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혼자 달리는 마라톤이다.

by 오지

세상에 태어나서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누구는 짧은 코스가 될 수도 있고, 누구는 긴 코스가 될 수 있는 인생을 산다. 나는 인생이란 복잡한 관점을 ‘혼자 달리는 마라톤’이라고 비유하고 싶다. ‘인생은 혼자다.’같은 말을 하고 싶은게 아니니 독자가 책장을 덮지않고 계속 읽어주길 바란다.


혼자 달리는 마라톤에는 경쟁이 없다. 골까지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굳이 빨리 달릴 필요도 없다. 누구를 제칠 필요도 없다. 그저 나는 나의 마라톤을 완주하기만 하면 된다.

굳이 ‘혼자’를 강조하는 이유는 자신의 마라톤에 누군가를 개입시켜버리면 우리는 자연스레 경쟁 모드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에서 자신이 서있는 위치를 찾으려고 하는건 인간의 자연스런 본능이기 때문에 억지로 비교하지 않으려 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경쟁 모드에 들어가면 필요 이상으로 몸에 힘을 주게 된다. 남들보다 더 빨리 가지 않으면 도퇴되어버릴거 같은 기분, 지는 기분, 혹은 심하면 생존에 위협적이라는 기분까지 든다.


마라톤을 나 혼자 달린다고 생각해보자. 내가 말하는 이 인생 마라톤의 특징은 제약이 없다는 점이 포인트다. 풀코스 마라톤은 42.195km다. 하지만 이 인생 마라톤에는 정해진 거리 따위 없다. 누구는 짧은 코스가 될 수도 있으며, 누군가에게는 끝내고 싶어도 끝나지 않는 긴 코스가 될 수도 있다. 목표지점이 어디인지 몰라 막막한 것도 당연하다. 언제 끝날지를 알면 최소 답답한 기분은 들지 않기에.

경쟁자도 없으며, 심지어 시간 제약도 없다. 가다가 좀 힘들면 쉬었다 가도 되고, 오르기 힘든 길은 쉬운 지름길로 가도 상관 없다. 반대로 일방통행길이 지루하다 싶으면, 더 험난하고 재밌어 보이는 길로 돌아가도 된다. 예쁜 나비가 날개를 나풀거리며 내 눈 앞을 날아가면 홀린 듯 나비를 쫒아가도 좋다. 평화로운 공원을 발견하면 잠깐 벤치에 앉아 졸아도 좋다. 꽃의 향기에 취해도 좋고, 새들의 지저귐에 집중해도 좋다.

그러다가 심심하면 같이 갈 동행을 구하기도 하고, 길이 달라진다면 헤어져도 좋다. 그러다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과 손을 붙잡고 방향을 다르게 바꿔봐도 좋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다면 양해를 구하고 작별을 고해도 좋다.


물론 항상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다. 뛰고 싶어도 앞길이 안보일 정도로 비가 올 수도 있고, 오랜 걸음과 뜀으로 부상을 당할 수도 있고, 도중에 날강도를 만나 폭행을 당할 수도 있고, 배가 고파 더 이상 걸어가지 못 할 지경까지 될 수도 있다. 그럴때마다 당신은 좌절할지 모른다. 가고싶어도 가지 못하는 상황에,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압도될지도 모른다. 나쁜 일들은 어깨동무를 하고 온다고,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냐며 세상에 한탄할 수도 있다. 모든 상황이 당신 스스로의 잘 못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끝없는 자기비판으로 빠질지도 모른다. 더 심각하게는 마라톤을 이어가기를 그만둘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억하자. 이 마라톤은 당신의 것이다. 이 마라톤은 당신의 손에 달려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당신이 마라톤을 계속하겠다는 마음만 있다면 삶은 당신에게 길을 열어줄 것이다. 당신이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세상은 당신을 도울 것이다.


폭우가 쏟아진다는건 어쩌면 잘 된 일일 수도 있다. 포기를 모르는 당신이기에, 누구보다 더 빨리 뛰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를 지치고 힘들게 만드는 상황 속에서 폭우로 인한 강제 휴식은 자신이 지나온 길을 다시 돌아보게 만들 수 있다. 부상을 당하거나 폭행을 당했을때, 배가 고플 때, 탈진이 왔을 때, 혹시 모르지 않은가, 지나가던 선한 사마리아인이 아픈 나를 보고 자기 가는 길까지 만이라도 태워주겠다며 차 보조석에 태우고 편하고 빠르게 갈 수 있을지도.

당신이 스스로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다. 그 사람이 자신의 마라톤도 미루고 당신을 도와준다면, 당신은 깊은 감사와 사랑을 느낄 수도 있다. 그리고 다음에 쓰러진 누군가를 보면 주저없이 도와줄 용기가 생길 수도 있다.


세상에는 다양한 변수와 상황이 존재한다. 하지만 당신이 뛰는 그 마라톤 위에서는 당신 마음대로 해도 좋다. 조바심 낼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이미 당신의 것이고, 당신을 위한 마라톤이니.

자신의 레이스 위에 다른 사람을 놓고, 그 사람과 일부러 경쟁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너무도 만연한 경쟁의식에 서로를 비교하고, 나를 낮추거나 높이고, 마찬가지로 남을 높이거나 낮추어 평가한다.


힘들면 주저앉아도 된다. 밥도 먹고, 놀기도 많이 놀고, 좀 갑자기 걸어보고 싶어지면 한발자국 정도 예의로 걸어주고 말이다.

쉽다고 생각하면 쉬어진다는 말이 있다. 유튜버 장지수는 ‘인생 꿀잼’을 종이에 써놓고 아침에 일어나서 매일 읽는다고 한다.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감정 중에, 슬픔, 화남, 지치는 감정들도 재미의 요소가 될 수 있겠다.”라고 말했다. 행복이란 것도 긍정적인 요소에만 포커스를 맞추기보다, 슬프거나 우울함도 행복의 일부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우리가 되면 좋겠다.

꼭 행복이라는 감정이 기쁨, 황홀함, 사랑이라는 긍정적인 기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나서는, 모든 감정을 수용하기가 더 수월해졌다.


우리가 어떻게 인생을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렸다. 근데 이왕이면 재밌는 마라톤이 좋지 않을까? 자신이 고통스럽다면 무엇을 움켜쥐고 있기에 이렇게 고통스러운지, 한번 되물어 볼 필요가 있다. 대체 무엇이, 얼만큼 중요하길래 꽉 쥐고 있었는지, 놓으면 어떻게 될지, 이게 정말로 나에게 중요한 일인지 살펴보자.


아이유가 부른 ‘자장가’ 마지막 가사는 ‘놓아.’이다. 노래를 듣고 있다가 이 ‘놓아’라는 구절을 들으면 내가 무엇을 놓아야 할지 떠오른다. 저마다 정말 소중하고 중요하기에 놓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놓기 어렵다면 놓고 싶을때까지 꼬옥 잡고 있어도 괜찮다. 그저 자신을 기다려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나 또한 놓지 못하는 것들도 있고, 더 빨리 뛰고 싶어서 사람들이 좋다는 운동화도 사보고, 더 빨리 뛰는 법을 연구하기도 한다. 전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그렇게 안 해도 된다.’라는 사실을 ‘안다.’는 것이다. 내 몸이 습관대로 행동한다 한들 상관없다. 내가 사실을 알고 있는 한, 내 몸은 언젠간 힘을 빼고 즐겁게 달릴 준비를 할테니깐.


요우 (145).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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