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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 Oct 03. 2019

사람과 '함께' 살기로 결심했다(1)

1년 세계일주 그 후/나는 '개인주의'를 포장한 '이기주의자'였다.

나는 지독히도 개인주의자였다. 아니. 개인주의였을까?  

페루-와라즈/파라마운트 트래킹
개인주의 : 개체로서의 개인이 사실상 사회보다 선행하여 실재(實在)한다는 주장을 취하기도 하고, 가치면에서 또는 권리상 개인을 우선시켜야 한다는 주장 -두산백과-
이기주의 : 도덕설의 하나. 자기만의 이익을 중심에 두고, 다른 사람이나 사회의 이익은 고려하지 않는 입장을 말한다. 개인주의와 결부되는 것이다.  -철학사전-

흠. 말이 좀 어렵군.


다행히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세계에는 많고 많다. 1)

쉽게 내린 결론은 이러하다!


'개인주의'란 무리 안에서 '나'란 존재가 존중받을 방법을 찾는 사람이고 
'이기주의'란 즐겁고, 흥미 있고, 기분이 좋을 '나'를 존중하는 사람이다.



개인주의에서의 '나'는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나, 스크린 앞에 있는 당신, 당신 옆에 있는 배우자, 부모님,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옆집 아줌마, 같이 회사로 출근하는 동료, 서울역에 누워있는 노숙자, 순찰하는 경찰 아저씨, 떡볶이 파는 포장마차 아저씨, 목욕탕에 있는 때밀이 아줌마... 모두!!! 가 개인이기 때문에 존중받아야 할 대상이다.


이기주의에서의 '나'는 게임을 하는 나, 유튜브를 보는 나, 길을 걷는 나, 공부를 하는 나, 화장품을 사는 나, 책을 읽는 나, 배고파서 어묵을 사먹는 나, 태국으로 여행을 가는 나, 남자친구를 만나는 나,  숨을 쉬는 내가 나!!! 이기 때문에 존중받아야 한다.


나는 정말 개인주의일까?


비슷하지만 '개인'을 중심에 두냐, ''만을 중심에 두냐에 따라 성격이 달라진다.

완전히 다르진 않다.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과거에 나는 무엇이었냐?

이제야 알았다.


나는 '개인주의'를 포장한 '이기주의자'였다.

페루-와라즈/파라마운트 트래킹

 내가 어느 정도였냐 하면, 맛있는 게 있으면 숨어서 몰래 혼자 먹고, 시험에 나올 거 같은 내용이 있으면 나만 알아야 했고, 좋은 화장품은 나 혼자 알아야 하고, 무료 쿠폰이 있으면 나 혼자 써야 했다. 더 이상 긴말은 하지 않겠다. 


 혼자 악마의 모습을 하고 있을 때마다 나타나는 천사들이 있었다. 천사들은 내가 무슨 모습을 하건 콩은 반으로 쪼개서 나눠주었고, 만날 때는 밥 한 끼를 사주었고, 커피는 항상 내 거까지 계산했고, 내가 모르는 게 있으면 어떻게 서든 알려주려는 그런 존재들이었다. 


내 마음속 악마가 말했다.

"아싸, 한 끼는 벌었다. 고맙다는 말만 하고 입 싹 닫아버려. 그럼 끝이야!"

내 마음속 천사가 말했다.

"받았으면 너도 보답해야 하는 거야. 그리고 너도 그런 사람이 돼야지~"


 그럴 때마다, 대부분 내 자아는 악마의 편을 들었다. 악마의 손을 들어주면서 천사를 배신한 모습에 자책감을 느꼈고, 내가 단 1퍼센트도 갖고 있지 않은 마음을 저 사람들은 어찌 저리 잘하냐며 동경했다. 동경했고, 노력했지만, 결국은 항상 지기 마련이었다.

 

스킵 가능) 원초아(원래 갖고 있던 욕구, 악마. 흔히 쉽게 악마라고 표현하지만 사회가 만들어낸 편견이다.)가 초자아(가정이나 사회에서 배우는 억제력, 천사. 마찬가지로 천사라는 것도 편견.)를 강력히 거부하지 않았나 싶다. 또한, 인간 본능에 충실했던 나를 혼내주고 싶지도, 무조건 나눠주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도 말하고 싶지 않다.


