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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 Dec 06. 2020

당신, 깨어있어?

영화 <델마와 루이스>

추위, 외로움에 간신히 버티고 있을때 이 영화를 접했다. '델마와 루이스'

영화 후기를 가득 채운 페미니즘 얘기보다, 더 벙찌게 만든건, 

델마가 단 한마디로, 내 마음 깊숙히 묻어둔 감정 하나를 꺼내주었기 때문이다.

단 한 마디로.


"YOU AWAKE?"


영화 뒷편으로 갈수록 달라지는 델마.

좀 더 강하고, 성숙하고, 무엇보다 자연스러운 델마가 있다.




델마 : 깨어있어?

루이스 : 눈을 뜨고있으니 그렇게 부를 수도 있겠네.

델마: 나도 깨어있어. I FEEL AWAKE.

루이스 : GOOD

델마 : I feel really awake. 이런 기분 처음이야. 알아? 모든게 달라보여. 



델마의 인생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많은 경험을 하고 나서는,

비로소 깨어났다고 델마는 말한다.

비록 스크린안에서 올드카를 타고, 위스키를 마시며, 캐년 사이를 누비는 델마는 아니더라도,

안다. 그 깨어있는 기분.


눈 앞에 쌓인 벽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안절부절하고 있는 지금과 달리, 나도 깨어있다고 느꼈을 때가 있었다.


카파도키아에서 석양에 맞춰 떠오르는 열기구들을 보며,

우유니 사막 한 가운데서 반짝이는 별들로 몸을 휘감으며,

홍해바다를 누비며 물고기들과 함께 헤엄치며.


생생한 경험들이 아직은 나를 떠나지 않고 있음을 델마가 알려줬다.


그래서 안다.

델마의 두려움과 확신에 찬 눈동자를.

깨어남을 맛 본 이상, 다시는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지도, 돌아갈 수도 없다는 것을.

난 안다. 



델마가 지금, 나에게 묻는다면 이렇게밖에 말하지 못하겠다.


YOU AWAKE?

Thelma... I'm afraid i can not wake anymore.... 


지금의 나는, 요즘의 나는,

델마가 다시 집으로 돌아와 이전으로 돌아가기 위해 두꺼운 가면을 꾹꾹 눌러쓴,

혹여나 눈물이라도 새어나올까봐 더 겹겹히, 더 두껍게 가면을 누르는,

루이스와의 추억은 나무박스에 넣어 못으로 단단히 박고, 바다로 흘려보내는 모습일까.


만약 영화가 정말, 그렇게, 끝이 나버렸다면

이 영화는 내가 본 영화중 최악으로 도장찍었을테다.


용감한 델마의 모습으로 끝이나서 더 좋았던 영화.

델마와 루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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