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과 늙음의 모호한 경계에 대하여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영화 ‘은교’의 주인공인 이적요의 대사이다.
영화가 끝나고도 이 대사가 내내 마음에 남아서 여러 번 영화관을 찾았다. 누군가는 노인과 고등학생의 사랑 이야기라 퇴폐적이고 성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혹평했지만 젊음과 늙음의 모호한 경계에서 줄다리기하는 주인공들 하나하나가 가여워 오래도록 먹먹했다.
수업 시간, 품사 단원 도입부에 동사와 형용사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가장 먼저 예시로 드는 두 단어는 ‘젊다’와 ‘늙다’이다.
젊음은 순간, 늙어감은 진행이니
‘젊다’는 형용사, ‘늙다’는 동사이다.
젊음과 늙음의 속성을 반영하여 품사의 성격을 규정한 걸 보면 문법에도 철학이 있고 삶이 있는 게 아니냐 말하면, 아이들은 뭔가 슬프다며 탄식한다. 이런 아이들의 반응에 ‘은교’의 대사를 읊어주고 ‘청춘’을 이야기하며 잠시 잠깐 혹은 수업 내내 삼천포로 빠지곤 한다.
청춘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이라는 뜻으로,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 또는 그런 시절을 이르는 말.
학교는 늘 젊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면 어리다.
교실은 늘 열일곱에서 열아홉의 나이 정도에 멈춰 있다. 젊다 못해 어린아이들의 싱그러움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해지는 나를 보며, 그 나이만으로도 예쁜 거라 말한 어른들의 옛 말이 떠올랐다. 스스로 만족할 줄 몰랐던 그 시절의 난 어른들이 으레 하는 시쳇말이라 여기고 예쁘단 그 말을 받아들일 줄 몰랐다. 예쁘지 않은 나에게 젊음이 곧 아름다움이다 강요하는 것 같아 오기가 났던 것도 같다. 오기를 부리던 그때의 두 배도 훌쩍 넘은 나이가 된 후에야 그 말의 진짜 의미를 떠올린 걸 보면 나도 늙어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한참 청춘인 아이들의 생기를 바라보며 예쁘다는 말을 연발하는 나에게 아이들은 의아해하며 묻는다.
“쌤은 몇 살이에요?”
아이들이 궁금해하는 거라면 뭐든 공유하자는 마음으로 임하지만, 앞자리가 ‘4’로 바뀐 올해는 어째 망설여진다. 그래서 몇 살로 보이냐는 식상한 스무고개를 시작으로 아이들과의 대화를 이어나간다. 기분 좋을 만큼의 나이들이 오답으로 쏟아진 후에야 씩 웃으며 정답을 미궁으로 밀어 넣었다.
“쌤 왜 나이 말 안 해줘요? 젊어 보이는데?”
“나 젊지. 너희들처럼 어리지 않을 뿐이야.”
너희들의 청춘은 한때라 더 싱그럽고, 어설프고 무모해서 아름다우니 실패나 좌절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봄 한철 곱게 피고 지는 꽃처럼 청춘도 젊음도 한 번뿐, 그 시절의 너희들을 마음껏 사랑하라 말하면 아이들은 의아하다는 듯 혹은 무슨 의민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마저도 사랑스러운 그들의 청춘 덕에 나도 조금씩 회춘한다.
너희들의 봄이 그리고 나의 가을이 공존하는
여름 교정은 푸른빛으로 생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