.
나에게 동서가 생긴다니. 생각지 못한 변수였다. 도련님이 있으면 동서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웃기게도 나에게 동서가 생길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언제까지나 혼자일 것 같았으니까. 그렇구나. 동서가 들어오는구나. 신기했다. 두근거렸다. 어떤 아가씨일까. 어떤 꿈을 꾸며 결혼을 할까. 자기가 살게 될 집이 어떤 곳인지 알게 되는 날. 행복해할까. 불행해할까. 아가씨는 어떤 생각을 할까. 어이없게도 이런 것들이 궁금했다.
결혼이 결정되었다. 인사를 위해 집에 들른다고 했다. 문이 열리며 아가씨가 들어왔다.
첫 느낌? 환했다. 채도 높은 쨍한 빨강. 화사한 열대 꽃이 생각났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흘러넘치는 세련도, 스튜어디스라는 직업도 나에겐 큰 의미 없었다. 나의 시선이 머무는 곳, 그곳은 그녀의 얼굴이었다. 빛이 났다. 청량한 바람이 떠오르는 그녀의 미소가 정말 예뻤다. 현실 같지 않은 날이었다.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구나.’
알 수 있었다. 내향적인 나와는 달리 그녀는 한눈에 봐도 외향적인 아가씨였다. 나와는 다르지만, 분명 나에게도 있었던 그 미소.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미소는 기억도 희미한, 옛 사진 속에서나 보았던 나의 미소를 떠오르게 했다. 기대와 불안이 함께 오갔다. 저 미소가 지켜질 수 있을까. 저 아가씨라면 가능할지도 몰라. 저 아가씨라면.
나와 같이 살게 될 동서였다. 의미 없이 흘러가던 시간에 반짝이는 순간을 심어줄지도 모를 이였다. 어떤 변화가 생겨날까. 생기기는 할까. 그래, 생길 거야. 그렇게 될 거야. 설레기 시작했다. 다른 이들이 말하는 동서 사이의 기 싸움? 난 그딴 거, 의미 없었다. 져도 된다. 시부모님의 입김에 힘없이 휘둘리기나 하는 나 대신, 이해할 수 있는 조그만 변화라도 끌어낼 수 있는 동서라면. 그런 동서라면 얼마든지 뒤에서 힘이 되어줄 각오를 하고 있었다. 돌아보면 참 안쓰럽다. 그저 기댈 곳만 열심히 찾고 있던 나. 내 삶을 흔들어 줄 이를 기다리고만 있던 나. 나의 시선은 늘 나를 등지고 있었다.
결혼과 함께 도련님과 동서는 완성되어있는 1층 공간이 아닌, 2층 시부모님댁으로 들어갔다. 직업도 관뒀다. 직장 있는 며느리를 들일 시부모님도 아니었다.
“형님처럼 1년은 같이 살며 가풍을 익히고, 익숙해졌을 때 1층으로 내려가거라,”
법칙인 듯, 당연한 아버님의 말씀이셨다. 동서도 개의치 않았다. 밝은 미소와 함께 가벼운 발걸음으로 2층으로 올라갔다. 다행인 걸까, 가슴앓이의 시작인 걸까. 관객석에 홀로 앉아있는 기분이었다. 식구 모두 무대 위의 배우 같았다. 나만 보는 연극이 시작된 것 같았다.
동서는 밝은 사람이었다. 첫인상과 다름이 없는 사람이었다. 화사하게 번져 나오는 상큼한 기운이 부러울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옆에 서 있기만 해도 나에게로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낯선 기운은 매일 지내던 평범한 공간도 다르게 보이게 했다. 빛나는 색깔로 한 겹 한 겹, 부엌이 덮이는 기분. 좋았다. 2층 가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탁탁탁탁, 무엇이든 거침없이 썰어대는 화려한 칼질도 놀라웠다.
“할 것도 없는데, 유부초밥이나 할까요?”
나는 한 번도 사 본 적 없는 시판 유부초밥 소스로 뚝딱, 눈 깜짝할 새 한 접시 만들어 담아냈다. 소스를 만들 줄 몰라 쩔쩔매던 과거의 내가 우스워지던 순간이었다. 살림살이도 하나 모르고 시집온 나와 달리, 처음부터 고민 없이 척척 수월하게 해치우는 동서는 어른 같았다. 나에겐 찾아볼 수 없는 자신감이 흘러넘쳤다.
“동서는 살림을 언제부터 한 거야? 너무 잘한다.”
