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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러려니 Sep 24. 2024

11. 엄마는 괜찮아

시집살이 이야기

신혼 시절부터 나는 무엇이든 허락을 구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착한 며느리가 해야 하는 행동과 본연의 내가 하고 싶은 행동은 차이가 있었으므로. 신랑 친구들이 놀러 와도 시부모님 밥상은 차려야 하는 큰 이유에서부터, 부엌에 있는 유통기한이 지난 물건조차 함부로 버릴 수 없는 작은 이유까지. 모든 것은 시부모님의 생각에 존재하는 이유가 있었다. 나로선 들어도 이해할 수 없는 이유가 대부분이었지만. 그러니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착한 며느리는 가부장적인 시부모님에게 혼날 짓은 하지 않는 법 아닌가. 

     

“아버님, 이렇게 하면 될까요?”

“어머님, 이건 어떻게 할까요?” 

    

나의 마음은 늘 예민함을 유지했고, 그만큼 늘 별 탈 없이 일상은 흘러갔다. 칭찬받는 삶을 유지하려 열심이었다. 덕분에 도드라지게 탈이 나는 날은 없었다. 의도하는 대로 흘러가는 나날들. 그렇다면, 그쯤 되면 만족스러워야 당연할 진데.. 그렇지 않았다. 그럴수록 더욱 아래로 꺼져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눈치껏 행동하는 마음속 깊숙이 틀어 박혀있는 무엇, 그것 때문에. 찐득함에 숨통이 막히는 기분. 곪아 가는 자존심이었다.  

    

‘이런 것까지 허락받아야 해?’


허락을 구한다는 것. 한없이 하찮아지는 자신을 지켜보는 일이었다. 나에게 그것은 좋고 싫고의 영역이 아니었다. 부아가 치미는 기분이었다. 결혼과 함께 기대했던 어른스러운 삶, 그런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줄 알았던 나. 자신 있었다. 무엇이든 자신감 넘치게 척척 해내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시키는 거나 잘하라는 삶이었으니. 영원한 아이의 삶에 갇혀 사는 기분이었다.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만이 가득했다. 스스로가 한심했다. 

     

한심한 하루가 일상이 되었다. 허락받는 행위를 그렇게나 싫어하면서도 당연한 듯 허락을 구했다. 지긋지긋한 착한 며느리 콤플렉스를 버릴 용기가 없었으니까. 버릇없는 며느리로 보일까 전전긍긍 불안해하던 마음. 허락을 구하며 불안을 잠재우던 나날. 그 시절 나에게 허락은 시부모님에 대한 며느리의 예의와 다름없었다. 깍듯한 예의와 함께 썩어들어가는 나의 자존심. 시부모님의 마음을 열기 위해 하는 행동이 반복될수록 아이러니하게도 내 마음은 굳게 걸어 잠겨 들었다. 

     

숨이 막혔다. 숨을 쉬고 싶었다. 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문드러진 자존심 속에 움켜쥔 나만의 방법. 시키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허락의 횟수라도 줄이고 싶었다. 자존심만큼은 지키고 싶은 나만의 소소한 오기랄까. 헛웃음이 나지만 그랬다. 한심하게 쪼그라드는 자신을 조금이나마 펼치고 싶은 마음. 안 하고 말지, 그랬다. 하지만 모든 일엔 예외가 있는 법. 엄마와의 일이 그러했다. 

    

나의 약속은 허락이 필수였다. 눈치껏 최소한의 약속만 만들었기에 잔소리에 막혀 못 나갈 이유는 없었다. 가능한 약속만 했다. 당연히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허락의 과정은 거쳐야만 했다.

      

“그래. 갔다 와라.”

     

이 말을 들어야 안심하고 대문을 나설 수 있었다. 이런 현실이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며 엄마와 만날 일은 없게 만들었다. 엄마랑 만나는 것에 일일이 허락을 구한다는 것은 기분 나빴으니까. 허락에 엄마까지 포함되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갈라지는 자존심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허락까지 구하며 만나고 싶지 않았다.

      

나와는 달리 동서들은 엄마와의 약속으로 고민하지 않았다. 우연의 일치였지만, 둘 다 여기 부산이 아닌 서울 아가씨였다. 전화 한 통으로 간단히 만날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동서들은 친정에 한 번 가면 일주일은 머물다 왔고, 친정엄마가 내려와도 일 층 동서네에서 일주일은 가뿐히 지내고 가셨다. 먼 거리이기에 가능했고, 고개 끄덕여지는 당연함이었다. 동서들은 내게 말했다. 친정이 바로 옆이라 언제든 엄마를 볼 수 있어서 부럽다고. 그럴 때마다 내가 동서들에게 했던 말이 기억난다. 

    

“일 년 동안 내가 엄마랑 만나는 시간보다, 너희들이 엄마랑 만나는 시간이 더 많을걸? 난 너희들이 얼마나 부러운지 몰라. 나도 친정이 멀었으면 좋았으려나.”

