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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pe diem Oct 21. 2021

17. 기억하지 못할 순간들에 대하여

아이는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일까. 늦봄에 태어난 아이에게 추위는 난생처음이라 밤새 뒤척이며 자다깨기를 반복했다. 짧게는 30분, 길게는 두어 시간만에 깨서 칭얼대는 통에 눈을 반쯤 감은 채 아이를 어르고 달래다 날이 새 버렸다. 밤에 잠을 자야 그 기운으로 하루를 보내는데 이렇게 밤을 고스란히 날린 날은 방전되기 직전인 배터리 마냥 몸도 마음도 지쳐서 버티는 수준으로 하루를 보내야만 한다. 아이도 엄마도 힘겨운 그런 날이 예상되는 아침에는 하루를 시작하기도 전에 맥이 탁 풀리고야 만다.


인스타그램 ‘주주맘’ 작가님의 웹툰 중 일부 인용


자궁에서는 분명히
너 혼자 잠들 수 있던 거 아니었니?


 SNS를 하다가 즐겨 보는 육아 웹툰에서 명문장 하나에 무릎을 탁 쳤다. 열 달 품는 동안에는 보름에 한 번 초음파를 보러 가는 날이나 돼야 꼬물꼬물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 애가 언제 먹고 자는지 궁금해할 이유가 없었고 알 방도도 없었다. 그랬던 아이가 세상 구경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 손을 타고 등 센서를 장착하는 걸 보면 참 신기할 노릇이다. 조리원에서는 방긋방긋 웃다가 스르르 잠도 들었었는데, 기억조차 나지 않는 먼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집에 온 후로 코알라 마냥 딱 붙어서 내려올 줄 모르는 아이를 보며 눕혀서 재우는 습관을 길렀어야 했나 후회가 되다가도 이렇게 안겨있을 시절이 얼마나 될까 싶어서 스르르 풀린 팔에 다시 힘을 실어 아이를 번쩍 안아 올린다.


 “태어나자마자 전동 바운서를 샀어야 했나?”


 생후 6개월을 향해 가는 딸의 몸무게가 돌쟁이를 따라잡을 만큼 묵직해져 앉았다 일어날 때마다 곡소리를 내는 나를 보고 신랑이 안쓰러워하며 말했다. 엄마가 흔들어 주는 것처럼 자동으로 왔다 갔다 움직이며 아이가 잘 수 있게끔 도와주는 아이템이라니. 어르고 달래느라 하루를 보내는 육아 고행길에 솔깃할 만한 물건들로 가득한 세상이라 이것저것 눈길이 가다가도 아기를 전동 바운서에 태우고 고양이 장난감인 움직이는 물고기 인형까지 엉덩이에 장착해 토닥이는 영상들을 보면 묘한 반감이 들어 잠깐의 욕심도 사그라들고 만다. 아이가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일지라도 부모가 아이의 몸을 다독이며 나누는 교감은 아이의 무의식에 남을 테니 육아만은 쿨내 나는 편리함을 잠깐 내려놓아도 좋지 않을까 싶다.


친정 엄마 등에 업혀 잠든 딸


 30년 넘게 간직하고 있는 친정 엄마의 포대기는 곧 장가갈 날을 받아 둔 막둥이 남동생을 시작으로 열한 살, 열두 살 조카들을 길러냈다. 얼마 전 엄마는 내 딸아이를 업겠다며 십 년 넘게 꺼낼 일 없던 포대기를 꺼냈다. 아기띠에서만 잠을 자는 아이라 아마도 싫어할 거라고 단언했으나 아이는 내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엄마 등에 업혀 생글거렸다. 친정과 떨어져 사는 탓에 엄마의 도움 없이 150일 남짓 홀로 육아에 전념하며 나름 내 아이는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자신했는데 보기 좋게 무안해졌다. 그거 보라며 애 셋에 손주 둘 키워낸 엄마 앞에서 주름잡지 말라고 자신감을 내비치는 엄마 앞에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잠들면 깨지 않도록 무소음 버클이 장착된 아기띠라고 해서 꽤 값을 치르고 구매했고 아이가 좋아해 다행이다 자부하고 있었는데 투박하기 이를 데 없는 포대기를 저렇게 좋아할 줄이야. 엄마가 살아온 시절보다 더 많은 걸 배우고 경험했지만 육아 능력치만큼은 엄마가 만렙이니 함부로 아는 체해서는 안 될 일인가 보다.


 백일을 넘기면서부터 아이를 데리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추억을 만드는 요즘, 유모차에도 오래 앉아 있지 않는 아이를 신랑이랑 번갈아가며 이고 지고 용을 쓴다. 점심 한 끼 쉽게 허락하지 않고 엄마 아빠 품에서 내려올 줄 모르는 아이의 모습에 시어머님은 부모가 저렇게 애써 키운 걸 기억도 못 할 땐데 애 많이 쓴다며 위로해 주셨다.



그래서 사진이든 영상이든 많이 찍어 두려고요.


 아이가 커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는 날, 아이는 기억조차 할 수 없는 시간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려 한다. 기억나진 않겠지만 엄마와 아빠의 따스한 손길과 수없이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순간들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추억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인지 말해주고 싶다. 아이는 절대 저절로 크지 않는다. 부모의 시간들로 아이는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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