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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유 Nov 14. 2022

내 꿈에서 나가주겠니?

Irony 말이 도무지 안되잖아

스물한 살인가.

그때부터 뜬금없이 꿈에 자주 나오던 초등학교 동창 남자아이 K가 있다.

21살부터 시작해서 거의 27살까지 꽤 긴 시간 동안 꿈에 주기적으로 등장했는데 항상 나와 K는 좋아 죽는 연인이었다. 그래서 K가 나오는 꿈에서 깨고 나면 그날 하루 종일 설레고 기분이 좋았다.

K가 내 소울 메이트인게 아닐까? 하고 페이스북에서 이름도 검색해보고 인스타그램도 뒤져보고 여러 방면으로 찾으려고 노력했었다.

하지만 어디로 꽁꽁 숨어버렸는지 온라인에서도 오프라인에서도 그의 소식은 들을 순 없었다.


어릴 적부터 난 워낙 버라이어티하고 허무맹랑한 꿈을 많이 꿨다.

스케일도 웬만한 블록버스터 영화 저리 가라였고 소재도 테러가 일어났다, 외계인이 나왔다, 초능력이 생겼다, 납치를 당했다... 아주 다양해서 나중에 작가가 되면 써먹어야지 하는 마음에 꿈 노트를 머리맡에 두고 자곤 했었다.

그리고 사랑과 관련된 꿈을 꿀 때면 어김없이 남자 주인공이 되어준 K.

이상할 정도로 꿈에 나오는 K 이야기를 주제로 소설과 드라마 대본을 끄적이기도 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K의 꿈을 꾸지 않은 건.

스물일곱의 여름.

남자 친구 Y를 만나면서 내 꿈이 매우 단출해져 갔다.

Y가 내 말 안 듣고 자기 멋대로 구는 꿈, Y가 나 모르는 척하는 꿈, 재밌게 손잡고 뛰어다니면서 노는 꿈, 그게 아니면 아침에 눈을 뜨고 반나절이 채 지나기 전에 어디론가 증발하는 기억 정도인 그런 보통의 꿈.


꿈은 욕망과 심리 상태를 대변한다. 어릴 때부터 하도 많이 꿈을 꾸다 보니 나는 자연스럽게 꿈이라는 것에 관심이 많았고 더 깊게 공부하고 싶었다. 내가 심리학과를 간 이유 중 팔 할은 꿈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Y가 곁에 있던 시간 동안 난 현실에 온 맘을 다 주고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나 보다.

허무맹랑한 꿈을 꾸지도 않고 꿈에서조차 그를 만났으니.

꿈속에서도 같이 놀았다며 좋아했으니.


Y가 꿈속에서 바람을 피거나 못되게 군 적도 많은데 난 그런 꿈이 둘이 꽁냥 거리며 논 꿈보다 더 좋았다. 현실과 정 반대라 너무 웃기고 그를 놀려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난 꿈노트 대신 바로 핸드폰을 들고 그에게 전화를 했다.


"나 꿈꿨어~"


그럼 Y는

"또오~? 나 이번엔 무슨 짓 했어. 딱 말해!"

라며 우리는 목이 쉴 때까지 수다를 떨었다.


"아 정말 이 사람 보소! 내가 그럴 리가 없잖아! 그 꿈에 그거 나 아니라고!"

꿈속에서 못된 짓을 한 Y는 꿈속 자신을 욕하고, 또 어떤 날은 질투하며 우린 마르지 않는 대화를 했었다.


Y를 보지 못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우리 관계에 파혼이라는 바위덩어리가 날라온 수요일의 다음 수요일이 온 아침,

전날 꿈에 정말 오랜만에 K가 다시 나왔다.

어쩌면 K 너는 내 마음속에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똘똘 뭉친 그런 형상이려나?


K는 오랜만에 만나 모르는 척하는 나에게 자꾸 사랑한다는 눈빛을 보냈다.

노을 진 하늘을 보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어둑해지면서 별이 어마어마하게 떠올랐다.

그 순간 K가 날 뒤에서 안으며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웃긴 게 그때 나는

"나 이혼 서류 접수 안 했어. 아직 이혼녀도 아니거든?"

이라며 난처해했다.


언젠간 현실에서 꼭 보고싶은 밤하늘을 꿈에서 보았다.


이번 꿈은 내가 교복을 입은 학생 시절부터 시작한 아주 긴 호흡의 꿈이었는데 그 긴 호흡 동안 꿈속의 K는 잠시 Y였다가 또 K였다가 다시 Y 였다가, 또 사랑을 고백하는 별 아래에선 K였다가...

이리 허무맹랑하니 꿈인 거다.

참. 일주일 전 겪은 일도 참 말이 안 되는 얼렁뚱땅 맥락 없이 벌어진 일 같은데 또 그건 현실인 아이러니.


난 앞으로 얼마나 오랜 기간 Y가 나오는 꿈을 꾸게 될까?

나쁜 놈.

내 사랑의 집념이 뭉쳐 만들어낸 꿈속 아이콘인 K의 자리까지 위협을 하다니.


꿈만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있을까.

어쩌면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엔 제발 꿈에서라도 Y를 만나길 바라며 잠에 들 수도 있고,

또 어떤 날은 꿈에서 Y를 봤다며 하루 종일 기분이 언짢을 수도 있다.


시간이 가야겠지.

이런 날들이 모이고 모여 지나가면

제발 빠른 시일 내에 꿈에서 Y를 만나도 큭 한번 웃어버리고 반나절이 지나기 전에 잊어버렸으면 좋겠다.

그런 꿈을 꾸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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