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 이야기 : 에필로그
오늘 아침,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문득 깨달았습니다. 더 이상 내 안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메아리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내 감정을 의심하는 작은 속삭임도 잦아들었습니다. 그 자리에 조용히 흐르는 것은, 오롯이 나의 호흡 소리뿐입니다. 이 평온함이 얼마나 오랜 여정 끝에 찾아온 선물인지, 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도 반드시 알게 될 것입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여전히 푸르고, 바람은 부드럽게 나뭇잎을 흔듭니다. 세상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변한 것은 오직 '나' 자신 뿐이었습니다. 이제는 감정이 흔들릴 때, 그것이 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누군가 저를 의심하게 만들려 할 때, 저는 더 이상 그 의심을 내면화 하지 않습니다. 이 작은 변화가 얼마나 큰 자유를 가져다주는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연재를 시작했을때, 제 안의 무언가는 여전히 떨고 있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해도 괜찮을까?', '너무 개인적인 얘기를 꺼내는 건 아닐까', '누군가는 또 이것마더 과장이라고 말하지 않을까', 그런 의심들 사이에서 첫 문장을 적어내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웠는지 모릅니다. 키보드 앞에 앉아 손가락을 올려놓고도, 한참을 망설이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백스페이스 키를 누르고 또 누르며, 제 이야기를 지워내곤 했습니다.
그럼에도 글을 써내려간 이유는,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필요한 말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 때문이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혼자 헤매고 있을 당신에게, 제 이야기가 작은 등불이 될 수 있다면. 당신이 느끼는 혼란과 고통이 당신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당신이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긴 여정이 의미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이 브런치 북을 통해 가스라이팅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 교묘한 감정 조작의 순간들, 점점 희미해지는 자기 확신, 현실과 기억 사이의 갈라진 틈새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너머의 이야기를 함께 걸어왔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우리의 진실을 다시 찾아가는지, 어떻게 자신의 경계를 지키는지, 어떻게 다시 스스로를 믿는 법을 익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떻게 다시 일어서는지에 대한 이야기를..담았습니다.
지난 열 편의 글을 통해 저는 제 경험을 꺼내 보였습니다. 카페 테이블 위에 놓인 잔을 손가락으로 돌리며, "네가 그렇게 기억한다니 참 신기하네"라는 말에 숨이 멎었던 순간을. 회의실에서 제 의견이 무시된 후, 점심시간에 혼자 화장실에 숨어 울었던 날을. 친구의 집들이에서 과거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완전히 다르게 재구성되어 돌아올 때, 어떻게 제 입술이 마르고 심장이 빨라졌는지를.
이런 순간들은 너무 사소해 보여서, 오랫동안 저는 제 불편함을 과민반응이라 치부했습니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내가 오해한 건가, 내가 잘못 기억한 건 아닐까'. 이런 질문들이 끊임없이 제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그러나 몸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몸이 보내는 신호는 우리가 인정하기 전에 진실을 알아채는 법입니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숨이 얕아지고, 손에 땀이 나는 그 순간들. 그것은 당신의 몸이 당신을 보호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당신도 이미 알고 있을지 모릅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당신의 온 세계를 뒤흔들 수 있다는 것을. "그런 일 없었어." "네가 너무 예민한 거야."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이런 문장들이 던져질 때, 당신의 가슴 한켠에서 일렁이는 그 낯설고도 익숙한 감각을. 마치 땅이 발밑에서 살짝 흔들리는 것 같은, 천천히 가라앉는 느낌을.
당신의 기억과 감정이 점점 자신의 것이 아닌 듯 멀어지는 그 순간을. 마치 안개 속을 걷는 것처럼, 모든 것이 흐릿해지고 불확실해지는 느낌을. 자신의 현실감이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그 공포를. 그 감각에 이름을 붙이고, 그것이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비로소 회복이 시작됩니다. 당신이 느끼는 그 모든 혼란과 고통은 정당한 것입니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치유의 첫걸음입니다.
