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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 Sep 14. 2019

은둔생활을 시작했다.

1년 세계일주 그 후,SNS 중독자를 자신하던 내가, 인스타를 끊은 이유

페루 - 와카치나 

1년간의 세계일주.

한국에 돌아오면 모든게 달라질 줄 알았다.

새로운 경험, 새로운 풍경, 새로운 가치관들로 새로운 한국을 맞을 줄 알았다.

맞다. 정말 새로웠다. 

새로운 내가 1년 전과 그대로인 한국과의 괴리감을 소화하기 힘들단 것도 역시 새로웠다.


 한국에 돌아와서 한동안 그리웠던 한식먹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여행에서 만난 사람, 원래 알고 있던 지인들. 1700만원으로 1년을 살만큼 아껴 살았는데, 남겨온 150만원이 2주만에 술과 음식들로 휘발했다 .정말 그립던 사람들이였는데, 계속 만날수록 드는 생각은 다음과 같았다.


'이 사람을 계속 보기는 할까? 돈과 시간을 들인만큼 이 사람과의 인연이 계속될까?' 


갈수록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에 빠졌다. 1년동안 계속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으면서 그때는 왜 그랬을까. 그리고 약속된 계획을 모두 취소하고, 본격적으로 집생활을 시작했다.


 1년동안 계속 여행하고, 자리를 옮겨다니고, 새로운 천장아래, 8명 많게는 20명과 같이 자면서 생각했다. 


"좁아서 성인 남자 하나 눕지 못하는 내 방이여도, 내 공간이 참 그립다."


 너무 돌아다닌 탓에 집에 있는걸 지독히도 싫어하던 내가, 그래서 세계로 나갔던 내가, 외출이 싫어졌다. 1시간 거리를 2년동안 출퇴근했는데,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버스로 10분거리가 내 활동범위다. 하지만 집에서는 할게 없었다. 지루했고 하는거라곤 조그만한 스마트폰 들여다 보고 있는 것 뿐이였다. 여행을 누가 휴식이라고 했던가, 휴식으로 생각하는 자만이 휴식을 취하는 법. 매일 다른 도시를 탐방하고 다녔다. 그래서 아무것도 안하거나, 핸드폰만 보고 있는 그 시간이 좋았다. 


문제가 생겼다. 후유증에 빠지고, 그다음엔 무기력증에 빠졌다. 


 여행 전에 난 심각한 인스타그램 중독자였다. 2년동안. '좋아요'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댓글'이 달리길 빤히 바라보는. 검지로 피드를 무자비하게 내리면서 인스턴트식 감상을 하며, 하트만 온종일 누르는. 그래도 자존감이 낮아지진 않았다. 인정받는 기분이였으니깐. 아니, 조금씩 갉아먹히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여행중에 내 사진 올리기에는 급급해도 인친들이 뭘하고 사는지는 관심가질 여유가 없었다. 여행하기가 바빳으니깐. 성격 급한 한국인은 인스타 사진 하나 뜨는데 1초나 걸리는 저렴한 호스텔 와이파이와 맞지않다. 지독히도 느려서 기다리다가 핸드폰 쥐고 잠든 적이 많았다. SNS보다는 당장 내일 가야할 명소 정보, 스팟, 지도캡쳐(유심 없이 다녔기 때문에 숙소에서 항상 지도를 캡쳐하는게 일이였다.)에 더 시간을 들였다.


 반대로, 0.00000000001초만에 열리고 재생되는 한국형 sns는 끊임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만든다. 더욱이나 나는 좁은 방에 누워서 아무것도 안하고 뒹굴거리는 백수였다. 새로운 내일을 꿈꾸던 여행가가 아니라. 얼굴도 알지 못하던 인친들과 잘되가는 지인들과 나를 비교했다. 화려했던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했다. '좋아요' 숫자가 갈수록 떨어져서 너무 불안했다. 하루에 12시간을 인스타그램을 했다. 인친들 피드가 끝나면 어떤가.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스토리가 있다. 스토리를 다 보면 어떤가.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 올린 근황이 있다. 무한한 1분짜리 클립동영상이 있고, 유머글들이 있다. 12시간은 무한한 정보를 다 보기에는 짧은 시간이다.



