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내내 다이어트를 숙명처럼 여기며 살아야 하는 비루한 몸뚱이를 가졌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 숨만 쉬어도, 물만 마셔도 살이 쪄서 긴장의 끈을 놓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살이 찌니 철저하진 않아도 늘 신경 쓰며 살아야 하는 처지다. 결혼과 임신 전, 다이어트를 위해 간헐적 단식도 하고, 하루 한 끼는 일반식, 나머지 한 끼는 샐러드나 고구마 등 가벼운 식단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급식을 먹으면 살이 쪄서 독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도시락을 싸들고 다녔고, 퇴근 후 되도록 매일 필라테스 한 시간 혹은 걷기 두 시간을 실천했다. 그렇게 노력해서 1년 만에 20킬로 가까이 체중 감량을 하고 유지하는 동안 아이가 생겼다. 나이 마흔에 솔로였던 나에게 임신은 더욱 남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건강해지니 불가능이라 여기던 게 가능한 게 되어버린 것이다.
의학적 기준으로 만 35세 이상이면 ‘노산’이라는데, 만 39세인 난 나이만으로도 고위험군 산모에 해당하니, 임신 초기는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처럼 조심스럽기만 했다. 임신 5주에 선명한 두 줄을 봤지만 혹여 내 잘못으로 아이를 잃진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스트레스가 독이 될까 싶어 이런 걱정마저도 걱정해야 하는 쫄보로 전락해 전전긍긍하는 사이,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남은 필라테스 3회는 자연히 날아갔고 하루 이만보씩 걷던 걸 만보 이하로 줄이면서 임신 초기를 무사히 보냈다. 하던 활동을 줄이니 자연히 몸무게는 늘고, 또 다른 스트레스는 시작되었다.
문제는 식단이었다. 임신인 걸 알린 후, 모성애의 화신인 우리 엄마의 과잉보호가 시작되었다. 일주일에 두어 번 엄마 집에 가는 날이면, 임산부는 무조건 잘 먹어야 한다며 한 끼에 육해공이 모두 들어간 식단을 한상 가득 차려주었다. 나이 들어 임신한 딸내미를 위해 종일 준비했을 엄마를 봐서라도 야무지게 잘 챙겨 먹어야 했다. 엄마의 사랑이 가중될수록 내 몸무게는 차곡차곡 늘었고 아무래도 엄마 집에 들르는 횟수를 줄이는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먹고 싶은 거 없냐며 매일 챙겼고, 사양하는 횟수가 세 번 이상 반복되고 나면 엄마의 서운한 내색은 시작되었다. 반찬과 과일을 한가득 준비해놓고 기다리는 엄마에게 가는 날, 예정된 한 끼 포식은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하고 나머지 한 끼를 거르거나 가볍게 먹는 것으로 대신했다.
출산까지 몸무게 증가의 허용치를 10kg 이내로 잡고 시작했는데, 무리였던 걸까. 한 달에 2kg 이상 늘면 안 되는데 임신 중기에 접어들자마자 3kg이 훅 늘어 결국 의사 선생님에게 살짝 조절하라는 이야기를 들은 후 임신성 당뇨검사를 이틀 앞두고, 한 달째 체중계 앞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어느새 임신 25주에 접어들어 잠깐만 걸어도 슬슬 숨이 차는 게 체력도 예전 같지 않지만, 운동도 식단도 꾸준히 가볍게 가보자 작심해본다. 임신을 해도 놓여나질 못하고 다이어트 네 글자에 얽매여야 한다는 게 조금 서럽기도 하지만, 늦은 나이 기적처럼 찾아온 아이를 위해, 그리고 출산 후 나의 건강을 위해 선택이 아닌 필수일 테니까. 체질량지수(BMI)와 비례해 보통 체격인 나에게 적정한 권장 체중인 13kg을 최대 허용치로 두고 건강하게 출산하는 걸 목표로 오늘도 마음만은 건강한 다이어터로 살아간다.
사랑하는 우리 딸, 축복아! 둥글게 나오는 배 주위로 군살이 좀 붙어도, 잦은 태동에 좀 울렁거려도 네 존재감만으로도 행복이니 건강하게만 자라 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