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건해지기보다 유연해지기
2019년 여름의 어느 토요일 아침, 알람이 울리지 않았는데도 눈이 뜨였다. 깜찍한 이름에 오히려 끔찍한 태풍 ‘링링’ 덕에 음침한 하늘과 습한 공기로 적당히 눅눅한 방이 되려 포근해 더 잠을 청해도 좋았으련만. 눈 뜬 김에 박차고 일어나 오늘의 유일한 할 일 ‘글쓰기’를 시작해볼까 잠시 망설이다 좀 억울한 생각이 들어 이불을 온몸으로 둘둘 말아 뭉글뭉글한 분위기를 만들고 ‘습관’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했다. 한때 무한 재생하며 애정 하던 음악, 롤러코스터의 ‘습관’을 배경음악 삼아.
얼마나 많이 기다렸는지 너를 내게서
깨끗이 지우는 날 습관이란 게 무서운 거더군
아직도 너의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사랑해 오늘도 얘기해 믿을 수 없겠지만
안녕 이제 그만 너를 보내야지
그건 너무 어려운 얘기
참 신기한 일이야 이럴 수도 있군 너의 목소리도
모두 다 잊어버렸는데 습관이란 게 무서운 거더군
아무 생각 없이 또 전활 걸며 웃고 있나 봐
사랑해 오늘도 얘기해 믿을 수 없겠지만
안녕 이제 그만 너를 보내야지
그건 너무 어려운 얘기
습관이란 게 무서운 거더군 아직도 너의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사랑해 오늘도 얘기해 믿을 수 없겠지만
안녕 이제 그만 너를 보내야지
그건 너무 어려운 얘기
bye bye bye bye... - 롤러코스터, ‘습관’
‘습관’은 어디에 가져다 붙여도 참 좋은 단어다.
혼이 날 때도, 스스로를 다그칠 때도, 누군가에게 인정받을 때에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젓가락질을 잘하지 못해도 밥을 먹는 건 똑같은데 이상하게 밥을 먹는다며 혼을 내는 외할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은 늘 무거웠다. 그래서 치열하게 노력했고 그렇게 난 정석으로 젓가락질을 할 줄 아는 반듯한 어린이가 되었다.
초등학교(아니지 국민학교) 시절, 경필쓰기대회에서 상을 받아온 동생의 깍두기 노트 속 글씨는 깔끔함과 야무짐 그 자체였다. 엄마의 비교는 시작됐고 잘하고 싶어 스스로를 체근했다. 연필을 쥐는 습관을 바꾸고 밑이 훤히 비치는 종이 위에 교본대로 꾹꾹 눌러 적었다. 그러나 기름종이 위 미끄러지는 연필심 마냥 쭉쭉 미끄러져 낙방을 거듭했다. 결국 글씨 좀 안 예쁘다고 공부 못하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생각에 온 힘을 다 들여 어색하게 쥐고 있던 연필을 후려쳐 던져버렸다. 그렇게 다시 자유로워졌고 남들과 다르게 연필 쥐는 습관만큼은 ‘개성’ 혹은 ‘천성’처럼 굳어져 내게 남아있다.
“일처리가 능숙하고 빠른 것 같아요.”
해가 거듭될수록 인정받는 순간들이 늘어간다는 건 참 축복받은 일이다. 주변을 살피고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고 캘린더에 적어 하나씩 해치우고 하루를 마무리하며 주변을 정리한다. 밥벌이를 시작하면서 들인 (나름 좋은) 습관들이 굳어져 스스로에겐 엄격하되 타인에겐 유연하길 바라며 살아낸 시간들이 옳았다는 걸 공감받는 느낌. 그 느낌은 자존감으로 이어지고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의 원천이 되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른 순간, 5년 전 누군가 내 카톡 프로필 사진을 보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진도 참 당신 같아.”
“그게 무슨 말이야?”
“반듯해. 너무. 좀 흐트러져도 괜찮지 않아?”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에 한동안 답을 하지 못했다. 반듯하게 살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게 문제라니. 그런데, 반박하지 못하고 서럽게 울어버렸다. 어쩌면 너무 힘들었던 그때 그 말이 질책이 아닌 위로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좀 덜어내도 괜찮다고 말하는 그 사람의 말에 내 반듯한 습관들이 실은 긴장감으로 잔뜩 경직된 마음과 주위 시선을 의식하는 버릇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외면하며 살아온 내 지난 시간들이 가여워서? 아니면 완벽했다고 여기며 뿌듯해하던 내 어리석음을 들켜 버린 것 같아 창피해서? 그 둘의 중간 어디쯤이었던 것 같다.
지금도 난 부단히 노력 중이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습관의 힘과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들 앞에서 굳건해지기보다 유연해지기를. 눈치와 긴장과 주위 시선보다 중요한 건 내 마음이라는 걸 수없이 되내며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기 위해 여유를 선물하고 주말은 온전히 나에게 집중한다.
일주일에 한 권의 책을 읽는 습관
누군가의 무거운 부탁은 정중히 거절하는 습관
퇴근 시간 이후, 어디든 하염없이 걸어보는 습관
무심한 시간을 뒤로하고 나에게 집중해 보는 습관
남들이 흔히 말하는 성공하는 이들의 좋은 습관과 거리를 둔 자질구레한 이 다짐들이 나는 좋다.
낙오자란 세 글자에 슬퍼하지 말고
사랑이란 두 글자에 얽매이지 말고
삶이란 한 글자에 충실하라!
내 삶에 충실해야 할 수많은 순간들을 응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