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인데 처음이라 어설픔마저 낯설다
임신테스트기로 처음 아이의 존재를 알게 된 날, 신랑과 고심하여 태명을 지었다. 태명은 된소리와 거센소리가 들어가야 태아에게 잘 전달된다는 말에 어떤 게 좋을까 고민하다 우리에게 더 없는 축복이니 아이의 태명도 축복[축뽁]이라 짓는 게 좋겠다고 결정하고 나직하게 “축복아.” 불러주었다. 아직 아기집만 있어 듣지 못하지만, 나도 신랑도 익숙해져야 하니까 하루 한 번은 꼭 불러주자 다짐했다.
확인하는 대로 병원으로 달려가 아이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어느 정도 임신 극 초기에서 벗어난 다음 병원에 가는 게 맞겠단 생각으로 이틀을 버텼다. 그러나, 그 이틀 동안 체온계와 검색창의 노예가 되어버린 내게 3주의 시간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결국, 퇴근을 하고 생리통처럼 싸르르한 불길한 느낌을 핑계로 병원을 찾았다.
임신 5주 1일 아기집과 난황 확인
출산율이 사상 최저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산부인과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예약 없이 병원을 방문해 한 시간 가까이 대기한 끝에 진료실에 들어갔다. 일명 굴욕 의자 거치대에 두 종아리를 걸치고 앉아 이물감 가득한 초음파 기계가 밑으로 쑥 들어오는 그 유쾌하지 않은 느낌은 언제 겪어도 적응이 잘 되지 않는다.
“임신이 맞네요. 동그랗게 보이는 게 난황이에요. 아기집도 자리 잘 잡았어요.”
임신인 건 임신테스트기로 확인한 후였으나, 초음파로 아기집 안에 다이아몬드 반지처럼 반짝이기 시작한 존재를 마주하고 나니 만감이 교차했다. 온갖 이벤트로 가득한 게 임신이라는데, 노산인 내게 예상치 못할 이벤트들이 얼마나 즐비할지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오랜만에 소중하게 지키고 싶은 게 생겼고, 그 시작이 나쁘지 않다. 그 순간, 내 걱정을 읽기라도 한 건지 의사 선생님이 내게 묻는다.
“마흔인데, 초산이세요?”
역시. 내 나이는 초산이라기에 지나치게 많은 건 사실이다. 만 35세 이상, 노산이라는 이유만으로 ‘고위험군’이라는 무시무시한 타이틀을 달고 시작해야 하는 게 숙명이라 죄를 지은 게 아닌데도 괜히 머쓱해져 고개만 끄덕였다. 임신유지 능력이 저하되거나, 몸에 이상이 생길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는 충분히 인지한 상황이었으나, 멋지게 혼자 살 생각이었던 나의 당당함은 온데간데없고, 임신 앞에 잔뜩 주눅 든 꼴이라니 괜히 민망해졌다.
“요새 늦는 분들 많아요. 우선 난황도 아기집도 예쁘게 자리 잡았으니 염려하지 마시고, 2주 뒤에 봅시다.”
예상과 달리 군더더기 없이 짧고 굵은 몇 마디는 우려가 아닌 응원이었다. 늦은 나이에도 자연 임신이 가능한 걸 보면 건강해지려 노력한 내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반증한 것이기도 하니까 난 주눅 들 이유가 없다. 이제 막 반짝이기 시작한 존재 앞에서 난 더 당당해지기로 마음먹었다.
임신 7주 1일 너의 첫 심장 소리
침대 옆 체온계로 수시로 고온 상태임을 확인하고, 아랫배가 뻐근하고 자주 졸린 것 외에 무탈함에도 내 핸드폰 검색창은 5주차 혹은 6주차 임신 증상과 유산 징후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했다. 혹여 염색체 이상으로 나도 모르게 유산이 진행되고 있는 건 아닐까. 특별히 출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못 견딜 만한 복통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난 쉼없이 염려했고 자꾸만 초조했다. 그렇게 긴 2주를 보내고 처음으로 신랑과 함께 병원에 갔다.
“심장 박동도 안정적이고 주수에 맞게 자라고 있고. 좋아요. 피검사하고 2주 뒤에 봅시다.”
심박수 149bpm, 길이 1.03cm. 난황에 붙어 잘 보이지도 않던 녀석이 고새 많이도 자랐구나. 무탈하게 낳는 사람들이 태반이라지만, 나에겐 산 너머 산인 게 임신과 출산이라 긴장의 끈을 놓을 순 없다. 이 나이에 첫 경험이란 게 낯설고 어려운 데다 마음껏 어설플 수도 없어 난감한 순간이 쌓여만 간다.
<너에게 쓰는 편지>
그때 그때 기록하지 못한 건 게을러서가 아니라, 섣불리 너의 존재를 공개하기에 엄마의 염려와 두려움이 너무 커서였음을 이해해주렴. 임신 중기에 들어서 이젠 유산과는 거리가 먼 안정기가 되었다지만, 혹시 모를 조산을 걱정하며 오늘도 너의 존재가 조심스럽다. 살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위태롭기만 한 마음자리를 위로하듯, 오늘도 아침부터 힘차게 엄마 배에 노크하는 네 위로 두 손을 포개며 무사함에 감사하단다. 오전 내내 하얗게 내리는 눈을 바라보다 아장아장 걸으며 함께 눈사람을 만드는 풍경을 잠시 떠올려 보았어. 아가야!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서 엄마, 아빠랑 눈사람 만들러 가자. 사랑한다 내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