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단순한 걸 마흔이 되고 깨달았다
헐레벌떡 내지르다 가쁜 몸 닳는 줄 모르고
헐값에 담보 잡힌 청춘 찰나인 줄 모르다
헐쑥한 얼굴 거울에 비추고 나서야
헐한 적 없던 스스로가 가여워
헐거워진 마음을 다독였다
헐벗고 주리게 한 것은 결국
헐떡증을 자처한 자신이었음을
헐복한 팔자 숙명처럼 품은 후에야
헐직해진 추억도 힘을 잃었음을 알았다
헐후히 여겼던 시간 쉼이 필요함을 알았다
3년 혹은 5년에 한 번 정도
내 삶은 크게 흔들렸다.
고등학교 3학년, 원하던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으나 재수는 죽어도 하고 싶지 않아 성적에 맞는 대학을 선택했고, 교대에 진학해 초등학교 교사가 되길 원하시던 부모님께 상실감을 안겨드렸다. 물론 스스로도 만족할 리 없었다.
00학번을 놓치고 싶지 않다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사실은 한 살 터울의 여동생의 입시 결과와 비교당하는 것이 두려웠다.
교생 실습을 다녀오고 논문까지 수월하게 통과하고 대학원을 졸업했으니, 마지막 관문인 교원임용시험도 순탄할 줄 알았다. 학비 마련을 위해 학원 강사를 병행하며 대학원을 다녔고, 가을 졸업이라 반년 정도 준비하고 본 첫 시험인 만큼 첫 술에 배부르길 바란 건 욕심이라 실패해도 괜찮았다.
그러나, 스물여덟 두 번째 낙방은 괜찮지 않았다. 작아지는 자존감에 스스로 상처를 내며 오래 만나던 남자 친구와 삐걱거렸다. (지금 생각하면 이른 나이지만) 결혼하는 친구들이 하나둘 늘어갈수록 내 마음은 조급해졌다. 사회 초년생이던 당시 남자 친구가 나와의 결혼을 크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에 내 자격지심은 극에 달했고 스물아홉 기간제 교사를 시작했다.
내가 원하는 이십 대 후반의 나는 교단에 선 모습이지 독서실 벽만 쳐다보며 불투명한 미래를 기약하는 고시생이 아니었다. 그렇게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임용시험도 병행했다. 꿈꾸던 교단에 처음 선 해였으니 아이들에게 모든 면에서 잘하고 싶어 아이들이 원하는 건 뭐든지 했다. 원하는 아이들을 위해 방과후 수업도 최대로 개설해서 해내고, 기숙사 사감까지 도맡아 하며 보냈으니 내 공부에 최선을 다할 수 없었다는 핑계와 함께 결국 세 번째도 결과는 참담했다. 그리고, 십 년의 연애도 종지부를 찍었다.
서른셋 서른여섯, 그리고 서른아홉. 삼십 대에 겪어온 시련은 아직 이십 대의 시련들만큼 글로 정리하기 어려운 일들이라 나열할 수 없으나, 자꾸만 제동이 걸리는 내 삶이 이제 좀 힘에 부쳐 막막해질 무렵 나를 돌아봐야 했다.
오랜 생각 끝에 그 유책 사유는 결국,
자신에게 쉽게 ‘쉼’을 허락해 본 적이 없는
나에게 있음을 깨달았다.
자꾸만 갈증을 느끼고 뭔가를 해야만 직성이 풀리고, 실패하면 자신을 채근하여 다시 시작하거나 또 다른 일을 찾아 나서는 나의 조급증이 자처한 결과들이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고 주변을 둘러볼 줄 아는 여유를 갖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닌데. 그 단순한 걸 마흔이 되고서 깨달았다.
아홉 번 넘어져도 열 번 다시 일어나는 오뚝이가 되고 싶지 않다. 넘어졌으면 아픈 게 당연하고 아프면 쉬어야 한다. 그렇게 나에게 유연해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