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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나의 감정에 주인 되기

정서적 자율성

by 김지윤

"이렇게 느껴도 될까?". "이런 감정이 맞는 걸까?" 가스라이팅을 경험한 내가 수없이 스스로에게 던졌던 진문들이다. 가스라이팅을 경험한 많은 이들도 비슷한 혼란을 겪는다. 이번화에서는 타인에게 종속된 감정 상태에서 벗어나 진정한 정서적 자율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해보려 한다.


타인의 기분에 맞춰진 감정의 덫


가스라이팅 관계에서 잃어버리는 것 중 하나는 감정의 주도권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의 기분을 살피는 것이 일상이 되어 있었다. 그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발소리만 들어도 오늘의 그의 기분을 가늠할 수 있었다. 발걸음이 무거우면 내 마음도 무거워졌고, 그의 한숨 소리에 내 불안은 증폭되었다.


상대방의 기분에 따라 내 기분이 좌우되고, 그의 불편함이 나의 불안이 되는 패턴에 익숙해진다. 그리고 이런 패턴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화된다. 마치 내가 그의 감정 상태를 책임 저야 하는 것처럼, 그의 불만족을 내가 해결해야만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가 화났을 때 내가 느끼는 공포, 그가 기뻐했을 때 느끼는 안도감, 그리고 그가 무언가에 불만족할 때마다 드는 죄책감. 이런 감정의 롤러코스터는 정서적 종속의 명백한 신호였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하는 생각이 오늘 그는 기분이 어떨까였고, 하루 종일 그의 기분 변화에 촉각을 세우며 살았다.


특히 기억에 남는 날이 있다. 우리가 함께 살던 집에서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날따라 그는 말이 없었고, 나는 그 침묵에 불안해졌다. 무엇이 잘못된 건지, 내가 뭔가 실수를 했는지 계속 생각했다. 결국 용기를 내어 물었다. "무슨 일 있어?",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아니, 그냥 일 때문에 피곤해." 머리로는 이해가 갔다. 그의 기분이 나와 무관하다는 것을, 하지만 정서적으로는 여전히 불안했고, 그날 밤 내내 무언가 더 있는 건 아닐지 전전긍긍했다. 나중에야 깨달았지만, 이것이 바로 정서적 자율성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였다.


감정을 다시 내 것으로 만들기


정서적 자율성을 회복하는 첫 단계는 감정을 인식하고 명명하는 능력이다. 나는 그와 헤어진 후에도 오랫동안 감정의 혼란을 겪었다. 무엇보다 내가 진짜로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감정을 인식하는 능력 자체가 무뎌져 있었던 것이다.


변화의 시작은 우연히 접한 심리학 책에서 감정 일기를 쓰라는 조언이었다. 처음에는 회의적이었다. 그저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기록하는 일기와 뭐가 다르다는 것인지. 그러나 감정에 초점을 맞춰 쓰기 시작하면서, 내 내면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감정들이 점차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감정 일기를 통해 하루 동안의 감정 변화를 추적하면서, 나는 놀라운 패턴을 발견했다. 누군가의 짧은 문자 메시지에도 과도한 불안을 느낀다거나, 타인의 무심한 한마디에 깊은 상처를 받는다거나 하는 반응들이 모두 과거 관계의 잔재였다.


효과적인 감정 일기 작성법은 다음과 같았다.


시간대별로 기록하기 (아침/점심/저녁) - 나는 하루에 세 번, 정해진 시간에 내 감정 상태를 기록했다. 이렇게 하니 감정이 하루 중 어떻게 변화하는지, 어떤 패턴이 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특히 그와 함께 살 때는 항상 저녁 시간에 불안감이 고조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가 퇴근하는 시간이 다가올수록 내 불안은 커졌던 것이다.


상황-감정-생각 순서로 적기 - "동료가 내 의견을 무시했다(상황) → 분노, 수치심(감정) → '나는 존중받을 가치가 없나'(생각)"와 같이 구체적으로 기록했다. 이를 통해 어떤 상황이 특정 감정을 유발하고, 그 감정이 어떤 생각으로 이어지는지 연결 고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감정의 강도를 1-10으로 수치화하기 - 불안 8, 분노 6, 기쁨 3과 같이 감정의 강도를 숫자로 표현했다. 이렇게 하니 같은 감정이라도 그 강도의 변화를 추적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대부분의 부정적 감정이 8-10 정도로 높게 평가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강도가 조금씩 줄어드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신체 감각과 함께 기록하기 - 가슴 답답함, 어깨 긴장, 두통 등 감정과 함께 나타나는 신체적 반응을 기록했다. 놀랍게도 내 몸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의식적으로 감정을 인식하기 전에, 내 몸은 이미 그 감정을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불안할 때마다 찾아오는 목의 답답함, 분노할 때 느껴지는 가슴의 화끈거림, 이런 신체적 신호를 인식함으로써 감정의 조기 경보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다.


판단 없이 관찰하기 - 이것이 가장 어려웠다. 특정 감정을 느끼는 것에 대해 스스로를 비난하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감정을 느끼면 안 되는데", "나는 왜 이렇게 예민한 거지?" 같은 생각들. 그러나 점차 감정 자체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 그저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


감정 명명하기의 힘


심리적 연구에 따르면,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그 감정의 강도가 줄어든다고 한다. 나의 경험으로는 100% 맞는 말이다. 예전에는 막연한 불편함, 답답함으로 느껴지던 것들이 실제로는 매우 구체적인 감정들이었다. 화남, 불만, 슬픔, 죄책감, 부끄러움, 질투, 배신감, 무력감... 더 세분화된 감정 어휘를 익히면서, 내 감정의 지도는 점점 더 상세해졌다.


