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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pe diem Jan 04. 2021

01. 부모라는 이름으로

“정인아, 미안해. 우리가 바꿀게.”


 온종일 ‘정인아 미안해’라는 문장이 포털사이트와 SNS를 도배하고 있다. 지난 10월, 양부모의 학대로 무참히 살해당한(이건 명백한 살인이다) 정인이의 이야기가 지난밤 ‘그것이 알고 싶다’에 소개되면서 관심과 애도가 이어지는 중이다.


2021년 1월 4일 현재 네이버 검색 순위


 한동안 ‘그것이 알고 싶다’를 멀리하며 지냈다.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며 우울감과 스트레스가 쉽게 흡수되는 게 싫어서 굳이 찾아보고 싶지 않았다는 게 이유 혹은 핑계일 것이다. 그러나 이번 회차는 마냥 외면할 수 없어 시청을 망설였다. 20주에 접어든 축복이의 태동다운 태동을 처음으로 느낀 순간, 나의 감정이 태아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말이 떠올라 토요일 본 방송은 외면한 채 일찌감치 잠이 들었다. 지난 10월, 임신 8주에 접어든 상황에서 정인이의 사망 소식에 먹먹해졌던 순간이 떠올랐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축복이의 존재 앞에 늘 조심스러운 내가 우선이었으니까. 그러나 결국, 신랑이 출근하고 난 후 적막한 거실 소파에 누워 배를 쓰다듬으며 축복이에게 태담을 하다가 나직이 읊조리고야 말았다.



축복아, 엄마가 외면하면 안 되는 거겠지?


 세월호 사건 직후, 한 달 이상이나 우울감을 떨쳐내지 못했던 내가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느끼는 책임감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를 온몸으로 체감한 후 이래서는 안 될 일이었다. 한 아이의 엄마이기 이전에 12년간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교사의 입장에서, 가정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이 얼마나 무기력하게 그 폭력을 감내하는지 잘 아는 어른으로서 간과해서는 안 될 문제였다. 진정서를 써야 했고, 제대로 알아야 했다. 그렇게 유료 결제를 하고 마음을 가다듬은 후 사건을 마주했다. 예상했던 대로, 처참했고 마음이 무너졌다. 명치끝이 쑤시기 시작했다. 내 분노와 좌절이 축복이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 모양이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아야 할 아이였다


 세 차례나 이루어진 아동 학대 신고에도 어른들은 쉽게 방관했고, 멋대로 조작이 가능한 어른의 말을 믿었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무참히 학대한 가해자(부모라고 하고 싶지도 않다)들은 몽고반점과 아토피를 핑계로 아이에게 가한 폭력의 흔적을 가리는 데 급급했다. ‘형식적으로’ 병원에 데려가고 아동보호기관에 ‘의도적으로’ 병원 방문 사실을 알리면서 본인들의 ‘범행’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 입양 전 건강한 모습으로 해맑게 웃던 아이는 새까맣게 말라 갔고, 무참히 학대당한 몸과 마음은 회복이 불가할 만큼 망가져 버렸다. 아이가 죽기 하루 전, 어린이집 CCTV에 찍힌 정인이는 선생님의 품에 안긴 채 어떤 표정도 없었다. 이미 수차례 고통당해 아픔을 호소하는 것조차 할 수 없어진 정인이의 무표정한 얼굴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어른도 감당하기 힘든 그 고통을 감내하고 무력해져 버린 아이의 마음이 얼마나 참담했을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한창 뛰어야 할 아이가 걷는 것조차 포기해 버린 하루 끝에서, 아빠라 굳게 믿는 자의 품을 향해 떼는 세 발자국의 걸음이 얼마나 힘겹고 처절한 것이었는지를 가해자는 알기나 할까.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린 아이 앞에 어른들이 할 수 있는 건 아이의 행적을 CCTV를 통해 확인하고, 아이의 사인을 밝히는 것뿐이었다. 아이의 부검 결과, 배에 가득 고인 피와 짓밟힌 갈비뼈로 그들이 저지른 범죄는 ‘아동 학대 치사’가 아닌 ‘살인’ 임이 명백하다. 본인의 감정 조절도 할 줄 모르면서 그 감정을 고스란히 아이에게 화풀이하듯 풀어낸 가해자의 살인 행위는 인간이라 할 수 없을 만큼 잔인했다.


‘부모’라는 이름에는 무거운 책임감과 사명감이 내재되어 있다. 쉽게 얻어 갈 감투 혹은 자격이 아니다.


 공판이 이루어지는 1월 13일은 2차 정밀 초음파 검사를 받으러 가는 날이다. 강인하게 잘 자라고 있으리라 믿으며 한 달 남짓의 지루한 시간을 기다려 축복이를 만나러 가는 날, 판결이 이루어질 것이다. 정인이의 죽음 앞에 마음 아파하고 눈물 흘린 이들의 진정서가 적법한 판결을 이끄는 길잡이가 되길 바라며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동참해 주었으면 좋겠다.


 존경하는 판사님, 인권은 어떤 경우에도 유린될  없습니다. 특히 어린아이의 생명과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지켜나가는 것은 어른인 우리가 해야  몫입니다.  땅의 미래인 아이들이 정의가 무엇인지,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소중히 지켜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성장할  있기를 희망합니다. 법을 지켜야 올바른 사회가 실현되고 법의 테두리 아래 우리가 보호받고 있음을 신뢰할  있도록 ‘아동 학대 치사 아닌 ‘살인죄라는 적법한 판결로 죗값에 맞는 처벌이 이루어질  있도록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아이의 어이없는 죽음이,  아이의 무참한 희생이 헛되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간곡한 저희의 청원에  기울여 주시리라 믿으며 마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제출하기 위해 작성한 진정서의 일부


정인아, 미안해. 우리가 바꿀게!


사랑하는 내 딸아! 엄마는 오늘 억울하게 죽은 정인이 언니 이야기로 많이 울었단다. 우리 축복이도 느꼈는지 엄마가 울 때마다 콕콕 엄마의 배를 찌르더구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조심스러운 우리 축복이가 태어날 세상은 좀 더 정의롭기를 바라며 쓴 엄마의 편지가 판사님에게 잘 전달되겠지? 하늘에서는 정인이 언니가 행복하길 바라며 기다려보자꾸나. 우리 축복이 앞에 부끄럽지 않은 엄마,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할게.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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