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니라 괜찮아.

으악 한 번 질러줘?

by SooAh


예전에는 너무 볼게 많았던 텔레비젼 프로그램들이 지금은 볼게 없어서 어쩌다 한 번 보는 프로그램만 남게됐다. 그 중에서도 내가 빼놓지 않는 프로그램이 '놀면뭐하니?' 인데 유재석의 부캐의 변화를 보는 것도 재미있고 매 번 하는 프로젝트도 재미있었다. 몇 달 전에는 엄정화, 이효리, 제시, 화사가 ‘환불원정대’ 라는 그룹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나는 그게 재미있어서 본방을 챙겨보고 혹시 못 보게 되면 다시보기 서비스로 유료결제까지 해서 봤다. 사실 나는 전자제품이나 다시보기 서비스 같은 것에 돈을 잘 쓰지 않는다. 비싼 화장품이나 배달음식에는 그렇게 몇 만원씩 잘도 쓰면서 다시보기 서비스 같은 푼돈은 왜 그렇게 아까운지. 1000원 500원 열심히 아껴서 10만원 5만원짜리에 돈을 쓰는 격이지만 다시보기 서비스는 뭔가 과소비 같았다. 그런데 네 사람의 캐미를 보는 것이 재미있어서 과감하게 결제를 했다. 네 사람의 별 거 아닌 수다가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내가 그들 사이에 있는 것처럼.


내가 대학교에 다닐 때에는 ‘섹스 앤 더 시티’ 가 엄청 유행했다. 물론 나는 그게 왜 재미있는지 공감을 하지 못하고 고쿠센을 보았지만.. 그 때 만해도 나는 순수한 대학생이었다고 하면 믿으려나? 아무튼 나는 섹스엔더시티를 25살이 넘어서 보기 시작했다. 뒤늦게 보게 된 섹스앤더시티 역시 내가 유료결제를 한 드라마다. 이미 시즌이 여러개 지난 후였기 때문에 나는 앞 시즌이 궁금했고, 결국 유료결제를 단행했다. 나는 캐리, 사만다, 샬롯, 미란다의 우정이 좋았다. 직업도 성격도 심지어 나이마저 다른 네 명의 친구들이 오래도록 우정을 유지하는게 좋았다.


나도 이 곳에 오기로 결정했을 때는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 sns를 통해서 친해진 사람들이기는 했지만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고 나를 좋아해주었다. 나이도 제각각이지만 큰 언니 같고 동생 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밥도 먹고 이야기도 하는 것이 즐거웠다. 아무도 없는 이 곳에 과감하게 내려온 이유 역시 그 사람들 때문이었다. 처음 살아보는 도시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고, 오게되면 나도 섹스 앤 더 시티의 네 친구처럼 좋은 친구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내려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람들이 내가 알던 것처럼 좋은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고 관계는 거기에서 끝이 났다. 그 후로 나는 혼자가 됐다.

사실 나는 아직도 가끔 ‘내가 대체 여기 왜 왔지?’하는 생각을 한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그 때 보다는 적응도 하고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도 생겼지만 사람에게 당한 배신감이 너무 커 내가 마음을 열지 못 했다. 새롭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믿지 못 했고 옆에 있던 친구들마저도 믿지 못 했다.

그 때 관계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누구를 믿어야 하지?’

‘어떤 사람들이 좋은 사람이지?’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 줄 알고 내가 내 마음을 주지?’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이 관계가 정리가 되기 마련이다. 물론 이렇게 특수한 경우도 있지만 그러지 않아도 조금씩 정리가 됐다. 어릴 때는 친구의 일이라면 두 발 벗고 나서서 해결해주려던 친구도 나이가 들면서 이상하게 박해졌다. 나와 제일 친하고 내가 제일 좋아했던 친구가 그랬다. 내가 이렇게 힘든 일을 당하고 나니 믿는 친구에게 더 의지하고 우는 소리를 많이했는데, 나의 친구는 그걸 받아들여주지 못 했다. 되려 나에게 화를 내고 자기가 먼저 연락을 끊어버렸다. 다른 때 같으면 아무리 서운했어도 내가 먼저 연락을 했을테지만 그 때의 나는 내가 너무 안쓰러워 오히려 그 친구에게 화를 내고 같이 연락을 끊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고 가장 오래된 친구를 잃었다.

이래서 사람은 힘들 때 내 옆에 둘 사람과 버릴 사람이 나뉜다고 하는 것 같다. 그건 상대방의 탓이기도 하지만 내 탓이기도 하다. 내가 힘드니까 상대방에 대한 배려보다 나를 더 배려해주기를 바라게 되고 그렇게 해주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서운해한다. 내가 서운해 하는 만큼 상대방도 나의 모습에 실망하고 서운하겠지.

그리고 나는 그 친구를 설득하고 풀어주는 대신 다른 친구들을 찾았다. 지랄같은 성격을 다 받아주고 기다려주던 친구들. 내 힘든 상황을 이해해주며 응원하고 위로해주던 친구들. 가장 좋아하던 친구는 잃었지만 나는 그 때 내 옆을 지켜준 친구들과 아직도 친구로 지내고 있다.