회복은 천천히 옵니다. 마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가 아니라 조금씩, 조용히. 어느 아침 눈을 떴을 때, 가슴이 조금 덜 무겁다는 것을 느낍니다. 어느 오후, 누군가와 대화하면서 예전처럼 움츠러들지 않는 자신은 발견합니다. 어느 저녁, 거울 앞에 선 자신을 보며 조금은 친절한 눈빛을 보냅니다. 이런 작은 순간들이 모여, 당신은 조금씩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될겁니다.
처음에는 작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건 내 경험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나는 그렇게 느꼈어."라고 자신의 감정을 지킬 수 있는 용기. "내 기억이 맞아."라고 자신을 믿을 수 있는 용기. 그리고 때로는 "이 관계에서 잠시 거리를 두고 싶어."라고, 또는 "더 이상은 함께할 수 없어."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이런 문장들은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하지만, 연습할수록 당신의 목소리는 더 단단해집니다.
용기를 낸다는 것이 두렵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용기란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한 걸음 내딛는 것입니다. 떨리는 손으로 메시지를 보내는 것입니다. 목소리가 흔들려도 "아니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당신이 내딛는 그 작은 한 걸음이, 당신의 삶을 바꾸는 시작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 브런치북을 통해 작은 방법들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숲속을 걸을 때 필요한 작은 나침반 같은 것입니다. 길을 완전히 비춰주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방향은 알려줍니다.때로는 길을 잃는 것 같고, 같은 곳을 맴도는 것 같아도, 나침반은 당신에게 북쪽이 어디인지 알려줍니다.
매일의 실천과 자기 관찰을 통해, 우리는 조금씩 자신의 감각을 되찾아갑니다. 불편함을 무시하지 않고 귀 기울이는 법, 자신의 기억을 신뢰하는 방법, 경계를 세우고 지켜내는 방법을 이런 기술들은 하루 아침에 완벽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의무적으로 배우는 교육과정도 아닙니다. 그래서 실수할 때도 있고, 다시 옛날 패턴으로 돌아갈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방향입니다. 당신이 조금씩 자신에게 돌아오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 글을 읽는 순간, 당신은 같은 경험을 한 수 많은 사람들과 연결됩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장소에서, 다른 관계 속에서, 다른 방식으로 가스라이팅을 경험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혼란과 고통, 그리고 그것을 극복해가는 여정은 닮아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는 당신만의 것이지만, 당신은 그 이야기 속에서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당신과 같은 경험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감정을 의심하며 밤을 지새우고 있을지도 모르고, 누군가는 자신의 기억이 맞는지 혼란스러워하고 있을겁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관계를 끊을 용기를 내려고 애쓰고 있을겁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미 그 여정을 지나왔고, 지금은 평온한 아침을 맞이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 같은 길 위에 있습니다. 다만 서 있는 지점이 다를 뿐입니다.
어떤 날은 여전히 어렵게 느껴질수도 있습니다. 오래된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고, 깊은 상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자신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다시 찾아오기도 합니다. 에전 관계의 잔상이 꿈에 나타나기도 하고, 비슷한 상황에서 다시 몸이 경직되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이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읽으려 합니다. 내가 왜 이 이야기를 시작했는지, 어디서부터 여기까지 왔는지 기억하기 위해서.
그리고 당신에게도 같은 방법을 권합니다. 당신이 얼마나 먼 길을 걸어왔는지 기억하세요. 그 발걸음 하나하나가 당신의 용기였다는 것을. 당신이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 그 자체가 이미 대단한 성취입니다. 때로는 그저 하루를 버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용감한 것입니다. 자신에게 너그러워지세요. 당신은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습니다.
이 글의 끝에서, 당신은 어쩌면 새로운 질문들을 안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완벽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고 실망하지 마세요. 완벽한 치유란 없습니다. 있는 것은 오직 나아가는 과정뿐입니다. 때로는 앞으로, 때로는 옆으로, 때로는 뒤로 두 걸음. 그 모든 방향이 유효합니다.그 모든 속도가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빠르게 나아가는 것만이 회복이 아닙니다. 천천히, 자신의 속도로 가는 것이 진정한 회복입니다.
