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나는 참 많은 콤플렉스가 있었다. 부모 콤플렉스부터 형편, 교육, 학벌, 가난, 재능... 세세하게 늘어놓으면 아침부터 자기전까지 열거할 수 있을 정도다. 콤플렉스를 극복해보려고 무진장 애를 썼다. 하지만 그 노력은 나를 더 옭아맬 뿐이었다.
성공한 스토리를 보면 항상 어두웠던 과정이 있었다. 아픔 없는 기쁨 없고, 실패 없는 성공 없었다. 물론 그런 스토리가 더 인기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나도 저들처럼 힘든 상황이니깐! 언젠가는 저렇게 멋진 사람이 되겠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잘 헤쳐나온 그들이 존경스러웠다. 사회에서도 항상 개천에서 용이 나는 스토리를 부각시켰다. 나도 열심히 살면 언젠가는 지금 모습을 벗어나 크게 성공할 수 있을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내가 잘 못 짚은 포인트가 있었다. 그들은 힘든 과정 속에서 벗어나려고 고군분투 하지 않았다. 진정으로 성공한 자들은 자신의 '환경을 인정'하며 그저 한발짝 씩, 미래를 향해, 앞에 있는 당장의 길을 걸어 나아갔을 뿐이었다.
나는 반대로 내가 태어난 환경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콤플렉스'라는 족쇄를 스스로 채우면서 그 족쇄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학벌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지만, 나는 그런 장벽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미래에 성공해서 인터뷰를 하게 된다면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
“학벌은 중요하지 않아요.”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 맞다. 학벌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그 본질적인 말에는 여전히 찬성한다. 그러나 학벌에 단단히 묶여 벗어나려고 발버둥쳐서 도착한 정거장에서 겨우 ‘학벌은 중요하지 않다.’라고 말하는 위선적인 사람은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아니다.
나는 더 깊숙히 내 안에서 소리치고 있는 무언가를 찾아야만 했다. 내가 왜 학벌에 묶여있는지, 왜 그렇게 학벌이 나에게 중요한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했다. 오랫동안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깊은 내면의 말을 듣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과 노력으로 얻어낸 답은 인정받고자, 관심받고자, 사랑받고자 하는 루루였다.
인간의 욕구는 참 신기하게도 ‘사랑’으로 집결된다. 인간은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대상을 생명과 결합시켰다. 사랑받지 못하면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아마도 원시시대부터 연결된 무의식이라 생각된다. 혼자있는 것보다 함께 있어야 살 확률이 높았고, 그런 유전자들이 모여 지금의 우리를 형성했다.
기쁨, 즐거움, 편안함, 슬픔, 분노, 절망 등 인간이 느끼는 감정은 사랑을 받아서 또는 사랑을 받고자 하는데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이건 살짝 팁인데,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나 고민이 어디로부터 왔을지 고민하는데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넣어보라. 그러면 의외로 쉽게 풀리는 경우가 많다.
돌아가서, 나는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리고 인정받지 못한 나를 천대한 존재도 나였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조금 슬펐다. 전문대를 졸업한 내가 너무 싫었지만, 그렇다고 이름난 4년제에 들어갔어도 만족했을까? 여전히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아 헤메지 않았을까? 나보다 휼륭한 사람들은 추켜세우고 스스로는 하락시키는 슬픈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거라 추측한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교에 들어간 사람들도 분명히 그 노력에 박수를 받을만 하다. 그렇다고 공부하지 않았던 나 자신을 욕할 필요는 없었다. 공부로부터 회피하고 싶었고, 공부보다는 아이돌이 좋았고, 성적으로 평가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극도록 스트레스를 받을만 했다. 즉, 충분히 그럴만 했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어린 루루를 붙잡고 그러지 말았어야 한다고 혼을 내고 있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불안정했던 내 마음을 인정해주었을 때, 나는 비로소 나를 용서할 수 있었다. 여전히 학벌이나 능력에 대한 열등감은 있지만, 그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나의 열등감도 인정할 수 있게 됐다.
여행하던 어느날, 그날도 유난히 일이 풀리지 않았던 날이었다. 고되고 지친 여행이 계속 되니 짜증이 났다. 평소처럼 상황이 잘 풀리지 않는 것도 나의 잘 못으로 돌려서 자책했다. '나는 왜 이렇게 성격이 덤벙대는거야.'라고 채찍질하던 날에 문득 내 안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왜 그렇기는, 그냥 그런거야.”