내 개인주의, 이기주의 성향은 어렸을 때, 그때로 돌아간다.

페루-와라즈/파라마운트 트래킹

 첫 번째 이야기. 정확히 초등학교 3학년. 수련회를 갔다. 사건은 '스케이트 보드'와 '그림 그리기'를 선택해야 하는 체험 프로그램 시간에서였다. 나와 같이 무리 지어 다니던 3명의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은 그림 그리기를 선택했고, 나는 스케이트 보드가 하고 싶었지만 혼자 다른 걸 하면 친구들이 서운해할 거 같아서, 그림 그리기를 선택했다. (남자들은 모르는 여자들의 세계일수도?) 하지만 마지막 찬스 때 '나는 내 마음을 따르겠어!' 하고 스케이트를 선택해서 다른 친구를 따라갔다. 열심히 했다. 미친 듯이 몰입했다. 너무 재밌었다. 근데 그때 그림을 다 그리고 들어오는 세명의 따가운 눈초리가 보였다. 그 눈빛을 지금 해석해보자면,


'저 년, 우리 안 따라오고 자기 하고 싶은 거 하는 것 봐.'


그리고 난 그 무리에서 제외됐다.


 두 번째 이야기. 초등학교 때 미술학원을 다녔다. 그 날의 주제는 '우리 주변에 있는 가게 그리기'였다. 나는 세탁소를 선택했고, 밖에 나가서 세탁소를 열심히 관찰하고 온 후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열심히 그렸다. 난 꽤나 밖에서 말 잘 듣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내 걱정을 하지 않았다(?). 나는 보라색으로 세탁소 벽을 칠했다. 근데 선생님이 세탁소 벽은 갈색으로 칠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세탁소를 관찰하러 나갔다. 아무리봐도 보라색이었다. 다시 학원으로 돌아와 보라색으로 칠했다. 갑자기 선생님이 짜증을 내면서 어떻게 벽돌이 보라색이냐며, 갈색으로 칠해야 한다고 했다. 이 선생님, 왜 이래? 했지만, 몇 번 다시 봐도 보라색이었다. 엄청난 혼란이 마음속에서 휘몰아쳤다. 마지못해 갈색 크레파스를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원장님은 엄마에게 전화해 선생님과 나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를 해줬다. 날 좋아했던 원장님과 엄마가 날 나쁘게 생각할 거라는 수치심으로 가득했다. 어쨌든 그게 마지막 미술학원 기억이다. 그다음은 그 선생님이 관뒀거나 내가 관뒀다. 


 그때 생긴 반항심인지, 아니면 언제부터 고집이 세졌는지 모르겠다. 그 이후로 난 내가 하고 싶은 거에만 매달렸다. 더 악화되서는, 남이 하는 거, 하라고 하는 거에는 거부감이 들었다. 자존심이 상했다. 내 기억 속 그 사건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까? 


 혼자 하는 게 편했다. 누구랑 의견 맞추는 게 쉽지가 않았다. 항상 트러블이 일어났다. 성격이 모난 이유는 내가 외동처럼 자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것 또한 역시 '쟤는 외동이라 성격이 좀 이기적인 거 같아.'라고 한걸 주워 들었던 기억 때문에. 


기억들에 있는 사람과 상황을 탓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 기억들로 '내가' 날 한계 지어 왔음을 말하고 싶다. 그래서 우리는 무의식을 정화시켜야 한다. (언젠가 글을 쓸 날이 있을 거예요. 너무너무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어찌 됐건 어디서부터 정확히 시작됐는진 모르겠지만 잘 못 되고 한참 잘 못 되어왔다. 


(다음 편에서 계속...)

https://brunch.co.kr/@jiyun6666/19


1) https://blog.naver.com/peter_kim77/220324094307 https://wikidiff.com/egoism/individualism https://english.stackexchange.com/questions/364354/what-is-the-difference-between-individualism-and-egoism https://blog.naver.com/ahsune/220514138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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