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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pe diem Jan 19. 2021

04. 오월이 오면 만날 너에게

너를 위한 서시


축복 / 김지영


계수나무 아래 달토끼
절구 방아 찧는 보름달
계곡 따라 한없이 올라가면
절로 담쑥 안아질까

가난하던 마음이라
을씨년스러운 가을바람
오래도록 저어했는데
면궁하고 시원스레 맞아본다

겨우내 귀한 너를 기다리다
울컥 또 시린 겨울이 서러워
오갈 데 없는 마음만 탓하다
면할 줄 몰라 한참을 헤맸다

봄을 알리는 계절 꽃 향기
이팝꽃 만개하는 시절
오월이 오면 만날 너를
면포 곱게 감아 맞이하련다

여기저기 스스로 푸른 나무
늠름하게 자라는 시절
오색찬란한 네 싱그러움으로
면역없이 온몸을 적셔보련다



 우렁찬 심장 소리를 듣고 온 후 3일이 지난 어느 날. 산부인과에서 전화가 왔다. 산전검사 결과 상 이상 소견이 있는 게 분명하다.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 게 난 늘 두렵다.

“갑상선 수치가 약간 높게 나와서 내과 진료가 필요하네요. 빠른 시일 내에 방문해 주세요.”

역시.

이벤트가 없을 리가 없지. 난생 처음 들어보는 ‘갑상선 기능 저하증’에 대해 검색하기 시작했다. 평소 추위나 피로함을 자주 느끼고, 살이 쉽게 찌는 등 신진대사량이 원활하지 못한 증상이라는데, 임신하면 조금씩 느끼는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싶은 것들이었다. 하긴, 워낙 기초대사량이 좋은 편은 아니라서 완전 예상 못한 일은 아니었다. 수치가 어떤지는 정확히 말해주지 않았지만, 임신 기간 내내 씬지로이드를 처방 받아 먹기만 하면 괜찮다고 하니 쫄지 말아야지, 담담해져야지 마음을 꾹꾹 눌러 다지고 또 다졌다.

임신 7주 5일 차가 되는 날. 임산부 기준 2.5 이하여야 정상인데 약간 벗어난 2.7로 크게 우려할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일반인은 4.0 이하면 정상이라지만 아이와 갑상선 기능도 나눠 써야 해서 기준이 엄격한 것뿐이라며 안심시켜 주시는 덕에 한시름 놨다. 간 김에 산부인과에 들러 축복이 우렁찬 심장소리도 한 번 더 듣고 싶다 말했더니 다 괜찮은데 뭐 굳이 또 들으려 하냐는 의사 선생님의 심드렁한 반응에 되려 마음은 더 편안해졌다. 별 거 아니라는 걸 반증하는 듯한 그 말투에 마음을 놓고 열심히 뛰고 있는 심장소리에 한 번 더 마음을 놓았다.


7주 5일차 이등신 눈사람이 된 우리 축복이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아직은 주변에 밝히지 않은 축복이의 이름을 제목으로 시를 썼다.


 시의 첫음절을 하나씩 따서 세로로 읽으면 ‘계절계절, 가을오면, 겨울오면, 봄이오면, 여름오면’이 되는데, 시를 쓰며 가을에 처음 존재를 알게  우리 축복이를 면포에 곱게 싸서 맞이  봄을 기다리고, 무럭무럭 자랄 여름의 축복이의 모습까지 기분 좋게 그려보았다. 아이의 존재를 온몸으로 실감하고 생각보다 단단한 아이의 생명력을 믿으며 하루하루 행복하게 보내보기로 마음먹으며 쓴 내 아이를 위한 서시를 아이가 한글을 익힐 무렵 곱게 적어 선물하련다. 그리고, 나는 지금의 귀한 이 마음을 잊지 않으려 노력할 것이다.


 사랑하는 내 딸아!
 엄마가 적은 이 시를 네가 온전히 이해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지나야만 할 테지만 유난할 정도로 벅찬 엄마의 마음은 지금도 느끼고 있으리라 믿는다. 오늘도 엄마, 아빠는 너의 이름을 뭐라고 지을까 기분 좋은 고민을 하며 눈이 채 녹지 않은 길을 걸었단다. 엄마, 아빠가 바라는 모습을 강요하기보다 네가 원하는 너의 모습이 어떤지를 먼저 살피도록 노력할게. 어설프고 서툰 건 엄마도 아빠도 그리고 우리 축복이도 마찬가지겠지만, 그 서툶과 어리숙함으로 서로를 따스히 어루만지고 사랑할 수 있기를.
 원 없이 사랑한다, 곱디 고운 우리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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