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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pe diem Jan 09. 2021

02. 우울도 네 탓이 아니야

난 늘 괜찮을 줄 알았다

 

 최근 며칠, 자꾸만 가라앉는 기분이 심상치 않다.


 어떤 시련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을 만큼 내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라고 자부하며 살아왔는데 지나친 자만이었나. 집에만 있어서, 내 몸을 마음대로 쓸 수 없어서 잠시 무기력해진 것뿐이라고 스스로 다독이며 요가도 하고, 오래도록 미루었던 주방 정리를 했는데도 좀체 나아지질 않는다. 어쩌면 나아지려고 억지로 무언가를 하는 것도 강박일 수 있으니, 본능에 충실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생각과 감정에 눌려 버거워지면 잠을 청하는 버릇대로 기절하듯 잠이 들었으나 머리만 더 무거워질 뿐 쉽게 우울감이 가시질 않는다.


아무래도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

아이는 내 걱정이 멋쩍을 만큼 늘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

 

 난 지금 우울할 이유가 전혀 없다.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고, 그 사람은 늘 나만 바라보며 외로울 틈 없이 과할 정도로 애정을 표현해 준다. 아이를 좋아하는 내게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가 생겼고, 마냥 불안하기만 하던 임신 초기도 잘 지나 이제 중반을 훌쩍 넘어가고 있다. 남들은 그렇게 입덧 때문에 고생이라는데, 난 그 흔한 입덧 한번 없이 무탈하게 지나왔다. 적당히 배가 불러오고 있고, 딸을 품은 배라 그런지 옆으로 특별히 퍼지지도 않았다. 남들은 임신 기간 동안 일에 살림에 스트레스까지 걱정한다지만, 난 방학을 했고 원하는 만큼 잘 쉬고 있다. 살림도 요리를 제외하곤 대부분 신랑의 몫이고,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은 그마저도 하지 않도록 나를 배려한다.


이런 내가 우울하다니. 말도 안 된다.

 결혼 전 다이어트에 재미를 붙이면서 시작한 필라테스가 한참 재밌어질 무렵 중단해야 했고, 몸도 물론 임신하기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갑자기 살이 찌는 게 얼마나 큰 우울감과 상실감으로 이어지는지 잘 알기 때문에, 하루가 다르게 아주 미약하게나마 늘어가는 체중이 내 우울함의 약간의 원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지금 홑몸도 아니고 체중이 느는 건 당연한 변화이니 특별히 우울해할 일도 아닐 거라 다독이며 받아들이기로 했으니 이것도 원인이라 할 수 없다.

 무엇보다 같이 사는 사람에게 내 우울감이 전이되는 게 난 참 싫다. 그렇게 종일 고군분투한 끝에 신랑이 퇴근할 무렵에라도 웃어보자 마음을 먹었으나 결국 실패다. 집에 와서 간단히 저녁을 챙겨 먹고 운동을 시작한 신랑의 몸은 분주하나, 시선은 나에게로 고정되어 있다. 멍하니 TV를 응시하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특유의 다정한 어투로 어렵게 말을 꺼냈다.

 “우리 여보가 오늘도 웃질 않네. 어떻게 하면 좀 좋아질까? 나가서 바람이라도 쐬고 올까?”

 영하 18도, 체감온도 영하 22도의 날씨에 나가는 건 당최 무리다. 괜찮다고 힘없이 웃고 다시 TV를 멍하니 바라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흐른다. 누구보다 당황한 건 나 자신이었다. 이렇게 무방비 상태로 왈칵 쏟아질 줄은 몰랐다. 온종일 되돌아보고 다독이느라 지친 걸까. 얼른 눈물을 훔쳤지만 신랑에게 들키고 말았다.


나, 우울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 왜 이러지?
축복이 낳고 혼자 애 봐야 하는 시간에 이러다 우울해 미치는 거 아니겠지?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걱정하는 게 세상에서 가장 미련한 짓이란 걸 그 누구보다 잘 아는 내가 내뱉은 말이 고작 이 정도 수준이라니. 스스로에게 실망스러웠다. 결국 그 말을 주워 담으려 여기저기 갈라지고 부르튼 손가락 때문에 설거지도 세수도 쉽지 않아 그런 것 같다고 얼버무렸다.


상한 마음을 성치 못한 손가락 탓으로 돌린 손에 밴드가 덕지덕지 붙었다


“왜 육아가 여보 혼자야. 난 다른 남자들보다 출근도 늦고 여보가 혼자 힘들지 않도록 육아는 당연히 같이해야 하는 거고 같이 할 거야. 그리고 축복이 낳고 여보 필라테스도 다시 시작해. 하고 싶은 거 다 해, 여보.”

 신랑의 말은 다정했고, 내 손가락 여기저기에 연고를 바르는 손길은 따뜻했다. 집에 밴드가 똑 떨어졌다는 말에 바로 옷을 챙겨 입고 편의점으로 달려가 밴드를 사 들고 들어와 손가락을 마저 여기저기 어루만지고 감싸주는 신랑 덕에 조금은 나아진 채 잠이 들었다.

 오늘 아침, 눈을 뜨자마자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는 내 뒤통수에 신랑이 어젯밤 꿈이 사나웠다며 얼른 돌아오라고 괜스레 보챈다. 무슨 꿈이냐 물었더니 자꾸만 내가 자기 손을 놓고 어딘가로 가는 꿈이라 했다. 나의 우울함은 신랑 덕에 좀 나아졌는데 결국 신랑을 불안하게 만들었나 보다. 이래서 우울해지고 싶지 않았는데.


호르몬이 변하고 어쩔  있는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

참 고마운 사람


 내 우울을 자책하는 나에게 오늘도 모든 건 네 탓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신랑이 있어 마음이 놓인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잠을 청하고 식사를 미루는 와중에도 축복이의 심장은 건강히 뛰고 있었고 변함없이 지지해주는 신랑의 마음은 건재하다. 건강하게 점심을 챙겨 먹고, 축복이에게 태교 동화를 읽어준 후 잊지 말아야 할 고마움을 담아 일기를 썼다.
 

올해 1월 1일부터 쓰기 시작한 게으른 태교 일기


내 우울감도 내 탓이 아니다. 그러니 자책할 것도, 억지로 채근할 것도 없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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