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 아빠의 청춘

60초 후에 계속됩니다

by Carpe diem

1분은 60초
1시간은 60분
태어난 해가 돌아온다는 60 갑자



‘60’이란 숫자는 완성과 끝,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아빠를 닮아 카메라를 좋아하는 나는 카메라를 든 아빠 모습 찍기를 자주 한다.



돌아볼 새 없이 달려온 세월, 우리 아빠의 만 60은 정년퇴임과 회갑으로 축복받을 일 투성이었다.


적어도 겉으론 그랬다.


만 60세가 되던 해 설날, 아빠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으나 아빠의 낯은 밝아질 줄 몰랐다. 정년을 채웠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축복받을 만한 일. ‘노인’으로 낙인찍힌 듯 가슴이 뻥 뚫린 것만 같다는 아빠의 말에 2016년 새해는 마냥 밝을 수 없었다.


“할아버지!(정확하게는 ‘하바!’)”


너무 예쁜 조카의 입을 틀어막고 싶은 순간이었다. 우리 아빠가 할아버지라니. 너무도 생소해 견딜 수 없었다. 곁눈으로 흘끔 바라본 아빠의 표정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세상 가장 행복한 모습으로 손녀딸을 바라보며 “오야.” 대답하곤 두 팔 벌려 바스러질 듯 폭 안아주었다. 그런 아빠를 마주한 다음에야 나도 웃을 수 있었다. 흰머리 하나 없고 잘 생긴 우리 아빠가 50대에 할아버지 소리를 들어도 무던할 수 있단 게 마음이 놓였다.


그래서 난 속도 없이 아빠의 정년을 마음 다해 축하해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뒤따른 아빠의 고백은 묵직했다. 예전에는 잔치도 열고 한 평생 최선을 다해 살아내신 분을 축복하는 게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는데, ‘회갑’이라는 단어는 껍데기로 남아 예우도 없고 흘러버린 시간만 고스란히 숫자로 남겨진 느낌이랄까. 백세시대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헷갈릴 만큼 아빠의 회갑은 지나치게 소박했다. 가족끼리 식사하며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한 아빠의 노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아빠는 엄마와 난생처음 긴 여행을 떠났다. 사진을 찍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아빠는 한동안 그 생기를 찾은 듯도 했으나 쉬는 데 익숙지 않아 쉬는 날이 거듭될수록 하루를 한 달처럼 노쇠했다. 너무 이른 나이에 사회가 ‘정년’이란 명목으로 아빠의 에너지를 폄하해버린 건 아닌지 속상했다.


잠깐의 외출과 귀가로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던 아빠는 곧 새로운 직장을 얻었다. 정년 후에도 일을 해야 한다니 너무 한 거 아니냐며 볼멘소리를 하는 아빠의 얼굴은 어감과 달리 상기돼 있었다. 다행이지 싶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와 나란히 선 아빠는 한없이 젊고 싱그러워 검버섯이 그득한 할아버지와 전혀 닮지 않았다고 여겼고 그런 아빠가 자랑스러워 엄지를 세우곤 했다. 그때의 할아버지 나이보다 더 들어버린 아빠에게도 흰머리와 검버섯이 내려앉아 영락없는 할아버지 판박이로 비쳐 덧없이 생기마저 놓아버리는 건 아닌가 무거웠던 차에 아빠의 불만 가득 수다는 반갑기만 했다.


“역시 능력도 열정도 넘치는 우리 아빠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 아빠 인생의 2막을 응원할게.”


60초 후에 공개하고 60초 후에나 계속되는

드라마나 예능처럼 인생도 그렇다.

60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 그리고 설렘이다.


아빠가 찍은 오늘의 하늘. 우리 아빠의 사진은 늘 사람을 설레게 한다.



아빠의 60대가 늘 생경해 다행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