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 의미 없음

무의미의 유의미화

by Carpe diem

[1] 의미 있는 삶에 대한 고찰

난 늘 ‘의미’를 찾고자 노력하며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내 글엔 ‘의미’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곤 했다. 이전과는 달리 살아보려 노력하는 요즘, 내가 꿈꿔온 의미들은 무엇이었나 되짚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이 내 삶에 큰 의미를 준 건 아니었다. 다만, 내 삶을 지탱해 준 울타리가 망가진 게 난 참 싫다.’

‘내게 여행은 잘 포장된 도피 혹은 폼나는 일탈. 늘 그 정도 의미에 불과하다.’

‘다툼이 잦아지면서 뭐가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는 것조차 무의미한 일이 되어버렸다.’

‘상대의 대수롭지 않은 행동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상대가 변할 것이라 기정 사실화한다.’

‘서로 공감하고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으면 삶은 무너지고 의미 없는 소모전으로 상처만 낼 게 분명하다.’

사람에게서 의미를 찾고, 여행에서도 의미를 찾고, 다툼에서도 의미를 찾았다. 여동생의 선빵(결혼)에 한 대 거하게 맞은 뒤 서른을 앞둔 당시의 내게 가장 큰 의미가 되어버린 결혼을 앞에 두고 오래 만난 남자 친구와 쉼 없이 다퉜다. 결혼이 아니면 우리의 만남도 더 이상 의미 없다는 걸 기정 사실화한 내게 이별은 당연한 수순. 그렇게 헤어지고 견고하다 여긴 의미인 결혼을 바로 할 줄 알았던 난 여전히 혼자인 채 어느새 삼십 대의 끝자락을 정리하는 중이다.

[2] 자식을 낳아야지.

“조카들한테 아무리 마음 써봐야 아무 의미 없어.”
유난한 조카 바보인 내가 꽤 많은 사람들에게 자주 듣는 우려의 한 마디다. 이별 후유증으로 심하게 앓던 어느 날, 동생의 임신 소식을 들었다. 두 번째 맞으니 처음보단 맷집이 생긴 건지 생각보다 덤덤했다(어쩌면 결혼 그다음의 관문인 육아마저 동생이 선점해줘서 고마웠던 것도 같다). 가까이에 사는 동생이 출산하는 날, 바쁜 제부를 대신해 동생 곁을 지키며 곧 만나게 될 내 조카에게 최선의 사랑을 주리라 다짐했다. 내 조카의 이름도 내가 지어주고 너무 예뻐 매일 보려 동생집으로 퇴근을 했다. 첫걸음마를 뗀 순간, 처음 이모를 부른 순간 등등 그 아이의 수많은 처음을 함께 하며 난 서서히 나아졌다. 행복해하는 나를 보며 많은 사람들은 네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다. 결국 저희 부모가 우선일 거라 혀를 차는 이들을 마주하며 내가 느끼는 행복이 어떤 보상을 바라는 게 아니라 답해도 소용없었다. 찬란한 순간의 행복이 찰나로 반짝이다 끝이 날 걸 걱정해야 하는 건가? 내 아이를 낳는 건 의미 있는 일인 게 분명 하나, 조카를 사랑하는 마음까지 멀리하며 오지도 않은 일들을 준비하고 싶진 않다.


“이모, 난 이모랑 꼭 스페인 갈 거야.”


허니문 베이비인 조카가 일곱 살 되던 날, 자신이 스페인에서 생겼다는 걸 이야기해 주었더니 대뜸 나를 보며 꺼낸 말에 얼떨떨해서 새끼손가락을 걸어 약속했다.


“서현아, 스페인 가자.”


그 후 3년이 지나 열 살이 된 조카와 작년 겨울 스페인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을 떠나기 전, 스페인 여행책을 열심히 읽는 조카를 지그시 바라보다 눈이 마주쳤다. 세상 사랑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 와락 안기며 행복하다고 말하는 조카는 십 년 전에도 지금도 여전히 사랑스럽다.




쉽게 꺼내기 어려운 시련들을 부단히 겪었다.
안 겪었으면 더 좋았을 시련들이지만 자책하거나 쉽게 무너지고 싶지 않은 걸 보면 난 성장한 게 분명하다. 보편적 잣대의 유의미들 앞에 ‘아니오’를 외칠 수 있게 되었다. 의미는 지극히 주관적이다. 다수가 가치 있다 여기는 의미들이 내게 무의미하다면 나름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현재에 충실한 요즘, 내 삶의 의미는 소소하나 소중하다. 의미 없고 사소한, 별 거 아닌 일들이 모여 삶이 되고 의미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