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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유 Oct 09. 2023

AI와 디자인: 20년 경력 디자이너의 시각 2편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게 해주는 AI

이전편: AI와 디자인: 20년 경력 디자이너의 시각 1편 (brunch.co.kr)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게 해주는 AI


(출처: 저자, 미드저니로 제작)




[베낀다, 속에 숨은 의미는?]


이런 급직적 변화에 두려워하는 디자이너분들도 많은데요. 디자이너로서 어떤 생각이나 감정이 드세요?

두려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디자이너 밥그릇의 80%는 없어지지 않을까요? 지금은 결국에는 20%에 남기 위한 고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제 살아남을 20%가 나머지 80%의 일과 연봉을 가져간다는 얘기에요. 연봉이 현재 디자이너의 최소 5배 이상도 올라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디자이너로 연봉 1억, 100억 이런게 정말 특별한 사람만 가능했거든요. 그런데 이제 모두가 정말 신경 쓰고 노력하면 할 수 있는 세상이 왔다고 생각해요.

일반인이 보기에 디자이너가 대단히 창의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어떻게 보면 레퍼런스 참고하고 자기 아이디어를 하나씩 넣는 수준이기 때문이에요. 대단한 창의성이 없더라도 다양한 것들을 보고 만들어 보면서 두 번 세 번 섞으면 결국 내 것이 되거든요.

사람들은 왜 베끼냐 욕할 수 있지만 그거 아세요? 피카소도 정말 열심히 베낀 사람이라는 거.


피카소가 정말 열심히 베꼈다고요?

네, 사람들은 피카소가 천재라고만 기억하지만, 피카소는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이 있으면 정말 열심히 그림을 베꼈어요. 그리고 그 사람들보다 먼저 팔았어요. 책 중에서 ‘베끼려면 제대로 베껴라’라는 책의 내용도 있고요.

저도 20대 때는 그런 일화나 책을 보고 분노가 일었어요. “왜 그런 이상한 말을 해서 우리의 성스러운 창의력을 깎아내릴할 수 있지, 이건 안된다”라고 생각했는데요. 이제는 그 말의 의미를 좀 알겠더라고요.

‘베끼려면 제대로 베껴라', 어떤 의미인가요?

모든 것을 어설프게 따라 하지 말고 정확하게 내재화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내가 보고 배운 것과 내 안에 있는 게 합쳐져서 훨씬 더 좋은게 나온다.


이런 의미더라고요. 그게 너무 단순하게 전해지다 보니 그냥 ‘열심히 베껴라’처럼 느껴지는데 그건 아닌 거죠.

샤오미도 애플을 열심히 베꼈죠. 대놓고 베꼈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잖아요. 더이상 베낄게 없으니까. 베낀다는 것 자체가 대단히 나쁜 의미는 아니고 좋은 것들을 빠르게 습득한 후, 다음 단계로 넘어가라는 의미라고 보는 거죠.

‘베낀다’라는 말의 새로운 가치가 보이네요.

AI 같은 경우에도 정말 새롭기도 하고, 결국 우리 디자이너의 밥그릇을 빼앗을 수도 있죠. 하지만 어차피 빼앗길 거면 내가 더 열심히 빠르게 습득해서 다음 세계로 나가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이 가장 똑똑한 사람인 거고, 결국 모든 영역의 우두머리를 차지할 거고요.

저도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벌써 두세 배를 넘어설 수 있는 아이디어를 얻었거든요. 해보니까 시간적 여유가 생기고, 생각을 더 하게 되고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게 해주는 AI]


AI 덕분에 더 많은 도전을 하게 되셨다고요?

네, 예전에는 ‘그래, 이건 5명 또는 10명이 해야 하는 분량이야’라고 생각이 들면 딱 포기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10명짜리 일을 혼자 해보고, 그다음에는 50명짜리 일도 혼자 해보고 이렇게 가능성이 점점 더 넓어지는 거예요. 그러면 어느 순간 나도 그런 경험이 쌓여 혼자서 ‘슈퍼 디자이너’ 같은 역량을 갖게 되지 않겠냐는 상상까지도 해볼 수 있는 거죠.

예전엔 ‘이건 내가 못 하는 거야’하고 한계를 지었다면 이제는 AI를 활용하면 내 능력이 두 배, 세 배가 되니까 완전히 달라지는 거죠.


AI 기술과 툴의 변화가 어떤 사람들에게 가장 도움이 될까요?

이제 한 명이 모든 영역을 넘나들 수 있을 것 같아요. ‘개발자’, ‘디자이너’, ‘기획자’ 이렇게 영역이 구분되어 있었다면 이제는 개발자가 디자인을 할 수 있고, 디자이너가 개발을 할 수도 있고요. 자기 너머에 있는 영역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거죠.

또 디자이너 안에서도 영역이 세분화 되어 있잖아요. ‘UX’, ‘그래픽’ 이렇게 나뉘어 있는데 아마 한 명이 모두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 명이 슈퍼 디자이너가 되는 거죠.

인터뷰어: 그러게요, 저도 지금까지 저를 ‘프로덕트 디자이너’로만 규정하고 있었는데 툴의 도움을 받으면 충분히 그래픽 영역, 개발 영역까지 넓힐 수 있겠네요. 생각의 전환이에요.

그럼 회사 없이 개인이 모든 것을 하는 시대가 될까요?

개인에게도 회사에도 좋을 것 같아요. 우리가 목업 정도의 가이드, 대충 느낌만 그린 일러스트 정도만 그려도 얘기가 훨씬 수월하잖아요. 그 정도만 보여줘도 다른 전문가들이 그 위에 무언가를 쌓을 수 있으니까요.

