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같은 남자 있으면 결혼할 텐데..

이번엔 장염 때문에 결혼을 하겠다고?

by SooAh


어제저녁부터 속이 더부룩하고 안 좋더니 아까부터 배가 아프다. 속이 안 좋아서 일부러 샐러드를 먹었는데 처음 계획대로 죽을 먹을 걸 그랬다.


2주 전 주말에 나는 크게 아팠다.

밤늦게부터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하더니 설사를 하고 토를 하느라 밤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배는 살살을 넘어서 뒤틀리듯이 아팠고 속은 메슥거렸고 머리는 어지러웠다. 몇 년 전에 한 번 이석증 때문에 119 구급대에 실려간 적이 있어서 나는 겁이 났다. 어지럽고 토하는 게 그때랑 비슷해서.. 물론 그때는 설사를 하거나 배가 아프지는 않았지만 걱정을 늦출 수는 없었다. 다행히 이석증은 아니었다. 이석증은 가만히 앉을 수도 없는데 난 멀쩡히 화장실을 오갈 수 있었다.

밤새 화장실을 오가며 진이 빠진 나는 해가 뜨자마자 차를 몰고 약국을 찾았다. 도저히 걸을 수는 없었고 브레이크 밟을 힘은 있었다. 다행히 집과 멀지 않은 곳에 약국이 문을 열고 있어 증상을 얘기하고 무려 2만 원어치 약을 사 왔다. 알약 두 종류에 한약까지. 좀 비싸기도 하고 한약은 왜 주나 싶었지만 일단 안 아프고 싶어서 아무 소리 안 하고 약을 받아 집으로 왔다.




나는 혼자 살면서 심한 외로움을 느끼거나 누구와 함께 살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아프거나 힘들 때, 누군가의 손길이 그리울 때는 결혼이라는 걸 해야 하나 생각하고는 한다. 작년에 태풍이 왔을 때도 ‘결혼을 할까?’ 생각했는데 이번에 또 결혼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이번에 혼자가 아니라 남편이 있었다면?’

‘만약 남편이 있었다면 약을 사다 주지 않았을까?’

‘새벽에 아파하는 나를 데리고 응급실을 가주지 않았을까? 식은땀을 닦아주며 괜찮으냐 물어봐주지 않았을까?’


아파 죽겠는데 왜 이렇게 서러운지. 아픈 것도 힘든데 옆에 아무도 없는 게 너무 서러웠다. 배에 통증이 심해지고 모두 쏟아내서 방에서 화장실을 갈 힘도 없어 벽을 짚으며 걸어가는데 눈물이 나왔다. 이럴 때 누군가가 내 손을 잡아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초주검이 돼서 거의 기다시피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운 내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엄마 생각이 났다. 그래서 안 그래도 부족한 수분을 눈물로 쏟아냈다. 아픈 것도 서럽고 혼자인 것도 서러운데 옆에 엄마가 없는 게 제일 서러웠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결국 나는 남편이 아니라 엄마가 필요했던걸까?




집에 돌아와 약을 먹고 좀 진정이 됐는지 한 참을 자는데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통화를 자주 하는데도 엄마는 항상

“밥은 먹었니?”

“아픈 데는 없니?” 하고 묻는다.

밥을 규칙적으로 먹지 않아서 위염을 달고 사는 데다가 툭하면 붓는 편도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냥 엄마는 내 자식이 아플까 봐, 행여 밥도 못 먹고 일할까 봐 그게 걱정이 됐던 거였다.

그날도 밥은 먹었냐고 물어보는 엄마의 기습 질문에 거짓말을 못 하는 나는 “아니”라고 대답하며 술술 오늘 아픈 이야기를 했다. 엄마가 걱정할까 봐 숨기려고 했는데 마음 깊은 곳에서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와 어리광까지 부리고 말았다. 엄마의 걱정 어린 목소리에 나의 서러웠던 마음은 풀어졌다. 엄마한테 걱정 꺼릴 안겨줘 놓고.

그 날 이후로 엄마의 질문은 바뀌었다.

“밥 먹었니?”

“배는 안 아프니?”




그 날 처럼 배가 아프고 속은 메슥거리고 설사를 한다. 그래서 그 날 받아온 한약을 먹었는데 다행히 점점 진정이 돼가는 것 같다. 아직 배도 아프고 속도 메슥거리지만 많이 나아졌다. 사실 한약은 괜히산 것 같다는 생각에 돈이 좀 아까웠는데 의미 없이 쓴 돈이 아닌 것 같아 다행이다.

아플 때 산 포카리스웨트 한 상자도 다시 써먹을 수 있게 됐다. 이러려고 내가 장염에 다시 걸린 건가......

장염 때문에 나보다 더 고생 중인 친구가 몇 년 후에는 어쩌면 내가 있는 곳으로 올 수도 있대서 죽 브런치 하기로 했다.

아파서 잠도 못 자는데 죽 맛 집이나 찾아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