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과 100 (2) - 기회

기회는 100에서 오지 않는다. 1에서 온다.

by 오지

0과 100 사이에 101가지 숫자가 존재한다. 이 글은 0과 100, 두가지 숫자가 아닌 101가지 숫자를 위한 글.




지난 글에서는 사람을 101가지로 보았다. 0으로만 구성된 사람, 100으로만 구성된 사람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게으름만 보더라도 완전히 게으른 사람도, 완전히 성실한 사람도 없다. 누구나 0과 100사이 두자리 어딘가에 있다. 101가지의 세분화된 인간상을 모두 인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입체적인 인물을 발견할 수 있다. 오늘은 사람이 아닌 101가지 기회에 관해 말하려고 한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상태를 0, 모든 것을 다 이룬 상태를 100으로 간주할 때, 0과 100만 인정하는 습관이 있다. 성장중인 사람은 인정해주지 않는다. 왜 그 사이에 있는 다른 숫자는 성공으로 간주되지 않을까?



완벽주의자의 가장 큰 결함은 과정을 인정하지 못함이다. 온통 100을 향한 열망으로만 가득차있기 때문에 조그만한 두자리 숫자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완벽주의자의 두번째 가장 큰 결함은 세자리라고 생각한 그 결과에 도달했을때 본인을 두자리로 격하시키고 다시 세자리의 이상향을 만들어냄이다. 오직 세자리에만 집착한다.

기계와 마찬가지로 인간도 각자 갖고있는 배터리가 다르다. 연식이 지나면 배터리 수명도 줄어들기 마련이다. 버퍼링에 걸리면 재정비에 들어갈 때다. 하지만 좀처럼 인정이 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한 완벽이란 무엇일까. 내가 바라던 완벽에 도달하면 거기서 만족이 될까. 그럼 나는 왜 완벽을 쫒고 있었나…. 왤까?


성공을 했는데 성공을 인정하지 않는건 세상이 아니라 나였다. 세상이 불만스러웠다. 항상 스스로 격하시키는게 습관이었다. 목표치를 못해내면 너무 실망스러웠는데 그렇다고 목표치를 이루어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이 있었다. 하나씩, 천천히가 무엇보다 어려웠다. 난 굉장히 완벽주의이지만, 또 충동적인 사람이다. 계획은 세우지 않는다. 작은 시도가 아니라 끝을 보고자 했다. 그러다가 에너지가 떨어졌고, 목표치가 눈에 보이기도 전에 지쳐버리는 나를 자책했다. 정상이라함은 이러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100으로 성공시키고도 만족하지 못하고, 그 다음에는 80까지 가서 지쳐버렸고, 60까지, 30까지 가다가 난 이제 안되겠다 하고 0에서 멈췄다. 항복. 마이너스까지 치달았던 것 같다.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이제 100은 고수하고 10만 가도 괜찮겠다 싶었다. 10이 필요했다. 이제는 10이 나에겐 100이 되었다.


하나씩 다시 도전했다. 1을 해내면 나에겐 성공이었다. 그리고 더 나가지 않았다. 자리에서 1의 영광을 축하했다. 경험상 안주한다고 다른 일이 생기지않은 적은 없다. 1이 2가 되고, 2가 5가 되는 경험이 얼마나 황홀한지 모른다. 이룬게 많아도 실망스럽기만 했는데 한개를 성공했을때 행복하고 뿌듯하고 자신감에 차는 이 황홀함이란.

작은 시도의 장점은 무엇이냐면, 바로 되돌릴 수 있다는 거다! 인간의 감이란 또 얼마나 대단한지, 하나를 보면 열을 다 알지는 못해도, 예측이 가능하다. 인간의 데이터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쌓여서 꽤나 복잡하고 미묘한 차이까지 감지하게 되는데, 수틀린다 생각하면 바로 물러나는 용기만 장착하면 잘 못 된 길도 다시 돌아갈 수 있다. 한번에 많은 걸 잡으려 하지말고, 야금야금 시도해보고 수틀리면 돌아서는 것! 이것이 이번에 배운 지혜다.


사람을 판단할때도 마찬가진데, 사람의 일부를 보고 전체를 판단해버리는 오류가 가장 큰 문제다.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사람을 다 알겠냐니… 이제는 그냥 모르겠다고 외쳐버린다. 모르겠다!

사람이란 동물을 너무 좋아해서 사람에게 마음을 100 보여주고 후회하기를 반복하던 게 나다. 한번에 사람을 다 잡으려고 하면 부담감을 느끼고 도망치는 게 사람 심리다. 이런이런 점을 함께 하고 싶은데, 이 정도는 괜찮지? 이거 재밌겠지 않아? 하고 천천히 유혹하다보면 또 모르지, 나한테 스며들어 있을지. 사람을 잡으려고 용기냈던 지난 시간들에 이불을 뻥뻥 차본다. 조금만 사랑할걸. 조금만 알려주고 너나 나나 가려거든 가라 하고 보내줄 걸.




헬스장에 가기 싫어 죽겠을때 양말 하나를 신어본다. 그러곤 가지 않은 적이 없다. 시작만 해놓으면 끝은 자연스레 알아서 온다. 생각한 끝이 오지 않았다면, 그건 나의 끝이 아닌거겠지. 나의 끝은 내가 정할 수도 있지만, 내가 정하지 못한다. 하면 하고 말면 말고, 어쨋든 해보기나 하자. 내 것인지 아닌지는 해보고 들어보자. 그렇게 살아야 할 가치가 충분하지만 그러지 않아도 나는 충분하다는 마음가짐. 이제는 완벽보단 자유가 고프다. 구속되지 않고, 스스로 통제하지 않을. 이루어져도 너무 기쁘지 않고, 이루어지지 않아도 너무 슬프지 않을. 자유. 상쾌함. 널널함. 여유. 그게 너무 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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