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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몸의 신호

마음이 보내는 경고음

by 김지윤

아침에 눈을 떴는데 목에 무언가가 걸린 듯했다. 마치 누군가 손으로 살짝 누르고 있는 것 같은 묘한 압박감. 거울을 보니 외관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분명 그 불편함은 실재했다. 그날은 언니(지난 3화에 나왔던 언니)와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나는 그때 몰랐다. 내 몸이 보내는 이 이상한 신호가 무엇인지를. 그저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생각하고 약을 삼켰다. 그리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언니를 만나 카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그 이상한 목의 압박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의 대화가 깊어질수록 더 심해지는 듯했다. 물을 마셔도, 따뜻한 차를 마셔도 사라지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문득 깨달았다. 이 목의 감각은 언니를 만날 때마다 느껴왔던 것이었다. 그동안은 단순히 긴장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보니 그것은 내 몸이 보내는 경고 신호였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지 못하게 억압당할 때마다, 내 목은 그 억압감을 정직하게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몸이 먼저 알아채는 위험 신호들


우리의 몸은 놀라울 정도로 정직하다. 가스라이팅 관계에 있을 때, 우리의 이성은 종종 상황을 합리화하거나 부정하려 하지만, 몸은 거짓말을 못한다. 나는 가스라이팅 관련 책들을 보면서 몸이 얼마나 분명하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는지에 놀랐다.


월요일만 되면 두통이 시작되는 직장인, 특정 친구의 전화만 울리면 갑자기 배가 아파오는 사람, 가족 모임 전날이면 어김없이 피부가 뒤집어지는 청년... 이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생각한다. 우리의 몸은 우리가 인식하기도 전에 이미 그 관계의 유해함을 알고 경고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내 경우에는 목과 소화기 문제가 주된 신호였다. 가스라이팅을 경험하는 관계에 있을 때면 목에 무언가 걸린 듯한 감각이 자주 찾아왔다. 마치 하고 싶은 말들이 그곳에 걸려 나오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특정 사람과의 만남 후에는 어김없이 소화불량이 찾아왔다.


그때는 그저 '예민한 체질'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내 몸이 보내는 분명한 메시지였다. "이 관계는 너에게 해롭다"라고.


내 몸이 보낸 SOS 신호들


학창 시절, 나는 친구 그룹에서 묘한 위치에 있었다. 겉으로는 모든 것이 좋아 보였지만, 어딘가 불편했다. 특히 그중 한 명과의 관계가 그랬다. 그는 늘 내 이야기를 조금씩 비틀어 해석했고, 내 감정이나 기억을 의심하게 만드는 말들을 툭툭 던졌다.


"너 그때 그런 말 안 했어. 내가 기억력이 좋잖아."

"에이, 너무 예민하게 구는 거 아니야? 난 그냥 농담한 건데."

"다른 사람들은 다 괜찮다고 했어. 너만 그렇게 느끼나 봐."


이런 대화가 오갈 때마다 나는 묘한 혼란에 빠졌다.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나?' '내가 너무 예민한가?' 머릿속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런데 내 몸은 달랐다. 그와 만나기로 한 날이면 아침부터 뱃속이 불편했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그날의 컨디션 탓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소화 문제였다. 다른 친구들과 만날 때는 아무 문제 없이 먹던 음식들도, 그 친구가 있는 자리에서는 위에 돌을 올려놓은 듯 소화가 되지 않았다. 점점 그와의 만남이 예정된 날에는 아예 식욕이 사라졌다. 내 몸은 그 관계의 불편함을 먼저 알아차리고 있었다.


사람마다 몸이 보내는 신호는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두통으로, 누군가에게는 피부 문제로, 또 다른 이에게는 수면 장애로 나타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패턴을 인식하는 것이다. 친구는 겉으로는 친절했지만, 미묘하게 나를 무시하고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나의 영역을 가로채는 행동을 반복했다. 내가 이의를 제기하면 "너무 예민하게 구는 거 아니야?"라는 말로 일축했다.