고장난 톱니바퀴가 골칫거리여서 머리만 싸매고 있던 와중에, 틈사이 걸려있던 작은 나사 하나를 제거하니 드르륵 소리를 내며 원할하게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작은 나사만 제거하면 될 일이었다. 아주 명쾌하지 않은가? 내가 성격이 덤벙댄다는 것은 내가 나에게 씌운 부정적인 프레임이었다. 다른 사람 기준에서는 내 행동이 결코 덤벙대는 느낌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혹은 덤벙댈 수 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있기 때문에, 누구라도 허둥지둥 댈 상황일 수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무조건 상황이 잘 못 돌아가는 원인을 나로 돌렸다. 왜 덤벙대는 걸까? 그만큼 정신이 없었나보지. 그보다 더 잘 할 수는 없었다. 왜 덤벙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지가 훨씬 더 중요할 뿐. 내가 덤벙대는 이유를 찾으면 무얼할까? 아마 나는 또 나를 공격하는 데 무기로 썼을 것이다.
그 이후부터 신기하게 성격을 탓하고, 환경을 탓하던 습관이 자연스럽게 줄었다.
'우리집에 돈이 없어서... 하기야, 그냥 이 가정 아래에서 태어난거지, 뭐 어쩔 수 없잖아?'
'난 너무 기억력이 딸리고 집중도 못해... 하기야, 딸리면 딸리는거지?'
인정하기 싫었던 콤플렉스를 안고가는 삶은 어떨까? 나의 인생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자. 그리고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나에게 붙여준 것을 너무도 쉽게 믿어버리고, 좌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자. 그 사람은 날 판단할 만큼 중요한 사람인지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나는 나를 제일 잘 안다. 그 안에서 부정하고 있었던 부분을 과감히 인정해보자. 그럼 방향이 보인다. 지금을 객관적으로 인정하면 ‘어떻게’라는 미래 지향적인 질문이 나온다. 그럼 그 질문에 따라가면 된다.
콤플렉스를 인정하는건 참 어렵다. 나는 자존심이 쎄서 내 콤플렉스를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기 위해 아둥바둥 살아왔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초라한 나의 모습을. 하지만 초라한 모습이 항상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지만은 않는다. 모든 것에는 양면이 존재하듯이 분명 긍정적인 방향도 있다.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건 이런게 아닐까? 신은 모든 것을 공평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나는 그저 장점을 볼지 단점을 볼지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 그 과정이 어렵기는 하겠지만, 정답은 없다. 과감히 선택하고, 몸으로 부딪혀보면서 나만의 오답노트를 만들어 가는 수밖에.
하얀 백합과 같이 순수했던 루루는 세상에 태어나 가정을 만나고 사회를 만났다. 그 과정에서 어른들은 루루에게 높음과 낮음을 나누는 법을 알려주었으며, 낮은 것은 나쁜 것이고, 높은 것은 좋은 것이라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순수했던 루루는 가르쳐준 것을 써먹었을 뿐이었다. 그게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이고,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이었기에. 그렇게 어른들이 알려 준 분별과 판단을 이제는 자신이 만들어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가난한 사람도 있고, 돈이 많은 사람도 있다. 누구의 입장에서 보면 부자인 사람도 가난한 사람이 될 수 있고, 가난한 사람도 부자가 될 수 있다. 이렇게 상대적으로 변할 가치에 굳이 신념을 가지고 살아갈 필요가 있을까? 자신이 스스로에게 가난한 사람이라고 타이틀을 준다면, 그는 가난한 사람이 된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이 된다 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면 그 사람의 인생에서 가난은 더 이상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다. 가난한 사람이 되건 부자가 되건 무엇도 중요하지 않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나 자신을 그대로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나에게 어떤 타이틀을 새기고 있는지, 무슨 감정을 느끼고있으며, 왜 그렇게 느끼게 되었으며, 그게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탐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너는 쓸모없는 사람이야.’라고 한다고 해서, 쓸모 없는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비록 그 사람에게는 쓸모없는 사람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사람일 수도 있으니깐. 그 사람이 판단하도록 나는 나대로 그에게 보내주면 된다. 그래도 그 사람이 던진 말에 상처를 받았다면, 상처를 충분히 느껴도 좋고, 그 사람에게 상처를 표현하는 것도 좋다.
말이야 쉽게 해놨지만, 여전히 나에겐 어려운 일이고, 평생동안 풀어가야 하는 숙제다. 사람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두세번 알았다고, 완전히 내 삶에서 매 순간순간 깨어있지는 못하다. 하지만 그게 또 어떤가? 문제가 닥치면 다시 고뇌하고, 풀어보고, 마주하면 된다.
여기서 정말 신기한건 내가 나를 사랑할 수록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만큼 사랑받았다. 우리가 인생에서 겪는 문제의 해답은 어쩌면 제일 가까운 자신에게 있는지도 모른다. 제일 가까워서 보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자. 현미경으로 볼 수 있는 미트콘드리아를 적당한 초점에서 정확하게 관찰하는 것처럼. 그래서 나는 파고파고 또 파도 무엇인가 답을 던져주는 루루를 연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