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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 Jun 18. 2022

스스로 우울함을 찾고 있는건 아닐까

 오랫동안 우울함이라는 색을 거부해왔다. 우울하고 음침한건 내 안에 있으면 안 된다는 전제를 깐 듯이 말이야. 벗어나려고 해도, 계속해서 파고든다. 그만하고 싶어도 다시 주눅 든다. 그런데 이게, 사실은 스스로 우울함을 찾고 있었던 게 아닐까?




 우울감에 깊이 빠져있다보면 몸과 마음이 지친다. 빠져나와야지 하면서도 쉽게 빠지지 못하는 건 사실은 이 우울을 다 소모시켜버리고 싶은지도 모른다. 마음속에 담아둔 우울이 터져 나와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지도 모른다. 즐거워하고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의 삶과 대비되는 초라한 내 모습을 견뎌내는 것. 그게 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감정을 하나의 덩어리라고 한다면, 예를 들면 비누 같은 거. 쓰고 써서, 닳아버리는 게 그게 가장 좋은 방법임을 인간은 알지도 모른다. 쓰지 않고, 묵혀두려 한다 하더라도 무의식은 안다. 저걸 빨리 써버려야 한다는 걸. 그래서 감정이 계속 올라오는지도 모른다. 아니, 불러일으키는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나'라는 존재는 똑똑하다. 100년가량 살다 떠나는, 한 순간에 태어났다가 사라지는 별이 아니라, 몇만 년을 거쳐서 여기까지 온 나는 우주같은 존재다. 이걸 어떻게 헤쳐나가면 좋을지,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는 본능에 따라 스스로 알고 있다. 그러니, 그렇게 걱정할 필요가 없는지도 모른다. 그냥 살아지는 대로, 그냥 걸어가는 대로 놔두면 자기가 알아서 할 뿐이니. 우리는 그냥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넘어졌다고 손을 잡아주지 않아도, 이 친구는 꿋꿋이 발을 내딛고 일어설 것이다. 힘이 부칠거같은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을 테고, 목놓아 울고 되려 훌훌 털어버릴 수도 있을 것이고,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자신만의 방법을 만들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나는 '나의 해방 일지' 드라마의 흥행이 참 맘에 든다. 그런 드라마를 보는 사람이 있으니, 나만 이렇게 우울하고 슬픈 게 아니구나. 인생사 다 같은 거구나 라며 보이지 않는 응원을 받는 기분이다. 그리고 울고, 슬퍼하게 만들어주는 매체가 한국에 나와서 그게 제일 맘에 든다. 내가 알지 못한 나의 감정을 마주 할 수 있는 매개체이니 말이다.


 가자. 이렇게. 넘어지고 상심하고, 엎어지면 울어버리자. 이 마음의 소용돌이를 잠재우는 방법은 소용돌이 안에 들어가 버리는 일이다. 들어가서 마주하고, 고통스러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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