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묘한 권력, 반복되는 상처
운동복을 챙겨 나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다이어트를 시작한 지 한달, 언니와 함꼐하는 운동 시간은 점점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발걸음을 돌리지 못했다. '내가 예민한 거겠지' , '언니는 나를 위해 시간을 내어주는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우리의 관계는 친구의 소개로 알게되면서 시작됐다. 처음 만난 날부터 언니는 모든 면에서 완벽해 보였다. 자신감 넘치는 태도, 그녀의 강인함과 결단력은 내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특히 다이어트와 운동에 관해서라면 그녀의 말은 곧 진리처럼 느껴졌다.
"너는 의지가 약해. 그래서 내가 도와주는 거야."
언니의 말은 항상 옳았다. 적어도 내가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함께 운동을 시작하면서 무언가가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미세한 불편함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계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언니의 목소리, "이정도도 못하면 살안빠져"라는 말들. 나는 그 말이 진심 어린 걱정에서 비롯된 것이라 여겼다.
그날도 언니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오늘 7시. 늦지 마. 지난번에도 5분이나 늦었잖아. 내가 시간 내서 너 도와주는 거 알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5분의 지각이 마치 큰 죄를 지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언니의 도움에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죄책감이 밀려왔다. 나는 언니가 귀중한 시간을 내어 나를 위해 운동을 가르쳐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날, 처음으로 의문이 들었다. 과연 이것이 정말 '도움'이었을까?
헬스장 거울 앞에 선 나는 몸무게가 줄어든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기쁨보다는 초조함이 컸다. '충분하지 않아'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언니의 목소리가 내 안에서 울려 퍼졌다.
"너 그거 알아? 네가 원하는 몸매를 갖기에는 최소 10kg은 더 빼야 해. 지금 이 정도로 만족하면 안 돼."
내 성취를 축하하는 대신, 언제나 '더'를 요구하는 목소리. 나는 그것이 동기부여라고 여겼다. 그러나 실제로는 내 자존감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충분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듣는 일은, 나도 모르게 내 안의 무언가를 갉아먹고 있었다.
운동 후 카페에 앉아 있을 때였다. 언니는 자신의 성공담을 들려주었다. 어떻게 힘든 시기를 극복하고 지금의 위치에 올랐는지. 그 이야기의 결말은 언제나 같았다.
"내가 해냈으니, 너도 할 수 있어. 근데 너 지금처럼 하면 절대 안돼. 그래서 너가 지금까지 뚱뚱하게 살아온거야."
그 말 속에 숨겨진 의미는 분명했다. '네가 성공하지 못한 것은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그러나 나는 정말 노력하고 있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하고, 식단을 철저히 관리하고, 언니가 시키는 모든 것을 따르고 있었다. 그런데도 왜 내 노력은 항상 부족한 것으로 평가받는 걸까?
언니의 말은 대부분 사실이었다.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한 조언들, 효과적인 운동법, 건강한 식단에 관한 지식. 그러나 그 메시지가 전달되는 방식은 점점 더 권위적이고 일방적이었다. 나의 의견이나 감정은 고려되지 않았다.
"너는 아직 모르는 게 많아. 그러니 내 말을 그대로 따르는 게 좋을 거야."
이 말은 처음에는 전문가의 조언처럼 들렸다. 그러나 점차 나는 내 직감과 판단력을 의심하게 되었다. 언니의 말이 옳지 않게 느껴질 때조차, 나는 내 생각을 억누르고 그녀의 지시를 따랐다. 왜냐하면 '나보다 언니가 더 잘 알고 있을 거야'라는 믿음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우리는 새로운 운동 루틴을 시작했다. 내 무릎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언니는 고강도의 점프 동작을 요구했다.
"지금 포기하면 앞으로도 계속 포기하게 될 거야. 그래서 계속 돼지XX로 살꺼야?"
무릎의 통증이 심해졌지만, 나는 계속했다. 언니의 실망한 표정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무릎에서 '툭' 소리가 났다. 예상치 못한 통증에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 너무 아파요..."
언니의 반응은 의외였다. 걱정이나 미안함이 아닌, 실망과 약간의 짜증이었다.
"너 정말 약하구나. 내가 이 정도도 못 하는 사람은 처음 봤어. 그래서 항상 결과가 없는 거야."
그 순간, 무언가가 내 안에서 깨어났다. 이것이 도움인가? 이것이 진정한 관심에서 비롯된 행동인가? 내 건강과 안전보다 결과를 우선시하는 이 태도는 과연 내게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일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무릎의 통증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아팠다. 이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언니와의 관계에서 내 경계가 얼마나 무시되고 침범당해 왔는지. 나는 언니의 완벽해 보이는 모습, 성공한 이미지에 눈이 멀어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권위 앞에서 내 목소리를 잃어버렸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지난 몇 개월을 돌아보았다. 언니의 말 한 마디에 내가 얼마나 흔들렸는지. 내 판단보다 그녀의 의견을 얼마나 더 신뢰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서히 무너져간 내 자존감과 자신감.
