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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 Jun 27. 2022

돈과 자아성찰의 연관성

 회사를 새로 들어가면서 암울했던건, 내가 자본주의 시대의 돈이라는데에 진거같은 패배감때문이였다. 경제적 자유는 바라면 온다는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니였다. 결국은 내 몸과 작은 몸체로 열심히 열을 내며 굴리는 뇌의 움직임이 있어야 얻어내는 것이였다.


 돈이라는 것. 신은 왜 우리가 돈이라는 걸 벌게끔 만들까. 경제적 자유는 사실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가 노력해서 얻어야 하는건 돈이라는게 아닐지도 모른다. 사실 신은 인간관계를 통해 자아성찰이라는 목표를 이루도록 돈이라는 매개체를 주지 않았을까. 돈이라는 매혹적인 매개체를 통해 사람들과 부딪히고 수많은 거울들을 마주하여 자신을 보라는 메세지를 던져주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식으로 돈과 회사를 정의했다. 어쩌면 정말이지 하기싫은 사회생활을 견뎌보고자 합리화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갖고자 하는 욕구가 없다면 그냥 하염없이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는 삶을 살아도 만족스러울텐데, 왜 우리는 욕구를 선택했을까. 욕구라는 전제가 지금 나에게 있지 않음을 말하며, 욕구를 가지면 가질 수록, 현재 내가 갖고있지 않은것에 몰두한다. 왜 우리는 그런 선택을 하느냔 말이다. 그게 괴로움을 가지고 온다는걸 알면서도 말이다.


 가지려는 열망. 그게 나를 앞으로 나가게 만든다. 그리고 나를 마주하게 만든다. 걸어가면서 얻는 악취와 시궁창 냄새는 덤이다. 나는 생각보다 보잘 것 없음을 알게된다. 하지만 또 나는 생각보다 대단하다고 깨닫는다. 스스로의 악랄한 모습을 발견할때, 또 스스로의 선함도 발견한다. 이렇게 양면성으로 가득한 세상과 나를 만나라고 신은 돈이라는 거짓 목표를 만들어 간사하게 우리를 조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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