회복의 여정에는 정해진 지도가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효과적이었던 방법이 당신에게는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괜찮습니다. 당신만의 방식을 찾아가세요. 당신의 속도를 존중하세요. 당신의 감정을 신뢰하세요. 당신이 느끼는 모든 것은 정당하고, 당신이 선택하는 모든 것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저는 한 번의 깨달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함께 걷는 동행자가 되고 싶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빛나는 작은 등불을 들고, "나도 이 길을 걸었어. 그리고 계속 걷고 있어."라고 속삭이는 목소리가 되고 싶습니다. "힘들 때는 잠시 쉬어가도 괜찮아. 울고 싶을 때는 울어도 괜찮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당신이 자신의 진실을 되찾고, 자신의 감각을 신뢰하고, 자신의 경계를 지키는 여정에서, 제 경험과 글이 작은 쉼터가 되길 바랍니다. 지칠 때 잠시 앉아 숨을 고를 수 있는 벤치 같은 곳이 되길. 혼란스러울 때 다시 읽으며 방향을 찾을 수 있는 이정표각 되길. 외로울 때 "나도 그랬어.'라고 말해주는 친구의 목소리가 되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회복의 여정에서 가장 강력한 힘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당신의 경험을 말하는 것, 그리고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듣는 것.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의 거울이 되고, 서로의 지도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빛이 될 수 있습니다. 마치 이 글이 당신에게 그랬기를 바라듯이.
당신의 이야기는 소중합니다. 너무 사소하다고, 너무 평범하다고, 너무 개인적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모든 이야기는 고유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이 겪은 것, 당신이 느낀 것, 당신이 배운 것. 그 모든 것이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메시지가 될 수 있습니다. 용기를 내어 당신의 목소리를 들려주세요. 당신의 이야기가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 것입니다.
창가의 햇살이 점점 기울고 있습니다. 커피잔 바닥에 남은 마지막 한 모금을 마시며, 저는 오늘도 제 자신에게 말합니다. "네 감각을 믿어. 네 경험은 유효해. 네 경계는 존중받아 마땅해. 너는 충분히 잘하고 잇어. 너는 사랑받을 가치가 잇어." 그리고 이제, 그말을 당신에게도 전합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당신이 느끼는 혼란과 고통은 정당합니다. 당신의 회복은 당신만의 속도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당신도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평온한 아침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날이 올 때까지, 저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당신의 용기를 믿습니다. 당신의 회복을 응원합니다.
이 글을 다 읽은 후에도, 당신의 여정이 이어지길. 어떤 날은 힘들 것이고, 어떤 날은 희망차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 모든 날들이 당신의 여정의 일부입니다. 좋은 날도, 나쁜 날도, 그저 그런 날도, 모두 의미가 있습니다. 당신이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당신을 조금씩 더 강하게, 더 지혜롭게, 더 자신답게 만들어갑니다.
이제 저는 이 글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과 당신의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될 것이고, 저는 어딘가에서 당신을 응원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길을 걷지만,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고 있을겁니다. 언젠가 어딘가에서 만나, 서로에게 희망이 되길 바라겠습니다. 당신의 여정에 평화와 용기가 함께하길 바랍니다. 당신의 마음에 따뜻한 봄날이 찾아오길. 당신의 삶에 진정한 자유와 기쁨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이 당신 자신을 사랑하게 되길, 당신 자신에게 친절하게 되길, 당신 자신을 믿게 되길 바랍니다. 이미 충분히 강하고, 충분히 용감하고, 충분히 가치 있습니다. 당신은 사랑받을 자격이 있고, 존중받을 자격이 있고, 행복할 자격이 있습니다. 이것을 절대 잊지 마세요. 힘든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이 말을 기억하세요.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당신은 사랑받고 있습니다. 당신은 충분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당신의 이야기를 나눠주셔서. 함께 이 여정을 걸어주셔서. 당신이 있어 이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해집니다. 당신의 용기가 누군가에게 희망이 됩니다. 당신의 존재 자체가 선물입니다. 이제 당신의 여정을 시작하세요. 천천히, 당신의 속도로. 당신만의 방식으로. 그리고 기억하세요.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함께 걷고 있다는 것을. 당신의 여정에 빛과 사랑과 평화가 가득하길 바랍니다.
당신을 응원합니다. 언제나, 어디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