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 81년생 김은영 이야기

친애하는 엄마에게 (from. 영화 ‘82년생 김지영’)

by Carpe diem
세탁기에 빨래를 넣고난 찰나, 잠깐의 정적과 여유 앞에 여자의 마음은 어떨까


새로운 한 해가 밝은 오늘 아침, 혼자 맞이하는 명절은 처음이라 쉽게 발을 떼기 어려워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부족한 잠 탓으로 조금 늦게 출발하겠노라 어리광을 부렸습니다. 첫 아침을 잠으로만 보내는 게 죄스러워일까요? 다시 잠을 청하는 게 어쩐지 불편해 오랜만에 책상 앞에 앉아 생각을 정리하다 설을 핑계로 쑥스러운 편지를 적어보기로 하였습니다.



9살이 되던 해 1월, 지석이가 태어나던 날을 아직 기억합니다. 밤늦게 산통을 견디다 엄마는 혼자 병원에 갔고, 퇴근 후 집에 들러 엄마의 물건을 챙기며 문단속을 당부하고 병원으로 떠난 아빠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지영이와 함께 밤새 엄마가 무사하길 기도했습니다.


8살이던 지영이와 갓 9살이 된 제가 견디기엔 춥고 어두운 밤이었습니다. 할머니의 아들 타령에 이골이 나던 차에 불러오는 엄마의 배를 바라보며, 태어나기만 해 봐라 벼르던 저의 옹졸한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질 만큼 이른 아침에 마주한 지석이는 천사처럼 예뻤고 사랑스러웠습니다. 제왕절개로 지석이를 낳은 엄마는 마취가 깨면서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였어요. 내가 지석이를 미워하면 엄마의 고운 미소를 더 이상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큰누나답게 사랑해 주기로 다짐했습니다.

곱게 포장한 선물 같던 지석이는 엄마 품에 소중히 안긴 채 아빠의 새로 뽑은 차에 태워져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지석이의 탄생은 집안의 큰 축제였고, 많은 이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임용에 합격한 나보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전교권 성적을 거머쥔 지석이가 더 큰 축하를 받았고, 그 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지석이의 승승장구는 온 집안의 자랑거리가 되었습니다.


엄마에게 믿음직스러운 딸이기 위해 노력한 지난 시간들이 무용지물로 여겨졌지만 이미 어른인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8살이나 어린 막내 동생을 질투하는 건 철없는 심술이 분명했습니다. 최대한 성실하려 노력했던 제가 다 늦은 나이에 할 수 있는 반항은 ‘어른이 된 내 결정’이라는 핑계로 엄마가 원하는 것과 상반되는 행동들을 자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엄마와 난 계속 삐걱거렸고, 서른이 다 되도록 논리적이지만 차가운 말들로 악을 쓰며 엄마에게 상처를 줬습니다. ‘자식 중 하나는 무조건 서울대’를 좌우명으로 여기던 엄마의 소원을 이루어 준 건 결국 지석이었고, 철도 없고 눈치조차 없는 못 미더운 놈이지만 ‘존재만으로도 행복’이라는 엄마의 맹목적 사랑에 백기를 들었습니다.


내가 아무리 상처를 줘도 엄마에게 지석이는 만병통치약 같은 존재라는 걸 받아들인 순간,


엄마에게서 멀어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도피처로 선택한 건 우습지만 엄마가 그렇게 원하던 내 ‘결혼’이었고, 별로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와 결혼하려는 내 마음은 절대 내비치지 않으리라 다짐했습니다. 지친 마음에, 결혼하면 정 들이면서 사는 거라 말하는 엄마의 말이 그렇게 옳다면 어떻게든 살아지겠지 믿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속도 모르고 좋은 것들로만 혼수를 장만해 주려는 엄마의 친절에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엄마를 이해하기로 결심한 9살의 은영이가 떠올라 죄스러운 마음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으니까요.



그렇게 시작한 결혼 생활이 행복할 리 없었습니다. 착하고 나를 사랑해 주는 남자이지만, 마음 두지 못한 채 일에 매달리고 소홀해졌습니다. 자기주장 강한 나에게 하루 이틀 지쳐가는 그 사람과의 다툼이 잦아졌습니다. 아이를 낳으면 좀 행복해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임신을 준비하고 2년 만에 찾아온 아이에게 ‘보름이’라는 태명을 지어주고 애지중지 소중하게 품었습니다.


“보름아, 좋은 엄마 아빠 만나러 어서 오너라.”


걸레질을 하며 조용히 읊조리는 엄마의 기분 좋은 음성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매끼 영양가 좋은 것들로 한상 가득 차려주는 엄마에게 미안하고 고마웠습니다. 어쩌면 모른 체해도 외면할 수 없는 엄마의 마음을 닮고 싶어 나도 엄마가 되고 싶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15주 만에 유산되고 엄마는 유산도 출산과 같다며 미역국을 끓여 주셨습니다.


“애를 낳고 먹어야 하는 건데, 미안해 엄마.”


등을 보인 채 아무 말이 없는 엄마와 국그릇만 바라보며 말을 건넨 나는 울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그렇지만 한동안 보름달을 바라볼 자신이 없었습니다. 집에서는 그 사람에게 매일 밤 울며 불행하다고 소리쳤고 그 사람의 귀가도 늦어졌습니다. 그렇게 점점 소원해졌고 내 마음을 스스로 외면한 무책임한 선택을 인정하고 혼자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어린 시절, 엄마가 사주지 않는 금색 색연필을 미술학원에서 몰래 들고 돌아온 날도, 78점 맞은 시험 점수를 98점으로 고쳐 들고 들어온 날도 엄마는 화를 잔뜩 냈는데 이렇게 큰 일탈을 감행한 내게 엄마는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퇴근 후, 말없이 큰 집에 혼자 돌아가는 큰 딸이 가여워 엄마의 푸짐한 밥상은 그 후로도 계속되었습니다. 그렇게 난 엄마에게 미안함도 고마움도 표현하지 못하고 원래 혼자였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친애하는 우리 엄마...

모든 면에 엄했던 엄마가 한없이 여린 할머니가 되어 세상 가장 인자한 모습으로 아영이를 폭 안아주는 모습을 보고 난 좋은 엄마가 될 자신이 있었습니다. 내 아이에게도 이렇게 멋진 할머니의 사랑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마음만 앞서 한없이 서툴기만 했던 큰 딸의 어리석은 선택과 회한마저 평안한 침묵으로 지지해 준 엄마에게 형언할 수 없는 상처를 나눈 못난 딸이라 미안합니다.

‘좋은 엄마’가 되기 이전에 ‘좋은 아내’가 되어야 한다는 걸 간과한 제 서툰 시간들을 묵묵히 도닥여 준 엄마의 사랑에 경애를 표합니다.


*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김은영’ 이야기는 어떨까 생각하며 적어 본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