나는 그 친구를 만나는 날이면 어김없이 편두통이 찾아왔다. 그때는 어려서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패턴을 분석해 보니 명확했다. 친구와 만나지 않았던 2주 동안은 두통이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가, 친구를 2주 만에 다시 만난 날 투통이 다시 시작됐다. 마치 내 몸이 경고등을 켜는 것 같았다. '이 친구는 네게 해로워'라고 알려주는 거 같았다. 우리 몸은 종종 의식보다 먼저 위험을 감지한다. 이것은 원시적인 생존 본능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의 논리적 사고가 상황을 합리화하려 할 때도, 우리의 몸은 이미 '도망쳐라' 또는 '조심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몸이 보내는 신호마저 가스라이팅 당할 때


가스라이팅의 가장 교묘한 측면 중 하나는, 당신의 몸이 보내는 신호마저도 부정하거나 왜곡한다는 점이다. 다음과 같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또 두통이야? 너 정말 예민하네."

"다들 같은 음식 먹었는데 너만 배가 아프다고? 심리적인 거 아니야?"

"너 자꾸 피곤하다고 하는데, 그냥 더 열심히 운동하면 되는 거 아니야?"


상대방의 이런 반응들은 당신의 신체적 경험마저 의심하게 만든다. 가스라이팅의 이중 효과다. 먼저 당신의 경험을 부정한 후, 그에 대한 반응까지 문제시하는 것.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이런 일은 빈번하게 발생한다. 나는 오랜 친구 민지(가명)에게 가스라이팅을 경험했다. 모임 자리에서 내 의견이 무시될 때마다 심한 두통이 찾아왔다. 처음에는 단순한 피로라고 생각했지만, 민지가 있는 자리에서만 반복되는 것을 깨달았다. 그날의 컨디션과는 무관했다.


하지만 민지는 내가 두통을 호소할 때마다 "너 또 예민하게 구는 거 아니야? 다들 괜찮은데 너만 그러네"라고 일축했다. 점차 나는 내 몸의 신호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정말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은데 나만 이런 걸까?" 이런 자기 의심은 관계를 끊어야 한다는 판단을 미루게 만들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 친구들과의 여행 중 민지가 내 의견을 여러 번 무시하고 조롱했을 때, 갑자기 심한 메스꺼움이 찾아왔다. 화장실에 있는 나에게 민지는 "또 관심 끌려고 아픈 척하는 거야?"라고 말했다. 그 말이 얼마나 상처가 됐는지. 실제로 느끼는 불편함이 마치 내 잘못인 것처럼, 내가 꾸며낸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몸의 신호는 결코 '예민함'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지혜로운 경고인 것이다.



몸과 다시 친구 되기: 실전 방법


가스라이팅의 영향으로 자신의 몸과의 연결이 약해졌다면, 그 연결을 회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는 의사 선생님과 함께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봤고, 그중 가장 효과적이었던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1. 신체 감각 일기: 패턴을 발견하는 열쇠

내가 가장 먼저 권하는 방법은 '신체 감각 일기'를 작성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증상 기록이 아니라, 몸의 신호와 상황, 감정을 연결 짓는 작업이다. 나는 직접 이 방법으로 내 목의 압박감이 언제 나타나는지 추적했다. 2주 동안의 기록을 통해 놀라운 패턴을 발견했다. 그 감각은 내가 자신의 의견을 억압받거나, 솔직한 감정 표현을 못하게 될 때마다 나타났던 것이다.


간단한 형식으로 시작해 보자

날짜/시간: 언제 그 신체 감각이 나타났는지

상황: 그때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누구와 함께 있었는지

신체 감각: 정확히 어떤 감각이었는지 (위치, 강도, 성질)

감정: 그때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생각: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는지


이 일기를 2주만 써도 놀라운 통찰을 얻을 수 있다. 특히 특정 사람이나 상황과 연관된 신체 반응의 패턴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2. 몸 듣기 시간: 하루 5분의 마법

하루 중 5분만 시간을 내어 자신의 몸에 온전히 귀 기울여보자. 나는 이것을 '몸 듣기 시간'이라고 부른다.

방법은 간단하다

조용한 장소를 찾아 편안한 자세로 앉거나 눕는다.

눈을 감고 몸 전체에 주의를 기울인다.

발끝부터 머리까지, 천천히 주의를 옮겨가며 각 부위가 어떤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지 살핀다.

어떤 감각이든 (따뜻함, 차가움, 무거움, 가벼움, 긴장, 편안함) 판단 없이 알아차린다.

