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arpe diem May 19. 2021

11. 어쩌면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지도

출산까지 D-5


 39주간 아이는 별 탈 없이 무럭무럭 자라주었다. 3킬로 가까운 몸무게로 적당히 살도 올랐고 언제 태어나도 안정적인 시기에 접어들었으나 아이는 내려올 기미가 없다.

자연스레 진통이 와주면 좋으련만, 하늘만 바라본 채 오른쪽 갈비뼈 부근을 꽤 자주 통통 발로 차대는 걸 보니 아직은 내 뱃속이 마음에 드나 보다. 결국, 5월 24일 유도분만 날짜를 잡았다.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요즘, 유도분만을 시도했다가 죽도록 진통만 겪고 결국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말에 하루에도 열두 번씩 배를 쓰다듬으며 나직이 읊조린다.


“축복아, 날도 적당히 따뜻하고 화창한 아침이야. 엄마도 아빠도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삼촌, 사촌들까지 우리 축복이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단다. 세상에 나오면 사랑받을 일만 가득한 우리 딸 얼른 나오고 싶지 않아? 엄마는 매일매일 네가 보고 싶은데.”


엄마도 너를 얼른 안아보고 싶다


 하루에 한 시간 이상 걷고 짐볼 운동도 꾸준히 하면서 달래고 꼬시기를 수차례 반복하는 요즘, 축복처럼 찾아온 아이는 태어나는 순간마저 어쩌면 지극히 주도적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의 뜻대로 자라지 않는 게 자식이라 속상하고 분통 터지는 날들의 연속이라고들 하지만 그 존재가 찾아오는 순간부터 뱃속에서 자라는 과정, 태어나는 시기까지 모두 부모의 마음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는 게 당연한 거 아닐까. 열 달을 배에 품은 채 제발 별 탈 없이 건강하게만 태어나다오 빌고 빈 그 마음을 잊지 않는다면 자식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려는 욕심은 좀 덜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신랑(위)과 나(아래)의 옛날 사진


 1남 2녀 중 큰딸로 태어나 엄마, 아빠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자란 나는 엄마의 욕심에 한참 못 미치는 못난 딸이었다. 학교 시험도 대학 성적도 인생 과업도 늘 엄마의 기대치보다 못했다. 자식이 잘 되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은 늘 엄격했고, 엄마는 자식을 안아주고 다독이기보다 다그치는 쪽을 택했다. 당연히 엄마의 품과 손길이 어떤 온도와 촉감과 체취를 지닌 건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다. 그렇게 내 삶 속에 수많은 실패의 요인은 늘 내게 있었다. 서른 가까운 나이가 되도록 행동반경과 귀가 시간까지 통제받는 내게 늘 불만이었던 당시 남자 친구는 부모님이 원망스럽지도 않냐며 순종적인 나를 질타했다. 그 소리를 듣고도 부모님을 탓할 줄 모르던 내 삶은 그 후로도 끊임없이 넘어지길 자주 했고, 원망보다 도피를 택해 도망치듯 선택했던 결혼을 스스로 물러 파혼한 서른셋의 어느 날 터질 줄 모르던 내 원망은 절망감으로 점철되어 폭발해 버렸다. 사랑 없는 결혼이란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어 늦게나마 현명하고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한 나를 붙들고 결혼하면서 사랑이 생길 수도 있다는 억지스러운 말로 끝까지 회유하는 엄마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했던 엄마의 수많은 행동들을 꾸역꾸역 이해하며 버텨온 시간들까지 전부 억울해져 토악질하듯 악다구니를 했다. 그 후 엄마는 말이 없었고 나는 잠시 마음을 닫았다. 달라지지 않을 것 같던 엄마는 서서히 마음을 비웠고, 내 눈치를 보는 엄마의 약한 모습에 또 한 번 마음이 무너지는 것도 나였다. 엄마에게 자식은 내가 처음이니까. 엄마도 내가 어려웠을 테니까.


 다 늦은 나이에 나보다 한참이나 어린 남자의 아이를 가졌다는 이야기를 어렵게 꺼낸 어느 날, 엄마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나이 마흔에 네 인생 네가 알아서 잘하겠지. 다이어트한다고 끼니 거르지 말고 잘 챙겨 먹어.”


 엄마의 말은 짧고 투박했지만 난생처음 독립된 객체로서의 내가 존중받은 느낌이었다. 그 후, 혼자보다 둘이 낫고 둘보다 셋이 낫다며 아이와 내 건강을 걱정하고 하루하루 노심초사 누구보다 살뜰하게 내 선택을 지지해주었다. 카카오톡 프로필에 설정해 둔 출산 디데이를 매일 체크하며 아이 태동은 어떤지 출산의 기미는 없는지 안부를 묻는 엄마의 들뜬 목소리에 내 지난 시간들 속 엄마가 준 사랑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어쩌면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신랑이 딸에게 쓴 태교 일기

 

 충분히 사랑받았고,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는 나와, 재지 않고 사랑을 줄 줄 아는 신랑 사이에서 태어날 우리 딸에게 행복한 사랑의 모습을 보여 줄 것이다. 내 삶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데 한 아이의 삶이 내 뜻대로 된다는 게 되려 이상한 일일 테니 태어나기 전부터 주체적이던 아이가 그 주체성을 잃지 않고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조력자가 되어 주고자 노력해 보려 한다. 장담할 순 없지만 대대적 다짐이라도 해둬야 근사치라도 해내지 않을까 싶어 호기롭게 적어 본 이 글이 출산 전 마지막 글이 되지 싶다.


 <축복이에게 쓰는 출산 전 마지막 편지>
 딸아, 아직 진통의 기미도 보이지 않아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네가 세상 구경하는 날 처음 마주 할 엄마는 분명 울멍울멍한 목소리로 네 이름을 읊조릴 거야.
사랑하는 우리 딸 축복아, 안녕. 만나서 반가워.
매거진의 이전글 10. 금요일 밤, 난 어김없이 울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