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이기적이고 나쁜 사람이 되었다

by Carpe diem

끝 / 김지영

손 쓸 수 없이 곪아버린 관계는
절실함이 부재하기 마련이다
파지 위 의미 잃은 글자들처럼
투욱 던져진 채 흩어지기 마련이다

손짓만으로도 충분했던 우리는
절박한 관계의 끝자락에 서서
파리해진 서로를 외면한 채
투박한 이별을 받아들일 뿐이었다

허나,

손수건 하나 적실 줄 모른 이별 앞에
절절했던 시간들마저 까맣게 잊었으나
파뜩하니 떠오른 추억 하나로
투기 잃은 마음도 요동을 쳤다

손가락 마디마디 새어 나온 네 햇살이
절름발이 지난 삶의 유일한 빛이었음을
파도가 휩쓸고 간 축축한 모래 위로
투영한 네 이름 지우며 막을 내렸다



손절(損切)
앞으로 주가(株價)가 더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여, 가지고 있는 주식을 매입 가격 이하로 손해를 감수하고 파는 일.

‘관계를 끊다’, ‘손을 끊다’, ‘교류를 멈추다’의 의미로도 사용됨.

파투(破鬪)
1. 화투 놀이에서, 잘못되어 판이 무효가 됨. 또는 그렇게 되게 함. 장수가 부족하거나 순서가 뒤바뀔 경우에 일어난다.
2. 일이 잘못되어 흐지부지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내 사람과 아닌 사람을 구분하는 일은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레 시간이 흐르면서 해결될 일이다. 그렇게 관계를 정리하는 일은 소소하게나마 매년 반복된다. 순간일지라도 어떤 관계든 내 안에 들어오면 마음을 다하는 만큼 정리하는 건 늘 아쉽고 낯선 일이었으나, 억지로 붙잡는다고 이어질 인연이 아니란 걸 깨달았으니, 느슨하게 놓아주는 게 나에게 이롭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과 진하게 이별한 적이 언제였는지 떠올려보니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억지로 떠올리려 해도 쉽지 않다. 예전엔 애쓰지 않아도 길가다가도 툭 불거져 나와 울고, 우는 내가 서러워 또 울었는데 그렇게 울어본 게 언젠지 모르겠다. 그래서 다행스럽다. 끊어내지 못해 절절매며 쉽게 요동치던 마음과 손절하고, 관계의 종식을 선언하는 주체가 내가 되었으니 나는 적당히 이기적이고 나쁜 사람이 되었다.



‘손절’과 ‘파투’의 주체도 결국,
내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