      

진심이었다. 명절이면 친정에서 하루 자고 오는 것도 감지덕지했다. 나도 친정에서 일주일 머물다 오고 싶다는 말? 차마 나오지 않았다.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살며 굳이 그렇게까지? 동서들과 너는 처지가 다르지 않니? 시부모님의 언짢음을 지레짐작하며 입을 다물었다. 멀면 더 애틋하다는 생각은 어디에서 기반한 것일까. 가깝기에 말 못 하고 넘겨야 하는 애틋함이 더 서글펐었다.  

   

“어머님에게 말씀드리고 연락할게” 

    

절대, 엄마에게 하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엄마에게 나의 한심함을 들키는 것 같았다. 몰랐으면 했다. 당당히 잘 사는 딸자식으로 보이고 싶었다. 이런 마음은 엄마에게 하는 간단한 연락조차 차일피일 미루게 했다. 만약에 엄마가 만나자고 하면 어떡할까. 뭐라고 대답할까. 망설이기 일쑤였다. 뭐라고 둘러대야 하나. 마땅한 이유를 찾아 머리를 굴리곤 했다. 적절한 다른 말을 고르고 있는 나. 그러다 결국엔 안 보면 그만이지, 마음을 접는 나. 보고 싶은 엄마를 보지 않으려는 내가 또 그렇게 한심할 수가 없었다. 

    

허락과 엄마 사이에서 눈물 훔치던 나날. 어찌나 서럽던지. 돌아보면 이유 있는 마음고생이기도 했다. 엄마와의 약속. 잊을 수 없는 그때의 기억이 제대로 한몫했다. 임신한 이후 잠깐의 외출로 점심밥만 사 먹고 들어가는 일은, 허락 따위 필요 없이 충분히 익숙해진 그때. 바로 그즈음 엄마랑 처음 점심 약속을 했었다. 당연히 허락은 구하지 않았다. 늘 하듯 밥만 먹고 들어오는 일이었다. 간단한 약속이었다.

      

약속하고 만나는 사람이 엄마란 사실이 그렇게 이상할 수가 없었다. 마치 엄마가 먼 사람 같았다. 약속 장소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것, 웃으면서 다가오는 엄마를 마주하는 것. 무엇 하나 어색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낯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평소에는 잘 하지도 않던 팔짱을 자연스럽게 끼는 나였다. 무뚝뚝한 내가, 나도 모르게 엄마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얼마나 그리웠던 엄마의 냄새인가. 엄마의 따뜻함은 여전했다.  

   

하지만 그날의 기억은 거기까지. 무엇을 먹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내 마음이 편치 않아 그러했으리라. 저녁밥을 하기 위해 돌아가야 하는 시간만 신경 쓰던 내가 기억날 뿐. 엄마 몰래 자꾸 시간을 확인했다. 시계만 쳐다봤다. 허락받지 않고 나온 것에 얽매여 아무것도 못 하는 나였다. 

     

‘저녁 하러 가야 할 시간이야.’   

  

이 말을 어느 타이밍에 해야 하나. 엄마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그런데. 

    

“저녁 하려면 이제 가봐야지.”


이미 내 마음을 읽고 있는 엄마였다. 두 눈에서 읽을 수 있었다.

      

‘네 마음 다 알아. 엄마는 괜찮아.’ 

     

따뜻한 미소를 머금으며 내 등을 밀었다. 가슴 속을 차디찬 바람이 훑고 지나갔다. 속상함에 차오르는 눈물을 꾹 참았다. 마음이 아렸고, 서글펐다. 이게 뭐지. 왜 엄마를 만나는 것도 눈치를 보게 될까. 왜 시부모님 밥상을 차리는 일이 어쩌다 한 번 보는 엄마와의 시간보다 우선이 되어야 할까. 바쁘게 걸어가는 내 뒷모습을 보며 엄마는 어떤 생각을 할까. 차마 뒤돌아볼 용기도 없었다.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난 괜찮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선명히 기억나는 엄마와 첫 약속에서의 속상함. 시댁 눈치 보는 딸자식을 보는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나만큼이나 엄마도 마음이 아팠겠지. 편치는 않았을 거야. 나의 속상함보다 엄마의 속상함을 상상하며 견디기 힘들어했다. 그 마음을 어루만져 주지 못하는 못난 난 도대체 뭔가. 가슴에 시퍼런 멍이 새겨졌다. 이런 마음을 끌어안은 채 시어머님께 엄마와의 만남을 꼬박꼬박 허락받는다고? 웃기고 있네. 차라리 안 보고 말지, 그랬다.


엄마를 만나고픈 마음은 가득하지만, 허락까지 구하며 엄마를 만나기는 싫은 마음. 마음속 가득 한 엄마보다, 언저리 어디쯤 걸쳐있는 어머님을 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는 현실. 내가 서야 할 자리를 절절히 깨닫게 한 약속이었다. 엄마와 어머님. 그 가운데 서서 꺼져 내리는 마음을 끌어안았다. 착한 며느리의 자리는 그런 곳이었다. 착한 딸보다 우선이 되어야 하는 그런 자리. 

