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간단한 몇 가지 덕목
“서현아, 신발 똑바로 신어야지.”
스페인 여행 중, 자꾸만 신발을 구겨 신는 조카를 나무랐다. 목이 올라오는 꼭 맞는 부츠를 야무지게 고쳐 신고 멋쩍게 웃는 조카의 신발 앞코를 콕콕 눌러보았다. 여유가 없는 신발에 발을 욱여넣으며 불평 한 마디 없는 모습이 예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서 편한 운동화 한 켤레를 사주고 싶어 신발 매장에 들어갔다. 키즈 신발의 가장 마지막 사이즈인 220도 한 철이 지나면 못 신을 만큼 제법 커버린 서현이의 발에 편한 신발 하나를 사주고 나오면서, 조금 있으면 이모 신발 가져다 신어도 되겠다고 말했더니 좋다고 웃는다. 평소 내가 가진 옷이며 귀걸이며 신발까지 탐내던 녀석이라 어른인 내 것들이 맞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좋기만 한가보다.
“서현아, 어른이 빨리 되고 싶어?”
“아니. 어른은 천천히 됐으면 좋겠어.”
스무 살이 된 이후로 매 해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20년째 갱신 중인 나에게도 ‘어른’이라는 타이틀은 여전히 생경하므로 딱히 이유를 묻지 않았다.
스무 살을 목전에 둔 열아홉, 해가 바뀌고 대학생이 되면 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로부터 자연스레 해방되리라 마냥 들뜬 모습으로 1999년을 보냈다. 어른이 되려면 쓴 커피를 즐길 줄 알아야 하고 이별을 해도 아프지 않은 척할 줄 알아야 한다는 어떤 이의 말을 꽤 그럴싸하다 느낀 그런 때였다. 지금은 입에도 대지 않는 커피 향 설탕물인 캔커피가 전부였음에도 커피는 어른을 흉내내기 위한 멋스러운 소품이자 금기시된 음료를 몰래 마신다는 우쭐함이었다. 이별 또한 마찬가지다. 고1 때 찾아온 짧디 짧은 첫사랑에 이별의 아픔은 3년이나 그 찌릿함이 계속됐고 치유하는 방법도 몰랐다. 찰나의 풋사랑인 그 감정이 남녀가 하는 사랑의 전부인 줄 알았다. 어른이 되면 무뎌질까 아파하며 불면증으로 몇 날 며칠을 지새우기도 했다. 무지해서 유치하고 순수하던 그런 때가 나에게도 있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적잖은 나이를 먹고 스스로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어른이 되었다. 커피의 쓴 맛을 즐길 줄 알게 되었고, 이별의 아픔 또한 부지런히 겪었으며 아프지 않은 척 혼자 흐느끼는 법도 알게 되었다. 때론 마음과 다르게 행동할 줄 아는 게 미덕임을 깨닫게 되었고, 인간관계에 구획을 정해 달리 대할 줄도 알게 되었으며, 비겁하게 한 걸음 물러나 침묵하기도 한다. 해도 되는 것들은 점점 사라지고 하지 말아야 할 것들과 해야만 하는 것들에 치여 점잖은 척, 그렇게 난 어른이 되었다.
그러나 그런 게 어른의 전부라면 어린이로 살아가는 시간보다 몇 곱절이나 될 어른의 시간을 행복하게 보낼 자신이 내겐 없다. 어린 시절, 혼자 가는 것보다 같이 가는 게 정답이고 사이좋게 나눌 줄 아는 배려와 양보를 실천해야 한다고 분명 배웠음에도 이타적인 사람은 손해를 보고 적당히 이기적인 사람이 성공하는 게 현실이라는 걸 깨닫자마자 생각과 행동을 달리 하며 스스로 합리화하는 건 어쩐지 서글프지 않나.
최소한 진심보다 처세가 먼저인 쭉정이로 늙고 싶지 않다. 그래서 처음이라 낯설고 힘겹고 두려운 십 대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 영원할 줄 알았던 것들을 늘 반추하려 애쓴다. 좋은 어른이 되는 건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버거운 일이다.
“이모 티셔츠가 나한테 드레스 같았는데 이제 원피스처럼 입어도 될 것 같지 않아?”
여행 중 감기 기운에 골골대면서도 내 손을 꼭 붙잡고 떨어지지 않으려 의지하는 서현이에게 믿음직스러운 이모라 다행이다 여기는 순간, 내 신발을 신고 내 티셔츠를 제 옷인양 입고 신이 난 서현이가 씩 웃었다. 내 옷이 서현이에게 아직은 낙낙해서 마음이 놓인다.
그리움이 뭔지 구수함이 뭔지 뜨끈한 시원함이 뭔지 알아가는 나이, 경제적 안정감, 자신감, 노련함, 깊은 생각, 넓은 사고, 절제, 온전히 만끽할 수 있는 자유까지... 어른이 가질 수 있는 긍정적인 면들도 많다.
더 나은 어른이 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