또 기존에는 디자인-개발이 확실히 구분되어 있었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의 간단한 개발, 간단한 디자인 정도까지는 한 명이 진행하면서 시간도 확실히 줄고 시너지도 날 것 같아요. 근데 실은 더 여유로워지진 않을 것 같아요.

여유롭진 않을 것 같다고요.

우리가 뭐 티비도 없던 세상에서도 살았고 핸드폰 없던 세상에서도 잘 살았잖아요. 핸드폰이 생기면은 되게 사람들하고 가까워질 것 같지만, 아니죠. 막상 더 멀어지는 경우도 있고요.

회사 일도 더 효율적일수록 잘될 것 같지만, 더 많은 일들이 몰려올 거고, 가능성이 넓어진 만큼 더 많은 변수가 생기고요. 그래서 아마 더 바빠질 것 같아요. 요새 잠이 안 와요. 너무 좋아진 기술과 세상을 알고 나니까, 호기심도 생기고 안 써볼 수도 없고요.

인터뷰어: 저도요. 자기 직전에 새로운 서비스나 기술 알고 나면 잠이 안 와요.

그렇죠. 저는 딱 6개월 안에 정말 다른 세상이 올 것 같거든요. 올해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올해 하루하루를 어떻게 정리하느냐에 따라 내일의 내가 연봉이 두 배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50%씩 깎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굉장히 현실적인 멘트네요.

누구는 이미지 생성 하나에 5시간이 걸리는데, 누군가는 10분에 100장씩 해줄 때, 클라이언트는 누구를 더 선호할까요?

클라이언트는 일반적으로 다양한 시안(배리에이션)을 선호하는데 이게 사람이 하기 제일 힘든 거잖아요.

“이 시안 너무 좋은데, 비슷한 스타일로 10개만 뽑아주세요”

“이 시안 너무 좋은데, 색깔만 바꿔주세요”

이제 이건 컴퓨터가 해 줄 수 있는 영역인 거죠. 심지어 굉장히 효율적으로 세련되게 해줘서 만족스러워요.

미래엔 인간 디자이너가 존재할까요?

미래엔 정말 AI가 디자인을 다 해버려서 인간이 할 수 없는 영역이 될 수도 있어요. 그런 시나리오도 있겠죠. 하지만 그때 우리는 다른 영역으로 넘어가면 되잖아요.

꼭 ‘디자인’ 자체가 아니라도 디자인이라는 특수성을 활용할 수 있는 직업은 정말 많아요. 예를 들어 UX를 고려해서 효율적인 동선을 짠다든지, 농사 영역에 활용한다든지, 로봇이 대체하기 어려운 의료라든지 등의 절대 대체될 수 없는 영역이 있거든요. 그런 영역을 최적화하는데 디자인의 활용성이 높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디자이너라는 업의 미래는 긍정적이라고 봐요. 디자이너는 남들이 못 보는 영역을 볼 수 있는 눈이 있다고 생각하고요. 사업을 해도 디자이너가 잘하는 경우가 참 많아요.




[동료 디자이너, 비 디자이너 분들에게 한 마디]


동료 디자이너분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이 흐름을 꼭 타고 익히세요.


저는 우연하게도 인터넷이 시작될 때, 모바일이 처음 나타날 때, 블록체인이 생겨날 때, 전기차 시장이 생길 때, 이런 첫 시작을 모두 지켜봤어요. 근데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강력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느껴지거든요. 앞에 언급한 모든 시장을 합친 변화보다 더 강력하고 빠르고 더 똑똑하고요. 이 흐름을 꼭 타셔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그 분야의 회사에서 일을 하던, 본업에 열심히 적용을 해보던 어떤 방식을 통해서라도 배우고 알고 있지 않으면 ‘이걸 모르는 사람은 결국 도태된다’를 기억하세요. 이건 조언 정도가 아니라 정말 필수에요. 지금부터 쓰기 시작해서 6개월 후면 AI 활용 능력의 상위 5%를 선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사실 경력 20년 차가 넘어서 디자인 업계에서 은퇴하려고 했는데 이런 기술을 활용해서 디자인할 수 있다면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아이들을 돌보면서도 할 수 있고, 훨씬 자유롭게 수익을 창출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봤거든요. 그래서 감사하죠. 한 기술이 5년만 늦게 나왔어도 못 했을 것 같은데. 그래서 기술의 발전에 고맙고 기분 좋게 일하고 있어요.

비 디자이너분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적극적으로 새로운 세상을 탐구해보세요.


비 디자이너들이 제일 바라는 게 디자인을 직접 하고 싶거든요. 의외로 많아요, 사장님들도 많고. 왜냐면 디자인은 누구나 다 건드릴 수 있는 보이는 영역이고, 주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이니까요. 직접 하진 못해도 항상 관심이 많죠.

근데 이제 이런 기술의 발전이 인간 전문가의 70~80%까지만 된다고 하면 멋진 세상이 올 것 같아요. 바깥에 나가서 간판 보면 정말 별로인 곳도 많잖아요. 글씨만 엄청나게 크고. 빨간색으로 강조하고. 사실 사장님들도 예쁜 간판 만들고 싶은데 몰라서 그렇게 하시는 거거든요. 어딜 강조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고요. 사장님이 미드저니를 쓸 줄 아는 순간 세상이 얼마나 멋있게 변하겠어요.

비 디자이너라면 ‘더 좋은 세상이 올 거다’라고 좋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새로운 디자인 툴과 세상을 탐구해 보시라는 말을 해보고 싶어요.




인터뷰어: 한지유
인터뷰이: 익명의 20년차 현업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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