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웃는 날이 더 많기를... (데헷)
영희씨는 키가 152센티미터로 굉장히 작고 말랐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영희씨가 말랐다는 걸 나중에야 깨닫는다. 왜냐하면 영희씨는 마른 몸에도 불구하고 볼 살이 통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손도 굉장히 통통하다. 그러니 처음 보는 사람들은 영희씨가 통통하다고 기억할 만도 하다. 영희씨는 6남매 중에 다섯째로 태어나서 거의 막내 대접을 받고 살았다. 자라는 내내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금이야 옥이야 귀여움만 받으면 자랐다. 그래서 그런지 세상 깍쟁이에 공주병이다. 지금도 자기가 정말 예쁘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이가 65인데.
나이 65에 공주병인 영희씨가 우리 엄마다. 세상에서 음식 하는 게 제일 싫고 집안일하는 게 두 번째로 싫은 가정 주부. 영희씨도 나처럼 한겨울에 태어났는데 영희씨는 음력으로 생일을 하기 때문에 어느 해는 나보다 빠르고 어느 해는 나보다 조금 늦다. 이번에는 나보다 2주 정도 늦은 주말에 영희씨 생일이 돌아왔다. 주말인 데다 마음만 먹으면 미역국 정도는 끓이러 갈 수 있었지만 영희 씨는 내가 오는 걸 극구 말렸다.
영희 씨는 매 해 생일마다 혼자서 자기 생일 미역국을 끓여 먹었다. 어릴 때는 우리가 너무 어려서 미역국 끓일 생각도 못 했고, 조금 커서는 내가 미역국을 끓이려고 노력을 하기는 했지만 사실 맛 내는 게 너무 어려워서 난 미역을 끓이는 수준이었다. 다 커서 한 세네 번 해주기는 했는데 그 이후로 내가 서울로 거처를 옮겼기 때문에 끓여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부산이라니. 나는 영희 씨의 생일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자기 손으로 미역국을 끓이는 것도 그만두게 하고 싶었고 생일을 외롭게 보내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올라간다고 하면 엄마가 미안해하니까 엄마도 기분 좋고 우리도 엄마에게 무언가를 해줄 수 있는 생일을 만들 방법을 고민했다. 마침 주말이라 시간도 좋았다.
나는 방송작가의 기질을 발휘해 우리 모두 움직이는데 크게 불편함이 없으면서 사람들도 적고 맛있는 음식까지 있는 한적한 바닷가를 찾아 공유했다. 사실 코로나가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1년 내내 갇혀있다가 밖으로 나와서인지 우리 모두 정말 행복했다. 특히 엄마가 정말 좋아했다. 다른 거 없어도 밖으로 나와서 좋은 공기를 맡으며 우리와 함께 있는 시간이 좋다고 했다.
엄마에게 특별한 생일을 만들어 주고 싶은 건 나의 미안함이 만들어낸 욕심이었다. 나는 여기 내려오자마자 엄마의 걱정거리였다. 아니다. 앞으로 더 거슬러 올라가서 서울로 올라가면서부터 걱정거리였다. 그래도 서울에선 주변에 친구들도 많았고 일 하면서 만난 동료들도 있어서 걱정이었지만 잘 지내겠거니 하며 엄마도 나도 잘 지냈다. 그런데 여기는 내려오면서부터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그걸로 모자라 해코지까지 당해야 했다. 엄마는 그때 처음으로 왜 연예인들이 자살을 하는지 알았다고 했다. 정체 모르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누군가를 음해하고 해코지하는데 당해낼 사람이 있겠냐고 했다.
그 걱정으로 인해서 영희 씨도 나만큼 잠을 못 잤고 아파했다. 그래서 그 이후로 매일매일 안부전화를 했다.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인데 영희 씨는 혹여나 내가 잘못될까 봐 확인 전화를 했던 거였다. 내가 나쁜 마음을 먹을까 봐, 그래서 다시는 자기 딸을 보지 못 할까 봐 무서웠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영희 씨한테 너무 미안해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가만히 그 이야기를 듣는 거 말고는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이 나이에도 여전한 걱정거리인 것이 미안했다. 괜히 부산에 내려간다고 해서 모두를 힘들게 했다는 것이 미안했다.
나는 영희 씨 생일에 맞춰 예약한 케이크를 찾고 오빠는 함께 밥 먹을 곳을 예약해 만났다. 오랜만의 바깥 외출인 데다 온 가족이 외출한 것도 오랜만이라 바람부터 상쾌했다. (사실 엄청 추웠는데..) 특히 영희 씨가 5살 어린아이처럼 굉장히 좋아했다.
이렇게 작은 거 하나에 행복해하는 사람인데, 별 거 아닌 외출에도 즐거워하는 사람인데 그동안 내가 너무 나빴구나.
우리를 키우느라 너무 힘들게 살았구나.
환갑이 한참 지난 나이에도 내 걱정을 하느라 즐기지 못하고 살았구나.
엄마의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한 미소를 잃게 하고 싶지 않다.
이제는 나 때문에 울게 하고 싶지 않다.
엄마의 바람은 내가 여기에서 자리 잡고 잘 사는 거랬는데,
나 잘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