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아니면 100 - 사람

by 오지

0과 100 사이에 101가지 숫자가 존재한다. 이 글은 0과 100, 두가지 숫자가 아닌 101가지 숫자를 위한 글.




나는 자타공인 호불호가 강한 사람이다. 이 사람은 싫고, 저 사람은 좋아. 이 음식은 싫고, 저 음식은 좋아. 이 음악은 싫고, 저 음악은 좋아. 예민한 감각을 지닌 탓에 사물을 구별해내는 능력도 뛰어나다보니, 좋아하고 싫어하는 건 확실히 구분하는 편이다. 그러나, 꼭 그래야만 했을까?


대상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는 습관은 정밀함과 관련이 있다. 세상은 이분법적으로 나뉘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분법이라는 거, 정말 효율적인지에 대해선 생각해보지 않았다. 0과 100. 두가지 숫자로만 이루어진 세상은 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영과 백. 둘 중 하나만 존재하지도 않는다. 사람 눈에 보이는 단편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하나로 정의한다는 건 아주 교만한 생각이다.


최근 읽은 책, 모순. 이 책을 읽고 신기하게 사람이 입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맞아. 사람은 입체적이지. 사람은 단편적이지 않아. 모순에 나오는 인물들 모두가 그랬다. 주인공으로 시작하는 안진진, 안진진의 아버지, 어머니, 남동생, 이모, 그녀의 남편, 그녀의 자녀, 그리고 안진진을 사랑하는 남자 두명까지. 한 순간, 한 장면만으로는 절대로 인물을 이해할 수가 없다. 인물은 서사를 봐야한다. 태어난 순간부터, 자라나는 환경, 주변에 얽힌 다른 인물들. 그 순간들이 모여 한 인물을 만든다.


스스로 사람을 입체적으로 보기 시작했다고 느낀 건, 모순을 막 다 읽고 난 후였다. 출근길 버스에서 옆에 보이는 사람이 없는지 앞만 보며 큰 가방과 몸으로 돌진해가던 아줌마가 있었다. 당연히 고스란히 내 등과 몸도 아줌마의 힘에 밀려나갔다. 처음에 들어오는 반응은 당연히 불편함이었다. 이전같았으면 당연히 거기서 더 생각이 발전하지 않았을 것. 하지만 순간, 그 아줌마가 안진진의 엄마로 보였다.



안진진의 엄마는 결혼을 하면서부터 가정폭행을 일삼는 남편을 대신해 가장 역할을 하는 이 시대의 흔히 들을 수 있는 '엄마'다. 그녀는 불행이 닥치면 더 큰 독기와 고통으로 책을 집어 상황을 공부하고, 분석하고, 행동하는 전략가다. 그녀에게 불쌍하게 주저앉아있는 이들을 보살피거나 돌볼 여유는 없다. 그게 그녀의 방식이 아니며, 그녀가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방식은 아니므로. 그러니, 그 아줌마도 그런것이다. 아줌마의 인생은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행인1 따위 신경쓸 틈 없이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사는게 아줌마에게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았을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이 아주머니가 가여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화이팅을 외쳤다. 그래. 그렇게 살아가세요. 아줌마. 그게 당신이 살아가는 방식이니까.


0 아니면 100. 모아니면 도. 흑과 백. 이 모든 주체들은 단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너가 있기에 내가 있고, 너와 내가 함께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둘 중 하나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둘 모두가 존재할 뿐더러, 실제는 둘 사이에 우리가 보지 못하는 무한대가 존재한다. 아니, 둘이라는거. 사실 그게 시작과 끝은 아니지 않을까. 사실 그 둘도 어떤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둘이 아닌 모든 개체를 보자. 모든 개체가 그 존재로서 의미있는 것이며, 단일 개체가 될 수 있다. 단일 개체는 0과 100사이의 숫자가 아니라, 그 존재 차제이다. 무엇으로도 규정할 수 없는 것이고, 또 무엇으로도 규정할 수 있는 것. 그러니 모두를 존중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