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살만하네' 하는 시간도 있다.

by 오지

힘든 날이 끊임없이 계속 되면 사람은 체념을 하게 된다. 아무리 긍정적인 사람이라 하더라도 매일 고문을 당하면 모든 상황을 자신의 탓으로 돌린다는데, 나는 4년째 이 고문 당하고 있다. 괜찮아 지려고 노력해도 결과는 반대로 향하니 가끔은 벌을 받고 있는건가 싶기도 하다.

우울증 판정을 받고 약을 먹다가 괜찮아졌다고 생각해서 혼자서 단약을 했다. 병원도 안가고 안일해 있었다. 하지만 몇 년 후에 새로 들어간 회사에서 집중력이 떨어져 계속 업무를 까먹고 회사 생활에 불편이 생겨서 알게 된 게 성인ADHD였고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으나, 의사는 성인 ADHD가 아니라 불안성 우울증이라고 판단을 내렸다. 나는 그날 집에 오면서 숨이 막힐 듯이 울었다. 다 나은줄로만 알았는데, 아직도 내가 우울증이라니. 우울증에서 벗어나려고 온갖 방법이란 방법은 다 시도해봤다. 명상도 하고, 운동도 하고, 일기도 쓰고, 내 묵은 감정도 더 돌아봤으나 아직도라니. 심지어 의사의 입에서 ‘입원’이라는 단어도 나왔다. 그래서 더욱 더 충격적이였다. 내가 그정도까지 와버린건가.

기분이 어떠냐는 말에 너무 충격적이라고 답했다. 그래도 지금까지 해 온 노력들이 있는데 아직까지도 우울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고 했다. 선생님은 꽤나 위로아닌 위로의 말을 해주었다. ‘우울증은 노력으로는 고칠 수 있는게 아니다.’ 이 한마디에 안심이 됐다.


심리상담을 받기위해 심리검사를 했다. 심지어 그 순간에는 약을 먹고 있던 터라 기분이 나름 괜찮은 상태였기 때문에 이러다 ‘매우 정상’으로 나와서 ‘상담 따위 받을 필요가 없는 아주 정상인입니다.’라면서 거절당하면 어떡하지 걱정했다. 아주 다행히도(?) 나는 고위험군에 속하게 되어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매해마다 빌었다. 올해는 제발, 이 불행이 끝나게 해달라며. 아쉽게도 그 불행은 현재진행중이다. 매해마다 좀 나아지겠지 하고 기대한 내가 바보같았다. 언제까지 이 슬픔이 계속될까. 20대 후반은 원래 이렇게 힘이 들고, 살고 싶지 않은걸까. 그래서 30대가 기다려진다. 뒷자리 수가 아니라, 앞자리 수가 바뀌면 정말 뭐라도 바뀔 것 같아서.


사람이란게 신기한 점은 힘들때는 피하고 싶고, 도망가고 싶고, 죽고싶기도 하지만, 또 좋은 일이 생기면 웃고, 미래를 기대하고, 살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훅훅 자신의 모습을 바꾸는 게 사람이다.

회사생활로 힘들 때 코로나에 걸려 자가격리를 했는데, 몸은 힘들더라도 주변에서 괴롭히는 사람이 없으니 미래를 계획하게 되고, 하고 싶은게 생기고, 훨씬 정신정으로 살만했다. 환경에 따라 나의 태세가 확 바뀌는게 꽤나 웃겼다. 겨우 몇 일 차이로 지구 땅 끝까지 파고드는 우울감을 느끼다가, 다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지금도 하루에 몇 번은 왔다 갔다 하는 것 같다. 이제 그러려니 싶기도 하지만, 보면 볼 수록 나는 참 신기한 동물이구나 싶다.


어쩌면 인간의 인생은 현재가 전부라고 느껴졌다. 지금의 기분이 안좋으면 내 인생은 망했다라며 자책하고, 기분이 좋으면 내일을 기대한다. 자신감이 낮을때는 끝없이 부정적으로 변하고, 자신감이 올라가면 또 끝없이 희망적으로 변한다. 사람의 인생은 굴곡이 있다. 아무리 잘나가는 사람이라도 굴곡 없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그게 또 위안이 된다. 왜냐하면 지금 기분이 좋지 않더라도, 언젠간 또 살고싶어서 아둥바둥 거리고 있을테니.


과거의 울고있는 내면아이를 현재의 내가 돌보듯, 미래의 나도 분명 나를 돌봐주고 있을 것이다. 회사가기 싫다고 징징대는 나를 보고 ‘회사 가기 힘들지’ 하며 토닥여주는 미래의 내가 있을 것이고, 외로움을 느낄땐, ‘많이 외롭지.’라고 말해주는 미래의 내가 있을 것이다. 나는 믿는다.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돌봐주듯이, 미래의 나도 지금의 나를 돌봐주고 있을거라고.


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 할머니가 된 나는 마당이 있는 한옥 마룻바닥에 걸터 앉아,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책을 두 손에 꼭 쥔 채,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생각한다.


“그땐 그랬지.”


느낌이 오면 느껴지는대로, 흘러가는 시간은 흘러가는대로, 그렇게 살다보면 아무것도 아닌 날이 될거다. 물론 너무 충격적여서 오래 기억에 남는 일도 있겠지만, ‘그래도 다 넘어왔잖아.’ 하고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게 될 날도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의 인생을 돌이켜봤을 때, 슬픈날이 있었는가 하면, 웃고 떠들던 좋았던 날도 있다. 아무리 거지같은 인생이라도 행복하게 웃고있는 한순간이 있다. 어쩌면 우리는 그런 날로 하루하루를 버티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시 웃을 날을 위해, 오늘 울어버리자. 그 날이 되면 오늘의 눈물은 그저 바람처럼 훌훌 날아가는 새가 될 수 있도록.


랩퍼 산이가 쇼미더머니에서 탈락하면서 내년에 다시 참가한다는 말과 함께 인상 깊은 멘트를 남겼다.


“그날 웃기 위해, 1년동안 울 준비가 되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너무도 안일하게 행복을 바라지는 않았나 되돌아봤다. 왜 나는 행복하지 못할까 하고 좌절하고 있었는데, 사실 그 행복은 그냥 오는게 아니었다. 보람도 고생 끝에 오는 것 처럼, 행복도 불행 끝에 온다. 그 날을 위해 나는 오늘도 울어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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