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지 May 04. 2022

고민해도 괜찮아

 어릴적 유치원에서 국기 그리는 미술시간이였다. 다른 동생들은 모두 골라서 열심히 색칠하고 있을때, 나는 한참을 고민했다. 정말 무엇을 그릴지, 쉬운 일본을 고르자고 하니 그것은 감히 내 애국심에 반항하는 것 같았고, 태극기를 그리자니 다른 애들이 다 하는걸 하기 싫었고, 다른 나라를 고르자니 어딘지도 모르는 곳을 딱히 느낌이 오는게 없었다. 고민은 계속 되었고, 담당 선생님 뿐만 아니라 원장님까지 찾아와 빨리 골라야 한다고 보챘다.


 하지만 나도 내 맘을 모르겠는데 계속 고르라고 하니 미칠 지경이였다. 선생님들도 나만큼 미칠지경이였기에 나한테 안달복달한걸까? 어쨌든 내 마음은 혼돈이였다. 그 다음부터는 고민을 떠나 수치심이 들었다. 원장님이 와서 다른 애들 다 골랐는데 너는 왜 못고르냐고 하는데, 주변에 동생들에게 언니, 누나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거 같아서 수치심이 들었고, 왜 나는 다른 애들보다 고민을 많이 할까라는 죄책감이 들었다. 


 그 이후에도 원장님은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너무 오래 고민을 해서 피해를 끼쳤다는 늬앙스의 말을 전달했다. '제가 고민한게 그렇게 죄인가요? 저는 단지 제가 좋은 선택을 하고 싶었을 뿐이예요.' 눈치보듯 내키지 않은 마음으로 고른 국기는 태극기였다. 나중에 그린 국기들을 전시했는데 그것마저 뒤집혀서 걸렸다. 원장님이 너무 미웠다.


 나는 그저 내가 원하는 선택을 하고 싶었을 뿐이였고, 그걸 기다렸을 뿐이였다. 그러나 어른들은 나에게 빠른 선택을 원했고, 선택하지 않고 보류하는 방법, 혹은 기다려주는 방법은 알려주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이어져 나는 항상 조급한 마음으로 선택을 했고, 어딘가에 쫒기는 선택을 했다. 


 선택의 기로에 있을때 고민되는 시간이 너무도 싫었다. 그래서 택한 해결방법이 빨리 아무거나 고르기. 이러나 저러나 후회를 하든 뭘하든 선택하기 전에는 모른다는 말이 있다. 맞다. 고민하는 시간이 쓸모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민은 나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다. 그 괴로운 과정을 충분히 거쳐서 하는 선택에는 후회가 없다. 그 고민의 결과도 내 몫이기에 남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다. 


 이제부터는 그런 나를 기다려주려고 한다. 무조건 빨리 결과를 내려고 하고, 다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려하지 않을 것이다. 충분히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공감해줄 것이다. 


 무슨 국가를 고를지는 미래에 있는 너가 세계 각국을 다 다녀보면서 맘에 드는 국기를 찾을 수 있단다. 시간은 충분해. 고민하다보면 언젠간 찾을 수 있어. 찾지 못해도 괜찮고.


고민할만 하니깐 하는거라고. 그렇게 충분히 신중해도 괜찮다. 신중한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백만년이고 천만년이고 고민해도 괜찮다.

신중한걸 문제화하는게 문제일뿐. 


베네치아에서


작가의 이전글 좋은 공간은 좋은 대화를 만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