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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pe diem Jan 18. 2021

03. 초산이세요?

마흔인데 처음이라 어설픔마저 낯설다

임신테스트기로 처음 아이의 존재를 알게 된 날, 신랑과 고심하여 태명을 지었다. 태명은 된소리와 거센소리가 들어가야 태아에게 잘 전달된다는 말에 어떤 게 좋을까 고민하다 우리에게 더 없는 축복이니 아이의 태명도 축복[축뽁]이라 짓는 게 좋겠다고 결정하고 나직하게 “축복아.” 불러주었다. 아직 아기집만 있어 듣지 못하지만, 나도 신랑도 익숙해져야 하니까 하루 한 번은 꼭 불러주자 다짐했다.

 확인하는 대로 병원으로 달려가 아이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어느 정도 임신 극 초기에서 벗어난 다음 병원에 가는 게 맞겠단 생각으로 이틀을 버텼다. 그러나, 그 이틀 동안 체온계와 검색창의 노예가 되어버린 내게 3주의 시간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결국, 퇴근을 하고 생리통처럼 싸르르한 불길한 느낌을 핑계로 병원을 찾았다.


임신테스트기는 단 두 개로 끝.


임신 5주 1일 아기집과 난황 확인


 출산율이 사상 최저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산부인과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예약 없이 병원을 방문해 한 시간 가까이 대기한 끝에 진료실에 들어갔다. 일명 굴욕 의자 거치대에 두 종아리를 걸치고 앉아 이물감 가득한 초음파 기계가 밑으로 쑥 들어오는 그 유쾌하지 않은 느낌은 언제 겪어도 적응이 잘 되지 않는다.

“임신이 맞네요. 동그랗게 보이는 게 난황이에요. 아기집도 자리 잘 잡았어요.”

 임신인 건 임신테스트기로 확인한 후였으나, 초음파로 아기집 안에 다이아몬드 반지처럼 반짝이기 시작한 존재를 마주하고 나니 만감이 교차했다. 온갖 이벤트로 가득한 게 임신이라는데, 노산인 내게 예상치 못할 이벤트들이 얼마나 즐비할지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오랜만에 소중하게 지키고 싶은 게 생겼고, 그 시작이 나쁘지 않다. 그 순간, 내 걱정을 읽기라도 한 건지 의사 선생님이 내게 묻는다.

 “마흔인데, 초산이세요?”

 역시. 내 나이는 초산이라기에 지나치게 많은 건 사실이다. 만 35세 이상, 노산이라는 이유만으로 ‘고위험군’이라는 무시무시한 타이틀을 달고 시작해야 하는 게 숙명이라 죄를 지은 게 아닌데도 괜히 머쓱해져 고개만 끄덕였다. 임신유지 능력이 저하되거나, 몸에 이상이 생길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는 충분히 인지한 상황이었으나, 멋지게 혼자 살 생각이었던 나의 당당함은 온데간데없고, 임신 앞에 잔뜩 주눅 든 꼴이라니 괜히 민망해졌다.

 “요새 늦는 분들 많아요. 우선 난황도 아기집도 예쁘게 자리 잡았으니 염려하지 마시고, 2주 뒤에 봅시다.”

 예상과 달리 군더더기 없이 짧고 굵은 몇 마디는 우려가 아닌 응원이었다. 늦은 나이에도 자연 임신이 가능한 걸 보면 건강해지려 노력한 내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반증한 것이기도 하니까 난 주눅 들 이유가 없다. 이제 막 반짝이기 시작한 존재 앞에서 난 더 당당해지기로 마음먹었다.


7주 1일차, 심박수 149bpm, 길이 1.03cm


임신 7주 1일 너의 첫 심장 소리


 침대 옆 체온계로 수시로 고온 상태임을 확인하고, 아랫배가 뻐근하고 자주 졸린 것 외에 무탈함에도 내 핸드폰 검색창은 5주차 혹은 6주차 임신 증상과 유산 징후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했다. 혹여 염색체 이상으로 나도 모르게 유산이 진행되고 있는 건 아닐까. 특별히 출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못 견딜 만한 복통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난 쉼없이 염려했고 자꾸만 초조했다. 그렇게 긴 2주를 보내고 처음으로 신랑과 함께 병원에 갔다.

 “심장 박동도 안정적이고 주수에 맞게 자라고 있고. 좋아요. 피검사하고 2주 뒤에 봅시다.”

 심박수 149bpm, 길이 1.03cm. 난황에 붙어 잘 보이지도 않던 녀석이 고새 많이도 자랐구나. 무탈하게 낳는 사람들이 태반이라지만, 나에겐 산 너머 산인 게 임신과 출산이라 긴장의 끈을 놓을 순 없다.  나이에  경험이란  낯설고 어려운 데다 마음껏 어설플 수도 없어 난감한 순간이 쌓여만 간다.

어제부로 22주차에 접어들었다
<너에게 쓰는 편지>
 그때 그때 기록하지 못한 건 게을러서가 아니라, 섣불리 너의 존재를 공개하기에 엄마의 염려와 두려움이 너무 커서였음을 이해해주렴. 임신 중기에 들어서 이젠 유산과는 거리가 먼 안정기가 되었다지만, 혹시 모를 조산을 걱정하며 오늘도 너의 존재가 조심스럽다. 살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위태롭기만 한 마음자리를 위로하듯, 오늘도 아침부터 힘차게 엄마 배에 노크하는 네 위로 두 손을 포개며 무사함에 감사하단다. 오전 내내 하얗게 내리는 눈을 바라보다 아장아장 걸으며 함께 눈사람을 만드는 풍경을 잠시 떠올려 보았어. 아가야!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서 엄마, 아빠랑 눈사람 만들러 가자. 사랑한다 내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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