“전, 제가 만들어서 친구들 불러다 먹이는 게 그렇게 좋더라고요. 쉬는 날이면 같이 모여서 놀고먹고 그랬어요. 간단한 것들이죠. 대단한 건 없어요, 형님.”
뭔가, 동서의 말을 듣고 있으면 가슴이 후련해졌다. 대리만족이 그런 걸까. 그 자리에 나도 있었던 것 같은. 하루하루가 무겁지 않았다. 동서의 모든 것이 참 예뻤다.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갈 때마다 조금씩 느낌이 왔다. 밝았던 동서의 기운이 옅어져 갔다. 미소가 사라져 갔다. 그 미소가 사라지지 않길 그렇게 바랐는데.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언제부터인가 동서의 외출이 잦아졌다.
동서의 친정은 시댁과 한 동네였다. 슬리퍼를 신고 갔다 올 수 있는 거리였다. 동서는 친정에 가서 쉬었다가 온다고 했다. 난 동서가 참 좋은데, 시부모님들은 표정이 좋지 않았다. 동서의 칭찬을 들은 적이 없었다. 처음부터 동서만큼 잘할 며느리가 있을까. 뭐가 문제일까. 궁금했다.
기억에 남는 동서의 말은
“전 일 년은 살아보고 혼인신고 할 거예요. 아직은 믿음이 없어요.”
그리고 기억에 남는 어머니의 말은 이것이다.
“아니, 쟤들은 왜 따로 자니. 벌써 저렇게 해서 어쩌려고.”
알 것 같았다. 시부모님의 표정이 왜 좋지 않았을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동서는 나 같지 않았으니까. 늘 보던 착한 며느리가 아니었으니까. 동서는 생각을 절대 놓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무엇보다 남편을 이해할 수 없어요.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이에요.”
나와 같은 감정을 동서도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 헛웃음이 났다. 형제가 이렇게나 닮았다니. 거기에 더한 시부모님의 이해할 수 없는 규칙들이 있었으리라. 안 봐도 알 수 있는. 2층에서의 생활이 어떠했는지 자세히 보지 않고, 듣지 않았으니 난 모른다. 하지만 상상했던 연극의 흐름이 그대로 흘러가고 있음은 확실했다. 시부모님은 여전했고, 동서는 나처럼 견디지 못했다.
“나갈 때 나가더라도, 한번은 뒤집어 드릴게요. 형님은 구경만 하세요.”
동서는 이혼을 결심했다. 간단했다. 혼인신고도 안 했으니 짐만 챙겨서 나가면 끝이었다. 뒤집어 준다는 말만큼 현실적으로 집안이 뒤 집어지는 소동은 없었다. 애써 기억하려 해도 기억나는 어떤 것도 없는 걸 보면. 동서만 2층에서 사라졌고 빛나는 색깔이 걷어졌을 뿐이었다. 일상적인 시간만이 흘러갔다.
“큰애야 남은 건 내일하고 내려가서 쉬어라.”
아마도 사돈들 사이에 언쟁이 오갔으리라. 그 뒤로 확실히 한결 부드러워진 말투의 시부모님을 느꼈으니까. 동서는 날 위해서, 나 대신 시부모님에게 어떤 시원스러운 일갈을 날려줬을까. 형님이 불쌍하다고 말했을까. 형님에게 잘하라고 말했을까. 2층 가는 발걸음이 다시 무거워졌다. 동서는 나비처럼 자유롭게 창밖으로 날아갔고, 난 날개 잃은 나비처럼 집안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날아가는 동서의 마음이 얼마나 후련할까. 자유로울까. 부러워만 했었다. 그러지 못하는 나의 처지를 비관만 했었다. 바닥만 바라보던 기억이 가득하다. 그땐 후련한 동서의 뒷모습만 기억에 남았는데, 왠지 지금은 다른 생각이 든다. 시댁의 이 층 계단을 내려가며 동서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한심하게 자기만 바라보던 형님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형님은 구경만 하세요”
어떤 심정으로 한 말이었을까. 형님답지 못했던 형님의 기억이 너무 부끄럽다. 한때, 나의 동서였던 그녀는 여전히 현명하게 나아가고 있겠지. 그녀와 많은 대화를 못 해본 것이 아쉬운 지금. 이따금 생각해 본다. 우리가 지금 만나는 인연이었다면, 그랬다면. 이런 생각을 품고 돌아볼 때가 있다. 비슷한 뒷모습이 보일 때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