가스라이팅의 형태는 다양했다. 때로는 직접적인 비난이었고, 때로는 미묘한 암시였다. "네가 충분히 노력하지 않아서 그래", "다른 사람들은 다 할 수 있는데 너만 못하네", "네가 변하지 않으면 아무도 너를 도울 수 없어." 이런 말들이 반복될수록, 나는 점점 더 나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다음 날, 언니에게 메시지가 왔다.
"오늘은 상체 운동이야. 7시에 만나."
명령조의 이 메시지에 나는 이전과 다른 반응을 보이기로 했다. 깊은 숨을 들이쉬고, 처음으로 '아니오'라고 말했다.
"언니, 무릎이 많이 아파서 오늘은 쉬어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앞으로 운동 방식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요."
언니의 답장은 빠르게 왔다.
"그래서 또 포기하는 거야? 이래서 네가 발전이 없는 거야. 무릎? 그건 핑계야. 진짜 문제는 네 의지력이야."
이전의 나라면 이 말에 흔들려 결국 언니의 말을 따랐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나는 내 몸의 신호를 무시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내 경계를 명확히 하기로 했다.
"언니, 저는 포기하는 게 아니에요. 건강을 지키는 거예요. 제 몸의 신호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운동을 계속하고 싶지만, 방식을 조금 바꿔야 할 것 같아요. 제 한계와 페이스를 존중해 주셨으면 해요."
놀랍게도, 내 명확한 경계 설정에 언니의 태도가 변했다. 처음에는 방어적이었지만, 점차 내 입장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 같았다. 어쩌면 언니도 자신의 태도가 때로는 지나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일까?
다음 만남에서 우리는 솔직한 대화를 나눴다. 나는 언니의 도움에 감사하지만, 때로는 그 방식이 나를 위축시킨다는 사실을 전했다. 언니는 처음에는 놀란 표정이었지만, 점차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그저 네가 최고가 되길 바랐어. 너무 강하게 밀어붙인 것 같네."
이 대화를 통해 나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건강한 관계는 상호 존중에서 시작된다는 것. 한 사람의 목소리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양쪽 모두의 감정과 경계가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
이 경험을 통해, 나는 관계의 초기 단계에서 주의해야 할 신호들을 정리해 보았다.
일방적인 조언과 명령: "내 말을 무조건 따라야 해"라는 식의 태도는 경계 침범의 시작일 수 있다. 상대의 의견을 묻지 않고 자신의 방식만을 강요하는 것은 건강한 관계의 모습이 아니다.
성취의 폄하: 아무리 노력해도 "충분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듣는다면 주의해야 한다. 진정한 응원은 현재의 성취를 인정하고 격려하는 것이다.
상대의 감정 무시: "너무 예민해", "그건 핑계야"와 같은 말로 상대의 감정이나 신체적 신호를 무시하는 것은 가스라이팅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권위를 이용한 조종: "내가 더 잘 알아"라는 식의 권위적 태도로 상대방의 판단력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은 경계해야 할 신호이다.
죄책감 유발: "내가 이렇게 시간 내서 너를 도와주는데"와 같이 도움을 빌미로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언행은 건강하지 못한 관계의 징후이다.
이러한 신호들이 보인다면, 그것은 자신의 경계를 더욱 명확히 해야 할 때일 수 있다. 모든 관계는 상호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한쪽만 주도하고 다른 쪽은 따라가기만 하는 관계는 장기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다.
난 이제 운동 혼자서 한다. 그동안 하고 싶었던 운동도 도전하고, 나만의 속도로 해나가고 있다. 무릎의 통증은 사라졌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의 무게가 한결 가벼워졌다는 것이다.
언니와의 관계도 친구처럼 손절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인간관계에서 다른 방식으로. 내 경계를 명확히 하고, 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관계는 점차 더 건강해지고 있다. 내 주변의 인간관계의 형태도 변화하고 있다. 물론 가끔은 예전의 패턴으로 다가오는 사람도 있지만, 이제 나는 그것을 알아차리고 적절히 대응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내 안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나 자신을 희생하지 않는다. 내 몸과 마음의 신호에 귀 기울이고, 그것을 존중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 나는 "이 부분은 내게 중요한 경계예요. 존중해 주셨으면 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 이 한 문장이, 내 삶에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왔는지 모른다.
회복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작은 용기의 순간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여정이다. 오늘도 나는 그 여정을 계속하고 있다. 더 나은 나, 더 건강한 관계를 향해.
가스라이팅의 경험에 대한 이 브런치는 매주 목, 일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