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그리고 시작
세기말인 1999년, 인생 첫 아홉수를 맞이하였다.
은행장이던 아버지 덕에 우리 반 처음으로 휴대폰을 누리며 모든 이들의 부러움을 산 친구의 여유는 외환위기 후 그 빛을 잃었고 고3을 맞은 우리는 지구 종말을 예견하는 억측에 편승해 마음껏 우울을 만끽했다. 대학은 가서 무엇하나 어차피 죽을 거 때깔 좋은 귀신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며 실컷 폭식하고 잠을 자고 마음껏 살이 올랐다. 그렇게 우리의 20세기는 끝을 향해 갔고 나의 십 대도 막을 내렸다.
이십 대의 끝자락에 선 2009년, 원 없이 미끄러진 뒤 원하던 교단에 서게 된 스물아홉의 시작은 순탄치 않았으나 원하던 걸 결국 이뤘으니 무탈하게는 지나가 줄 거라 확신했다. 그러나 동생의 갑작스러운 결혼 발표로 굳건한 줄 알았던 나의 긴긴 연애는 무참히 흔들렸고, 서른을 며칠 앞둔 12월의 어느 날 예쁜 내 조카가 생겼다는 기쁜 소식과 함께 사랑도 끝이 났다. 두 번째 아홉수는 꽤 오랜 시간 후유증으로 남아 원 없이 아파야 했다.
2019년, 뜻하던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2018년이 이룬 것 없이 허무하게 달아나버렸고, 서른여덟에 마음껏 깨졌으니 서른아홉은 괜찮아야 마땅하다며 호기롭게 시작한 세 번째 아홉수였다. 그렇게라도 해야 어떤 일이 닥쳐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끝없이 삐걱대며 어렵게 시작했던 어떤 인연의 끝을 매듭지어야 할 순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맞출 수 없는 퍼즐처럼 맞지 않는 사람과 최선은 아니지만 최악은 면해보자 노력했던 순간들이 와르르 무너졌고 난 또 한 번 실패했다. 마음 없이 시작한 관계의 끝에 남은 건 미련도 슬픔도 아닌 허무한 패배감뿐이었으나 지난 노력을 책망하거나 후회하지 않기로 다짐하며 끝없이 침잠하기로 했다.
모든 게 끝난 줄 알았던 내 인생의 끝자락들을 돌이켜 보면 무안할 정도로 무던히 지나갔거나 지나가는 중임이 분명하다.
늘어난 미세먼지와 현기증 나게 오르내리는 부동산 시세와 무참히 고공 낙하하는 취업률에 살기 팍팍해진 건 사실이나 공중분해될 줄 알았던 지구는 여전히 건재하고 죽을 것처럼 힘들었던 지난 이별도 잔잔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신은 견딜 만큼의 시련을 주고 끝이 있으면 또 다른 시작이 존재한다는 진부한 문구를 굳이 꺼내 마무리하고 싶지 않았으나 그 진부함이 삶의 매 끝자락에서 가장 큰 위로가 되었으니 이보다 나은 문장이 존재할까.
살다 보면 뜻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부지기수.
아홉수마다 찾아오는 시련의 무게가 커지는 만큼,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삶을 견디는 힘이 견고해지고 있다.
그거면 ‘끝’의 가치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