 지구를 휘젓고 다니다가, 손바닥만한 화면만 하루종일 봤다. 갈수록 눈이 침침해지고 거울을 보면 눈동자가 반쯤가려질 정도로 눈꺼풀이 쳐져있고, 눈밑 다크써클이 얼굴빛을 더 흐렸다. 무엇보다 정신이 흐려져 갔다. 무기력에서 헤어나오기가 힘들었다. 몸을 움직이려고 해도 움직여지지 않고, 잠에서 깨고 싶어도 끊임없이 잠이 왔다. 참 우연하게, 딱 그때, 우울증 환자가 전하는 우울한 동영상을 접했고, 자살과 자해 생각이 머리에서 둥둥 떠다녔다. 스스로도 너무 어이없었다. 


사람들에게 희망적인 말을 하고, 인생은 살만하고, 세상은 참 아름답다고 말하고 다녀놓고, 지금 와서는 자살생각이라니. 
실컷 재미보다가 아무것도 남지 않은 실패자라는 타이틀이 붙은 것 같았다. 


 무기력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한건 한국 오자마자 등록해놨던 수영강습이였다.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 못가면 '또 난 실패했어.' 라며 더 무기력에 빠지다가, 3주가 지나서야 용기를 내서 첫 수업에 갔다. 너무 뒤늦게 온 날보고 선생님이 '왜 이제야 왔어요?'라고 했다.'그러게, 왜 이제야 왔을까' 생각하면서 '이제라도 오긴 왔다.'고 칭찬해줬다.


 얼굴에 물 몇번 맞고 나니, 정신이 좀 차려지더라. 그리고 또 그때, 명상을 접했다.(다음편:왜 나는 명상을 시작하게 되었는가)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 라는 마음이 슬금슬금 올라오기 시작했다. 내가 왜 무기력에 휩싸였는가를 계속 생각해보니 답은 SNS였다. 나와 상관없는 정보들로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시간들. 인스타그램 1주일만 끊어보자고 다짐했다. 생각보다 내 생활에 아무 지장이 없었고, 오히려 족쇄에서 풀려난것처럼 기분이 꽤 괜찮았다. 소중하게 생각했던 인친들이였는데, 왜 사진 안올라오냐고 묻는 사람도 하나도 없더라. 흥. 1주일이 1개월이 되고, 3개월이 되고, 6개월이 지났다.


볼리비아 - 우유니 소금사막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이유는 '사진'.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꿈만 그리던 캐논 600D로 매주 출사를 나가고, 카메라 한번 들고 나갔다 하면 천장을 찍어왔다. 사진을 찍으면 찍을수록 눈에 보이는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기 시작했다. 익숙함도 새롭게 만들어주는 사진이 좋았고, 좋은 각도와 구도를 발견하면 너무 행복했다. 라이트룸, 포토샵으로 내 손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풍경이 좋았다. 인스타에 올리면 사진 좋다고 하는 사람들이 좋았고, 사진찍는 인친들과 소통해서 좋았다. 어느순간, 인스타에 올리기 위해 셔터를 누르는 내가 보였고, 셔터를 누르기 위해 좋은 풍경을 찾아가는 내가 있었다.


 우유니 소금사막에 아이폰이 빠져서 고장난 뒤, 3년전에 쓰던 LG보급형 스마트폰을 쓰고있다. 찍어도 화질이 옘병이라 사진은 추억 기억용으로 찍고, 좋은 풍경은 마음에 새기고 있다. 데이터도 최소한으로 300mb로 해놨다. 밖에서만이라도 핸드폰 하지 말자라는 다짐으로. 다행히 여행때 너무 익숙해져서 크게 불편하진 않다. 


 무의식이 인생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인스타그램은 말그대로 '인스턴트(instant)'적이다. 잠깐 머릿속에 머물렀다가 사라진다. 하지만 100만개 중에 1만개가 내 무의식에 침투한다면,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는거다.


 인터넷이 너무 느려서 몇번 클릭하다가 일찍 잠이 들던 때가 그립고,
작은 모니터 화면이 아니라 오감에 집중하며 다니던 때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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