한 번은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 친구가 별생각 없이 한 말에 갑자기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기분이 안 좋아졌다.'로 넘어갔을 텐데, 이번에는 달랐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내 감정에 이름을 붙여보았다. '배신감'이었다. 친구의 말이 과거에도 자주 하던 말과 비슷했고, 그것이 배신감이라는 감정을 촉발한 것이었다.


이렇게 감정을 명명하자마자, 마법처럼 그 감정의 강도가 약해지는 것을 느꼈다.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나는 다시 현재로 돌아올 수 있었고, 이 감정이 과거의 경험에서 비롯되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단순히 라벨링 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 감정을 인식하고 수용함으로써 그것에 압도되지 않을 힘을 얻는 과정이다.


감정 명명하기 연습을 위해 나는 다음과 같은 방법을 시도했었다.


기본 감정(기쁨, 슬픔, 분노, 두려움)을 넘어 더 구체적인 감정 어휘 익히기 - 감정 단어 목록을 만들어 항상 볼 수 있는 곳에 붙여두었다. 처음에는 20개 정도의 감정 단어로 시작했지만, 점차 그 목록이 50개, 100개로 늘어났다. '불안'이라는 단어 하나로 묶었던 감정들이 사실은 '긴장', '염려', '초조함', '공포', '두려움' 등 다양한 뉘앙스를 가진 감정들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하루에 한 번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은 _____이다" 문장 완성하기 - 스마트폰에 알람을 설정해 매일 오후 3시에 이 문장을 완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에는 대답하기 어려웠지만, 점차 감정을 인식하고 명명하는 능력이 발달했다.


타인의 요구나 기대와 무관하게 자신의 감정 인정하기 - 이것이 가장 도전적이었다. 나는 늘 '감정의 검열관'이 있어서, 특정 감정은 느껴도 되고 다른 감정은 안 된다는 암묵적인 규칙을 세워왔다. 예를 들어, 누군가 나에게 친절하게 대했다면 나는 반드시 감사함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때로 친절함에 불편함을 느끼거나, 칭찬에 의구심을 갖는 경우도 있다. 이런 '불편한' 감정들도 인정하고 수용하는 법을 배워갔다.


감정적 경계 세우기


정서적 자율성은 건강한 경계를 필요로 한다. 그와의 관계에서 나는 감정적 경계라는 개념 자체를 알지 못했다. 그의 감정이 곧 나의 감정이 되는 '감정적 융합' 상태였던 것이다. 다음은 내가 감정적 경계를 세우는 데 도움이 됐던 방법들이다.


"지금 이 감정은 내 것인가, 아니면 타인의 감정을 대신 느끼고 있는가?" 질문하기 - 이 질문은 내게 혁명적이었다. 타인의 불안이나 분노를 내가 대신 느끼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회의 중에 동료가 비판을 받았을 때, 마치 내가 비난받은 것처럼 가슴이 쿵쾅거렸다. 잠시 멈추고 이 질문을 던졌을 때, 그 감정이 실제로는 내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이것을 '감정적 전염'이라고 부른다. 인식만으로도 그 감정으로부터 한 발짝 물러설 수 있었다.


"나는 타인의 감정에 책임이 없다" 상기하기 - 처음에는 이 말이 이기적으로 들렸다. 하지만 이것은 이기심이 아니라 건강한 경계 세우기의 기본이다. 타인의 감정은 궁극적으로 그들의 책임이며, 내가 그들의 모든 감정을 책임질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렸다.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이 말을 세 번 반복했다.


타인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지 않기 - 오랫동안 나는 '분위기 메이커'였다. 누군가 기분이 안 좋으면, 어떻게든 그 사람을 즐겁게 해 주려고 노력했다. 나의 실제 감정은 뒤로한 채. 이제는 타인의 감정을 바꾸려 하지 않고, 그저 존재하도록 허용한다. 상대가 슬플 때 억지로 웃게 하려 하지 않고, 그 슬픔을 함께 있어주는 법을 배웠다.


감정을 표현할 때와 억제할 때의 신체 감각 차이 인식하기 - 감정을 억제할 때마다 내 몸은 신호를 보냈다. 턱이 경직되고, 목이 답답하고, 어깨가 굳었다. 반면 감정을 솔직히 표현할 때는 숨이 깊어지고, 몸이 편안해졌다. 이런 신체적 신호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나는 언제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지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감정을 통해 자신을 되찾는 여정


정서적 자율성을 회복하는 여정은 단순히 감정을 잘 다루는 법을 배우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다. 가스라이팅은 우리의 감정과 인식을 왜곡시켜 자기 자신과의 연결을 단절시킨다. 정서적 자율성을 회복한다는 것은 이 연결을 다시 살리는 일이다.


내가 발견한 가장 중요한 진실은 이것이다: 모든 감정에는 이유가 있다. 그것이 '옳은' 감정인지 '틀린' 감정인지를 판단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 감정이 나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를 듣는 것이다. 분노는 경계가 침범당했음을, 두려움은 안전이 필요함을, 슬픔은 중요한 것을 잃었음을 알려준다.


정서적 자율성의 회복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작은 인식의 순간들이 모여 만들어가는 점진적인 변화다. 오늘 당신이 타인의 기분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인식했다면, 그것은 이미 소중한 한 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감정은 우리의 나침반이다. 그것을 무시하거나 억누르는 대신, 그 지혜에 귀 기울일 때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다. 당신의 감정을 존중하고, 그것이 전하는 메시지에 귀 기울이자. 그것이 정서적 자율성을 향한 첫걸음이다.



매주 목,일 연재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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