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arpe diem Jan 01. 2021

00. 프롤로그

나는 네가 조심스럽다

 2020년 9월의 어느 날, 생리 날짜가 지났는데도 영 소식이 없다. 칼같이 돌아오는 28일 주기가 틀어진 적은 거의 없는데 어딘가 느낌이 싸하다.

 ‘설마….’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결혼을 이야기하던 그에 비해 난 생각이 많았다. 그와의 연애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지만, 혼자인 채 연애하는 삶이 좋았고 결혼은 여전히 어려웠다. 그런 그에게 장난처럼, ‘혹시 아이가 생기면 모를까 나에게 결혼은 아직’이라고 말한 게 불과 얼마 전이었는데. 내 나이에 자연 임신이 쉬운 일도 아닌데 그럴 리가.

 워낙 아이를 좋아해서 결혼은 차치하고라도  아이 하나는  낳고 싶다던 막연한 나의 바람이 마흔이 되면서 결혼을  인생에서 완전히 밀어버린 가장  요인이 되어버렸다. 난 건강하게 임신해서 출산할 자신이 없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과의 삶일지라도 딩크족으로 살아갈 자신은 더더욱 없었다. 그래서 그와의 연애는 너무 행복하지만 결혼하고 싶다는 그의 말에는 늘 난감했다. 그 난감함을 피하려 ‘혹시 아이가 생기면 모를까’라고 답했는데, 예정일이 3일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는 게 영 걸려서 남편(당시에는 남자친구) 몰래 임신테스트기를 샀다. 그러나, 두려우면서도 설레는 묘한 감정에 섣불리 테스트를 해보지 못한 채 이틀이 흘렀고, 예정일이 5일 지난날 퇴근을 하고 홀린 듯 임신테스트기를 꺼내 들었다.


망설임 없이 선명한 두 줄. 임신이었다.

 

 이게 말이 되나. 막상 두 줄을 마주하고 나니 기가 막혀서 헛웃음만 나왔다. 그와 동시에 그를 만난 지 겨우 백일 남짓, 나보다 여섯 살이나 어린 남자와의 연애를 달가워하지 않는 부모님에게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막막해졌다. 내 명의의 집을 처음으로 갖게 되고, 제대로 된 독립을 이룸과 동시에 새로운 가족을 맞아야 할 상황이 되었다는 게 당황스러우면서 묘한 안도감이 들던 찰나, 그가 퇴근을 하고 우리 집으로 왔다.

 “너 참 대단하다. 마흔인 내가 임신이라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멀뚱멀뚱 바라만 보다가 나를 와락 끌어안는 그의 두 팔에 힘이 가득 실렸다. 이제 결혼할 수 있게 되었다는 그의 설렘 앞에 난 늘 그러했듯 현실에 대한 고민과 걱정을 앞세웠다. 아직은 조심스러우니 일단 병원을 다녀와서 임신 초기가 잘 지나고 나면 그때 결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고, 다행히 그는 서운한 기색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임신은 무엇보다 여자 의사가 중요한 거니까.
결정하는 대로 따를게.


 이런 그가 내 남편, 내 아이의 아빠라면 뭐가 됐든 두렵지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이 쌓였다. 처음 병원을 다녀오는 날, 작지만 다이아몬드처럼 곱게 빛나는 생명 앞에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지키고 싶다는 욕심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에 마음을 졸일 게 뻔하지만, 이렇게 기적처럼 찾아온 생명이니 잘 버텨주리라 믿으며 기꺼이 걱정 많은 겁쟁이가 되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임신 중기로 접어들었고, 빛 바랜 걱정과는 다르게 반짝반짝 빛나는 내 딸을 위해 브런치에 글을 연재해 보기로 했다.


2020년 9월 23일 5주 1일 첫 병원 방문한 날


너에게 쓰는 첫 번째 편지
 5주째 접어드는 날, 네 존재를 처음 마주하고 엄마는 마냥 기뻐할 수 없었어. 내 몸 하나 온전히 챙기기도 어려워 혼자가 되자 마음먹은 그 순간 네가 찾아온 거야. 20주를 이틀 앞둔 오늘에서야 네 존재 앞에 ‘엄마’라는 말을 자연스레 되뇔 수 있게 된 못난 엄마지만 그만큼 네가 조심스럽고 소중하기 때문이란 걸 이해해주렴. 너를 마주하게 될 5월을 기다리며, 엄마는 오늘도 하루하루 네가 조심스럽단다. 배가 욱신거리는 날이 계속되고, 나의 두려움이 내 낮과 밤을 모두 삼켜도 좋으니 꿈에서 만난 네 모습 그대로 총총 엄마 곁으로 오려무나. 사랑하는 내 딸아! 넌 내게 영원한 ‘축복’이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