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희망? 그딴 거 필요 없데도

안돼도 불구하고 기다리기

by 오지


희망이라는 거, 죽을 만큼 인정하기 싫고 죽을 만큼 간절한 것이 또 있을까. 희망은 정말이지 사람을 참 못살게 군다. 가져봤자 일어나지 않으면 스스로 실망해 버려서 자책하게나 만들고, 또 안 가지자니 사람은 희망으로 먹고 산다는 말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공허하다. 사람은 참으로 간사하다. 너무너무 갖고 싶어서 결국은 그곳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심리라니 말이다. 정말이지 모순적이고 이질적이다. 이러니 어찌 적당한 희망이 있을 수 있겠는가.


적당한 희망. 언제나 ‘적당한’은 어렵다. 무엇이든 적당히 하라는 명언이야 많지만 그 적당히는 어떻게 하는 건데. 그렇다면 욕심도 적당히 가질 수 있는 건가. 희망은 넘쳐나지도 그렇다고 메마르지도 않아야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넘쳐나는 희망을 품고 싶다. 말도 안 되는 일들을 꿈꾸고 그 꿈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면 좋겠다.

허상을 품고 사는 기질은 참으로 살기가 힘들다. 근데 또 누구보다 재밌게 산다. 누군가는 꿈꾸지 않는다. 멍청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너무 순수하다면서 좋은 단어는 갖다 붙이지만 의미는 부정적인 이상한 말이나 해대는 인간들보다는 재밌다. 적어도 그들보단 삶이 재밌다.


내 시간은 천천히 간다. 빠르게 간다간다 하지만 그래도 다른 이들보다는 천천히 간다. 그 이유가 매일 계속되는 망상과 공상, 허상인 듯하다. 어쩌라고. 나는 이 안에서 산다. 그리고 눈으로 생생하게 보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그러니까 매일 새로운 세상에서 산다는 얘기다. 매일이 새로운 세상이고, 신기한 세상이다. 왜냐하면 새로운 미래와 희망은 나를 꿈꾸게 하니까. 그래서 내 시간은 남들보다 천천히 간다.


이제는 그만해야겠다. 이제는 현실을 살아야겠다. 고 생각한 때가 있었다. 근데 그 시간 동안 나는 죽어버렸다. 완전히 죽어버렸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 이유를 몰랐다. 재미도 없고, 우울하고, 열심히는 하는데 되지도 않고, 절망만 보이고, 인간이 싫고, 내가 싫고. 그게 모두 나답지 못한 삶을 살아서 그랬다. ‘자아’를 초월해 해탈의 경지에 오르겠다고, 나를 버리고 진짜 자유로워져야겠다고 생각한 때가 있었는데 결국 나는 나를 선택했다. 역설적으로 나를 버리고 나서야 나를 찾았다. 나는 나를 버리지 못한다. 그리고 나로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이제는 놓치지 않겠다. 세상 그 누구보다 가장 재밌는 인생을 살고 있는 나를 버리는 건, 우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계속 기다리겠다. 이루어지든 이루어지지 않든. 하지만 이루어지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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