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존재하는 것들에 대하여
하루에도 수십 번씩 제목을 곱씹었다. 아무리 반복해도 채워지지 않는 빈 종이를 멍하니 바라보다 시작조차 못하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 봤다. 아마도 ‘아직’과 ‘세상’, 이 두 단어가 내게 주는 생경함에 마음이 쉽게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듯싶다.
난 유별난 사춘기 없이 무던한 십대를 보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그랬다. 그러던 내가 고등학교 1학년 글짓기 대회에서 ‘자살’과 관련된 시를 적어 제출했고, 준비되지 않은 채 국어 선생님의 우려와 응원과 격려를 견뎌야 했다(선생님께 이미 세상을 싫어하는 사춘기 소녀로 낙인찍힌 셈이었으니 견뎠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생각한다). 주제가 우울했던 탓일까. 글과 관련된 대회는 상의 경중과 상관없이 개근상처럼 수집할 만큼 나름 자신 있었으나 결과는 낙방이었다. 없던 불만과 의혹까지 끌어다 속으로만 반항하며 한동안 반짝 사춘기로 방황했다.
2014년 4월 16일, 우리 아이들이 제주도를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한 달 이상 우울했고 아이들 앞에서 웃는 것도 죄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반 반장 지현이가 과일 도시락을 손수 만들어 함께 전해준 긴 편지를 읽고 펑펑 울어버렸다. 조례 시간 웃으며 교실로 들어서는 나를 보고 힘을 얻는다며 선생님 말씀대로 좋은 어른으로 성장하도록 노력하겠다는 말에 어쩌면 말 뿐인 나보다 아이들이 더 어른스러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미안해졌다. 아이들이 떠나고 난 교실에 남아 소풍 때 함께 찍은 사진을 게시판에 붙이며 마음을 다잡았다. 매년 4월이 되면 지현이가 내게 준 울림으로 먹먹해진다.
방학을 맞았으나 방학 같은 방학을 2주 미뤄둔 채 방과 후 수업을 했다. 8시 10분, 참 이른 시간임에도 늦는 녀석은 거의 없었고 추운 날씨 발걸음 재촉해 등교한 아이들이 기특하고 예뻐서 미뤄둔 방학이 조금은 덜 억울해졌다. 시간 재고 문제 푼 뒤 작품 해석 및 문제 풀이를 무한 반복. 작품 내에서 잡담 거리 찾아 시답잖은 농담 혹은 사는 이야기로 잠깐 삼천포로 빠져 웃다 보면 70분은 금방이었다. 반짝반짝 끄덕끄덕 나를 바라보고 내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는 아이들이 난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선생님 수업은 순삭이라 놀랄 때가 있다고 말하고 아이들 차별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수업 준비하고 임하는 모습이 멋지다고 웃어 준다. 아이들은 내게 고맙다 말하지만 내 자존감도 에너지도 아이들에게 얻은 거라 내가 더 고맙다 답한다. 상식이 통하고 감사하고 미안한 걸 표현하고 실수를 인정하고 성취한 것에 대해 칭찬하는 그런 당연한 것들이 가능해서 난 학교가 좋고 아이들이 좋다. 이것이 우울한 기사들로 가득한 뉴스에 세상이 참 싫어지다가도 ‘아직’ 세상을 좋아하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