    

누구나, 얼핏 스치는 생각만으로도 눈시울이 붉어지는 기억이 있지 않은가. 나만의 슬픈 순간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지질한 기억. 그러나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 나에게 있는 엄마와의 첫 약속, 그것처럼. 그런데 얼마 전 그 기억에 되감기 버튼이 눌러졌다. 다시금 선명히 떠올랐다. 여러모로 나와 닮은 구석이 많은 딸. 나의 딸 덕분에.  

   

딸은 배워야 하는 수업 때문에 몇 개월 동안 서울을 오가야 했다. 일주일 중 사흘은 서울에 머물러야 했다. 어쩔 수 없이 경기도에 있는 오빠 자취방에서 신세를 졌다. 이럴 때 아들이 거기 있어 어찌나 다행이었는지. 남매가 같이 시간을 보낸 건 오랜만이었다. 집에 올 때마다 딸은 말했다.


“엄마. 오빠가 제대로 안 먹어서 큰일이야. 인스턴트 음식만 먹어.”  

   

놀랍지 않았다. 짐작은 했다.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녀석이니까. 사 먹더라도 라면, 햄버거 대신 꼭 밥으로 사 먹으라며 당부하는 것이 나의 최선이었다. 딸은 엄마인 나보다 더 동동거렸다. 저러다 몸 상하면 어쩌려고 저래. 영양제를 챙길 게 아니라 밥을 챙겨야지. 걱정에 혀를 찼다. 그러면서 집에 내려오기 전날이면 꼭 오빠가 좋아하는 김치볶음밥을 한 솥 해서 냉동실에 차곡차곡 쟁였다. 이거라도 간단히 데워 먹으라며. 경기도에서 서울을 오가는데 기본 네 시간은 족히 넘었다. 지옥철과 버스를 환승해가며 자기 몸도 피곤할 텐데도 열심이었다. 오빠 밥도 좋지만, 네 몸도 생각하라는 내 말에 딸이 답했다.

     

“난 괜찮아. 알아서 쉬면서 해. 할만하니까 하는 거야.” 

    

자식이라는 존재는 참 신기하다. 언제 커서 어른 구실을 하나 싶다가도 어느 순간, 번듯한 어른이 되어있는 자식을 확인한다. 차근차근 나아가는 단계라는 게 없다. 갑자기 훅 들어온다. 이때도 그랬다.  

    

‘언제 이렇게 다 컸니..’ 

     

동시에 보였다. 괜찮아, 뒤에 숨은 딸아이의 마음이. 괜찮지 않은 딸아이의 배려가 읽혔다.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찾아 노력하는 마음. 오빠 걱정하는 엄마에게 자기 걱정까지 얹히게 할까 봐 신경 쓰는 마음. 엄마의 눈에 보이는 자식의 마음이 있었다. 신기하리만큼 훤히 보였다. 밀려드는 대견함과 안쓰러움. 웃었다. 웃어 주었다. 걱정 안 하는 척, 안심하는 척. 자식의 마음을 지켜주고 싶었다. 

     

그 순간 되감아졌다. 엄마의 미소가 스르르 떠올랐다. 눈물을 훔치며 돌아보지도 못하고 걸어가던 그때. 엄마의 마음을 지레짐작하며 아파하던 그때. 엄마도 나와 같은 속상함에 눈물만 짓고 계셨을까. 과연 엄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등 뒤에 있던 엄마가 보였다. 엄마 마음을 어루만져 주려는 딸, 속상해하는 딸의 마음을 훤히 보고 계셨겠구나. 시댁 눈치 보는 딸보다 엄마의 눈치를 보는 딸을 지켜보는 것이 더 속상하셨겠구나. 깨달아졌다.

     

묻어두었던 지질한 기억의 먼지가 씻겨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바닥을 치는 자존감에 생각의 폭이 좁았던 그때, 나 홀로 속상함을 키웠다. 참 많이 아파했다. 그런데 이젠 알겠다. 엄마는 분명 대견함도 느끼셨을 거라는 걸. 어른의 몫을 하는 딸자식을 보며 한시름 놓으셨을 거라는 걸. 엄마에게 속상함만 있진 않았을 거란 생각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자존심 지키기에 급급했던 그때. 허락을 안 받는다고 자존심이 올라갈 리가 있겠는가. 나도 알고 있었다. 유일한 방법은 착한 며느리의 자리를 걷어차는 것이라는 걸. 하지만 용기가 없었다. 무서웠다. 

안쓰러웠던 그때의 나를 돌아본다. 이제야 마주 본다. 얼굴을 감싸 안고 웃으며 얘기한다. 

차라리 한 번 돌아 보지 그랬니. 눈물, 까짓거 한 번 쓱 닦고 활짝 웃어 보였다면. 그랬다면. 때로는 철부지 같은 행동이 마음을 어루만져 주기도 한단다. 어느새 훌쩍 큰 딸을 보며 흐뭇해진 엄마는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웃으며 돌아보길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이제부턴 엄마 얼굴을 외면하지 말아. 엄마는 다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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