특별히 불편한 부위가 있다면, 그곳에 손을 얹고 "무엇이 필요해?"라고 부드럽게 질문해 본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듣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꾸준히 연습하면, 점점 더 미세한 신호들을 감지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이 연습을 통해 내 어깨의 긴장이 사실은 '방어 자세'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내가 공격받고 있다고 느낄 때마다 나도 모르게 취하는 자세였던 것이다. 이 자각은 내가 언제 불안하고 위협받는다고 느끼는지를 더 빨리 알아차리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3. 움직임의 지혜: 몸을 통한 해방


가스라이팅은 종종 우리를 '얼어붙게' 만든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로. 이럴 때 의식적인 움직임은 강력한 치유 도구가 될 수 있다. 단순한 스트레칭, 걷기, 춤추기, 요가와 같은 활동은 몸에 갇힌 긴장과 감정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 특히 '흔들기'는 트라우마 치료에서 자주 사용되는 기법으로, 신경계의 긴장을 풀어주는 효과가 있다.


나는 힘든 대화나 만남 후에 항상 20분간 걷기를 했다. 단순히 한 발 한 발 내딛는 리듬, 땅과 연결되는 느낌, 몸이 앞으로 나아가는 감각... 이것들이 내 신경계를 진정시키고 명료함을 되찾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때로는 단순히 몸을 흔들거나, 팔을 뻗거나, 깊게 숨을 내쉬는 것만으로도 갇혀 있던 에너지가 풀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몸의 지혜를 다시 신뢰하기


가스라이팅을 경험하며 가장 크게 손상받는 것 중 하나는 자기 신뢰였다. 자신의 기억, 인식, 감정, 그리고 심지어 신체적 경험마저도 의심하게 된다. 회복의 첫걸음은 이 신뢰를 다시 쌓는 것이다.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다음 문장을 소리 내어 읽어보자.


"내 몸이 나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어. 귀 기울여야 할 때야."


처음에는 이 말이 공허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반복은 강력하다. 점차 이 말이 진실로 다가오기 시작할 것이다. 나는 이 문장을 핸드폰 배경화면으로 설정했다. 매번 화면을 켤 때마다 그 말을 보는 것은 작지만 강력한 상기제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점점 더 내 몸의 신호를 빠르게, 그리고 정확하게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내 몸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지혜로웠다. 그것은 어떤 상황이 안전한지, 어떤 관계가 나에게 좋은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몸과 마음이 다시 하나 되는 여정


가스라이팅의 가장 큰 해악 중 하나는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이다. 몸과 마음, 감정과 이성 사이에 균열을 만들어 우리가 온전한 존재로 살아가는 것을 방해한다. 회복은 이 분열된 부분들을 다시 통합하는 여정이다. 그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내와 연습,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연민을 필요로 한다.

내 경우, 처음으로 내 몸의 신호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을 때 놀라웠다. 한 친구와의 만남 후 느껴지는 두통, 다른 친구와의 대화 후 찾아오는 편안함... 이 신호들은 내가 누구와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 어떤 관계가 나에게 건강한지를 알려주는 나침반이 되었다.


몸의 지혜를 다시 신뢰하게 되면, 당신은 가스라이팅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방어막을 갖게 된다. 누군가 당신의 경험을 부정하려 할 때, 당신의 몸은 이미 진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도 오늘부터 작은 변화를 시작해 보자. 잠시 멈추고, 들숨과 날숨을 느끼고, 당신의 몸이 지금 당신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귀 기울여보자. 그 소리는 처음에는 희미할 수 있다. 하지만 점점 더 선명해질 것이다.


다음 6화에서는 가스라이팅을 경험한 후 미래에 대한 불안과 불확실성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 살펴볼 예정이다. 그전에, 이번 한 주는 당신의 몸이 보내는 메시지에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보는 시간으로 삼아보자.

당신의 몸은 당신의 가장 지혜로운 조언자다. 그것이 말하고 있는 것을 들을 준비가 되었는가?




매주 목, 일 연재됩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연재 글을 전면 수정했습니다.

연재가 늦은 점 사과 드립니다. 하지만 이 연재에 진심을 다했다는 사실을 이 글 전체에 녹였습니다.

그 마음이 전달될 거라 믿으며 오늘도 한 글자씩 마음을 담아 글을 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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