이렇게 나의 지랄같은 성격을 받아주며 곁에 있어준 친구들 몇 몇은 정리가 됐다. 싸우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일 하느라 바쁘고, 그 친구들은 육아와 살림으로 바빠 자연스럽게 소원해졌다. 사실 나의 일을 하면서 다른 사람의 안부를 챙기는 건 웬만한 부지런함과 관심이 없으면 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야기를 들으니 육아를 하면 오로지 아이만 보게 돼서 더 힘들다고는 하더라.


이상하게 여자 친구들은 결혼을 하게 되면 집 밖 출입도 잘 하지 않고 친구들과의 만남도 잘 가지지 않는다. 만남을 가져도 남편이 출근해 있는 낮 시간이나 아이가 학교나 유치원을 가 있는 시간에 만나야했다. 하지만 그 시간에는 대부분 일을 하는 시간이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결혼한 친구들과 멀어지게 됐다.

한 번 내가 친구한테

“왜 니 남편은 낮이고 밤이고 친구들 만나서 노는데 너는 안돼?”

하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친구가

“우리 애는 나 없으면 안 돼.”

하는 말에 그 이후로 결혼한 친구들에게 같은 질문을 하지 않았다.

물론 그 대답이 나의 궁금증을 해결해 준 것은 아니다. 나는 아직도 왜 남자는 자유롭게 나가서 노는데 여자는 안 되는 건지. 남편은 아내의 밥걱정을 하지 않는데 왜 여자만 남편의 밥 걱정을 그리도 하는 건지. 같이 낳은 아이인데 왜 여자만 그리도 그 아이의 끼니와 잠자리 걱정을 하는지 궁금하다. 그래도 친구들에게 물어보지는 않는다. 그게 그 친구의 최선의 대답이었을 것 같아서.

그리고 또 하나. 그건 마음의 차이라는 걸 알았다.

친구들 무리가 있으면 동생 같은 친구도 있고, 언니 같은 친구들이 있는데 항상 무슨 일이 생길 때 마다 언니처럼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언을 해주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내 연락에 언제나 반갑게 인사를 해주었고, 최선을 다 해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육아와 집안일 때문에 내내 들어주지는 못 해도 틈 날 때 마다 나를 살펴주었다. 내가 더 이상 결혼한 친구들에게 ‘왜 너는 전처럼 하지 않냐.’ 라고 묻지 않은 이유 중에 하나는 이 친구 때문이기도 하다. 상황 때문에 물론 전처럼 친구관계에 소홀해 질 수는 있지만, 적어도 마음이 있다면 들어주려는 노력을 했을테니까.

친구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아도 친구를 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만나려는 노력은 했을테니까.

설령 만나지 못 하게 되도 친구들에게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들어서 설명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애는 나 없으면 안 돼.’

같은 말도 어쩌면 그 친구들에게 최고의 이유지만 우리가 뭐라고 말을 할 수 없는 최고의 핑계거리기도 하다. 그리고, 연락을 하지 않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고.


이렇게 연락이 끊어져 지금은 내 옆에 정말 몇 명 안되는 친구들만 남았다. 가끔 내가 만약 결혼을 한다면 몇 명이나 올지 생각을 해보기도 하는데, 불과 3년 전만 해도 스무명 가까이 왔을 친구들이 이제는 10명도 안 된다. 어릴 때는 결혼식에 하객이 얼마나 많이 오느냐가 굉장히 중요했다. 그런데 이제는 안다. 하객 수와 나의 행복수치가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친구가 많다고 내가 행복한게 아니라는 걸. 그래서 나는 지금 내 옆에 있는 친구들에게 내 나름의 최선을 다 하고 싶다. 사실 이렇게 잘 해주기로 마음을 먹고 나면 꼭 나를 화나게 하는 친구들이 생기기도 한다. 이번에도 그래서 두 명의 친구에게 나의 불편함을 이야기 했고, 한 명은 이제와서 화를 낸다며 되려 자기가 화를 내고 연락을 끊었다. 그리고 다른 한 친구는 내가 자기를 얼마나 배려해주는지 알고는 있었지만 반대로 자기는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몰랐었다며 미안해했다. 그래서 나는 또 한 명의 친구를 잃었다. 그래도 괜찮다. 한 명의 친구를 잃었지만 다른 한 명의 친구와 더 깊은 관계가 됐으니까. 그거면 충분하다.


나는 결혼을 하지 않을 생각이다. 결혼이 나에게 주는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30살이 되기 전부터 ‘결혼하지 않겠다.’ 마음먹었다. 어쩌면 그래서 주변 관계에 더 애썼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내가 의지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상대는 친구일테니까. 그런 친구를 잃고 싶지 않아서 애쓰고 노력했다. 그런데, 인간관계는 내가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더라. 특히 친구관계는 마음을 나누고 서로 이해해주는 관계여야지 누구 하나가 힘들게 애쓰게 되면 결국 어떻게든 탈이 나게 돼 있더라. 결국 마지막까지 내 옆에 있을 사람이니까 노력해서 관계를 지키려던 나는 요즘 조금씩 내려놓는 중이다. 비록 마지막에 내 옆에 아무도 남지 않아도 나는 나를 지킬 것이고, 그 어떤 관계든 애쓰지 않을 것이다. 그게 건강한 관계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그렇게 남은 친구들과 ‘섹스 앤 더 시티’, ‘환불원정대’ 같은 환상의 캐미를 만들면 되는 거 아닌가?

일단, 사만다와 천옥이는 나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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